[기자수첩] 강요된 '이타심', 급여 반납 하지 말자
상태바
[기자수첩] 강요된 '이타심', 급여 반납 하지 말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03.31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노블리스 오블리주? 전근대적 사고방식
- 기부를 원하면 자율로

 

코로나19가 휘몰아 온 충격은 진행형이다.

그동안 교훈으로 예상 가능했던 충격이 있는가 하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도 속속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확산으로 경제 충격이 클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이미 몇 차례 경제위기에 대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과연 잘 극복할 수 있을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가 세계 경제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한 채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는 계속 의문이다.

과거 1990년대 IMF 외환위기,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좀더 신속하게 대규모의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 마련이 추진되고 있다.

그 와중에 비판의 시각도 존재한다.

정책의 효과나 시의적절함, 적확함에 대해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나름 비판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단순히 몸이 아픈 차원이 아니라 생업에 분명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을 필두로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자발적' 참여가 줄잇고 있다.

급여를 반납하고, 이를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기부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

고위 공무원들만의 '유행'이 아니라, 공공기관, 민간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음덕(陰德),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선행을 말하는 단어다.

아마도 <회남자>의 '유음덕자필유양보(有陰德者必有陽報)'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성어로 보인다.

고려 때 엮은 <명심보감>에서도 음덕을 쌓은 이의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사회 고위층들의 '자발적' 급여 반납은 음덕이 아니라 '양(陽)덕'이다.

양덕이란 말은 없다.

'덕(德)'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선한 의지로 비롯되지 않은 선행은 과연 선행인가?

무심한 행동이 이타적인 결과를 낳았다면, 과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미 수많은 언론이 무수한 '급여 반납'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각 매체 기자들이 바지런하다기보다, 그만큼의 홍보자료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녹색경제신문>에 게재된 급여 반납과 관련한 기사 목록이다.


기술보증기금, 코로나19 피해극복 위해 경영진 급여 반납

9개 금융 공공기관장, 코로나19 극복 위해 급여 일부 반납

카이스트 등 국내 4대 과기원 총장, 4개월 동안 급여 30% 반납

조폐공사, 코로나19 극복 위해 경영진 급여 30% 반납

한국공항, 경영악화 극복 위해 전 임원 급여 반납...전무급 이상 40%

[코로나19] LH, 임금 반납 동참...성금 모아 전달

HUG, 코로나19 극복 위해 임원 급여 일부 반납

한전·전력그룹사, 코로나19 극복 위해 경영진 급여 120% 반납

대한항공, 코로나 위기 극복 위해 전 임원 '급여 반납'...유휴자산 추가 매각도

한수원, 코로나19 고통 분담… 4개월 간 임원 임금 30% 반납

[코로나19] LX 임원진, 4개월간 급여 30% 기부...지역본부장·부설기관장도 10%

현대오일뱅크, 임원 급여 20% 반납

장관·차관급 이상 고위 공무원, 4개월간 급여 30% 반납...종교시설·유흥시설 등 한시적 운영중단 권고


하이퍼링크 작업 고되다.

한국 사회 지도층은 이토록 '선'한가?

기사 제목들만 훑어보아도 '패턴'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무언가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된 것처럼 비슷한 양상이다.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담합(사업자 집단의 부당한 공동행위의 일종)'이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심사가 뒤틀린 것처럼 보일까?

모 공공기관장이 급여 반납과 관련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표현을 운운했다는 풍문을 전해 듣고 속이 역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국에 의심증상이 아닐까 우려될 정도로.

어쩌면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가치판단기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심리 기저에는 여전히 '귀족'들이 살아 숨쉬는 중세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판타지 매니아들은 과연 기꺼운 세상일까?

선형적이든 나선적이든, 역사와 인류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기준에선 역하다.

반동이다.

수많은 지성인들과 선각자들, 그리고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대중들이 발전시킨 '지금'을 되돌리다니.

단순히 내 배알만 꼬이면 간단한 문제지만, '급여 반납'의 여파는 좀더 확산될 수 있다.

당장 공직에 종사하는 하위 직급들의 눈치가 편치 않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 노동단체 등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간기업이라고 편하지 못한데, 불확실한 정보지만 '급여 반납'에 대한 근로자 개별의 각서 서식까지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경제위기를 겪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급여 '반납'과 '삭감'은 엄연히 다른 것이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노무사들의 조언도 기억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현대 한국의 경제는 자전거와 같다는 비유가 어색하지 않을 거 같다.

소비의 페달을 멈추면 자빠진다.

급여 반납하지 말고, 여유가 있는 이들은 더 많이 쓰자.

반납한 급여가 결국 돌아갈 곳도 어디선가 소비되기 위함이 아닌가?

기부를 하고 싶다면 하자.

조용하게, 자율적으로.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