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락’ 만난 정유업계, 코로나19 확산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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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폭락’ 만난 정유업계, 코로나19 확산 더 무섭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0.03.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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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러시아 치킨게임이 연 국제유가 폭락… 사우디 증산 기대감
코로나19 세계 확산… 수요 축소·경제침체에 정제마진 상승 불투명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정유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석유제품의 원료인 유가 급락에 따라 정유업계로서는 당장 재고평가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부 긍정 요인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공식판매가격(OSP)이 하락해 석유제품의 생산비용이 감소하면 1~2개월 뒤에는 정제마진이 오를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COVID-19)가 확산하면서 수요가 급감해 생기는 제품 가격 하락도 무시할 수 없다. 비용 감소로 인한 이익보다 더 클 수도 있다.

13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을 보면 국제유가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를 기준으로 지난 9일 배럴당 24.6%(10.15달러) 급락했다. 다음 날인 10일 10.4%(3.23달러)가 오르더니 지난 11일에는 다시 4.0%(1,38달러) 내린 32.9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가 폭락한데다 코로나19 세계적 확산 추세가 길어지면서 정유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녹색경제DB]
국제유가가 폭락한데다 코로나19 세계적 확산 추세가 길어지면서 정유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녹색경제DB]

◆사우디·러시아 치킨게임이 연 국제유가 폭락

국제유가가 급락세를 보인 건 지난 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산유국 모임인 OPEC+의 추가 감산 합의가 러시아의 거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사우디 아람코는 OSP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시장점유율을 올리기 위해서다. 사우디는 여기에 더해 일일 최대 산유 능력을 100만 배럴 올려 1300만 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당장 4월부터 현재 970만 배럴 생산하던 일일 산유량을 1230만 배럴로 확대한다. 지난달보다 27%나 많은 산유량이다.

이번 국제유가 폭락으로 정유업계는 먼저 재고평가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정유사가 이미 사놓은 원유의 가격이 낮게 평가돼 분기 말 손실로 반영된다. 원유가 한국에 도착하는데 적어도 3주 이상 걸리는 만큼 원유가 도착하기도 전에 가격이 하락하는 부분도 있다. 공장에서 정제 중인 제품 가격도 낮아진다.

하지만 정유사 수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이 사우디의 증산 발표로 회복될 수 있는 상승 요인도 있다. 석유제품(휘발유, 나프타, 항공유 등)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설비운영비 등 비용을 제외한 값인 정제마진은 통상 국제유가 상승 국면에 오르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대부분의 원유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만큼 사우디의 증산은 원유 매입 비용을 줄여 정제마진을 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우제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사우디가 아시아 OSP를 배럴당 6달러 낮췄는데, 에쓰오일의 경우 중동 원유 비중이 90~100%에 달해 정제마진 5.4~6달러의 개선효과가 나온다”며 “OSP가 글로벌 원유의 21%와 아태지역 45%에 적용돼 경쟁사 가동률이 올라가는 데 따른 평균판매가격 감소 효과 2~3달러를 뺀다고 가정해도 3달러 이상의 정제마진 개선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언제까지… 정제마진 상승 불투명

[사진=AFP/연합뉴스]
[사진=AFP/연합뉴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업황 악화라는 불안 요소가 생각보다 크다는 게 문제다. 2월 중순부터 중국 항공객 감소로 급감했던 항공유 수요는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추세 속에서 더 줄어들 전망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항공유 비중을 14%까지 확대해 놓은 상태라 피해는 더 크다. 휘발유·경유 수요도 감소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제마진 약세는 당분간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제마진은 어차피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발생하는 건데, 사우디 증산은 에쓰오일 등 정유회사의 제품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며 “공급은 느는데 수요는 줄어가기 때문에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그에 따라 정제마진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유업계로서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황인데도 공급을 멈추기 힘든 딜레마에 빠졌다. 원유를 정제해 나오는 나프타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이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프로필렌·벤젠 등을 생성하는 물질인데,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제품이 플라스틱 등 3000가지에 이른다. 원유를 정제하면 나프타 외에 휘발유, 항공유 등 현재 수요가 충족되지 않는 품목도 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 시각에서 보면 OSP 감소로 정제마진이 일시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며 “적어도 1년 이상의 장기 흐름에서 보면 세계 석유 수요 둔화와 경제 침체에 따른 정제마진의 축소 요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게 반드시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를 세우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 적시에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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