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5사의 2019①] '김용균' 떠난 지 1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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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5사의 2019①] '김용균' 떠난 지 1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9.12.1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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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환경 그대로… 안전에 대한 시스템과 철학 바뀌어야
고(故)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남측광장에 추모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남측광장에 추모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발전5사의 2019년은 한 마디로 '다사다난'했다. 고(故) 깅용균 씨의 죽음으로 발전사에 대한 '죽음의 외주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후 안전대책은 나왔는데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이다. 

미세먼지 저감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하나씩 문을 닫고 있다. 발전5사의 주력 발전원이 문을 닫으면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책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 남동, 남부, 서부, 중부, 동서발전 5사의 2019년을 세 차례에 걸쳐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고(故) 김용균 씨가 한국서부발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점검작업을 하다 벨트와 롤러에 몸이 끼여 숨진 지 1년이 지났다. 김 씨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화두를 사회에 던졌다. 기업의 이윤과 효율성만 추구하는 원·하청 구조가 노동자의 안전을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김용균 1주기를 맞은 10일, 그동안 발전 사업장의 위험의 외주화 행태는 달라진 게 없다는 노동계의 비판이 여전하다.

◆원·하청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 만들어

김 씨를 죽게 만든 원인으로 지목받는 원·하청 구조는 기업이 업무 일부를 외주화하면서 생긴다. 핵심·비핵심으로 업무를 분리한 구조를 만들어 놓고 위험한 업무를 하청노동자가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통계로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5대 발전사에서 사망한 20명의 노동자는 모두 하청 소속이었다. 348명 부상자 가운데 하청노동자는 340명으로 97.7%의 비율을 나타냈다.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이유다.

공기업인 발전사에서조차 원·하청 구조가 생겨난 배경은 정부가 2001년 추진했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다. 한국전력 발전부문이 서부발전을 포함한 5개 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할되면서 발전 공기업들의 경쟁 구조 안에서 효율성을 내세운 업무 외주화가 일어났다. 김 씨는 민간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직원으로 고용돼 원청인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작업을 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1주기를 하루 앞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1주기를 하루 앞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월 21일~11월 8일 공공·대형 사업장 39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원청의 하청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이행 여부 점검에서 353곳의 사업장이 1484건의 시정지시를 받았다. 사업장 안전이 여전히 허술하다는 반증이다.

노동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오래 싸워 온 권영국 변호사는 “권한이 있는 원청은 외주화를 했다며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고용을 한 하청은 자신이 무슨 권한이 있냐고 한다”며 “누구도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아닌 게 원·하청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업체에서 상시 지속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사용하는 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안전 문제 등을 책임지게 하는 게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변하지 않은 노동 환경 

새롭게 마련된 조치들도 미흡한 처지다.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산업법) 전부 개정안은 정작 김 씨가 사망한 일터였던 태악화력발전소 같은 발전업 등 ‘전기업종’은 도급 금지·승인 대상에서 모두 빠졌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다.

개정 산안법이 도급을 금지한 작업은 도금이나 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뿐이다. 그 밖에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이 필요한 ‘위험한 작업’ 도급 대상도 ‘1% 이상의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으로 한정된다.

이런 개정 산안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5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김 씨의 이름을 딴 ‘김용균 특조위(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 내놓은 22개 권고안도 현장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남동발전의 한 화력발전에서 커다란 기계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노동자가 플래쉬로 비추며 지나가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한 화력발전에서 커다란 기계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노동자가 플래쉬로 비추며 지나가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지난 4일 공개한 영상을 보면 캄캄한 작업 현장에서 랜턴에 의지해 점검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1급 발암물질인 ‘비산’ 먼지로 자욱한 작업장은 조명을 밝혀도 시야가 1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그전보다 조명이 늘어나고, 2인 1조로 일할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좀 더 나아진 점이다.

김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태안화력발전소는 용균이가 일했던 9, 10호기만 조금 나아졌다. 상황이 열악한 1~8호기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던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안전을 바라보는 기본적 사고와 철학이 바뀌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수료 떼먹는 하청업체는 절대 자기 돈 투자해서 안전시설을 만들지 않고, 원청은 끝까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할 것”이라며 “기술적 대책을 세우는 데 머무르지 말고,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인터뷰 "더이상 억울한 죽음 없어야 한다"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추모 분향소를 열고 추모 주간을 운영해 왔다. 지난 9일 밤 열린 추모 문화제에서 김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김 이사장은 숨진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허탈함에 말하는 도중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정부가 국민을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1년 동안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1년이 다 되도록 아무 성과가 없었다. 1년쯤 되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서 용균이 앞에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그걸 바라고 여태까지 왔는데, 지금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어제(8일) 모란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갔을 때 정말 낯이 서지 않더라.

1주기가 다가 오기 한 달 전부터 마음이 더 심란하고, 빨리 뭔가 성과를 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기더라. 근데 조바심 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들에게는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일이니,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해야 하는 일이니 너무 조바심 갖고 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죽기 전에는 니 앞에 좋은 말을 전할 수 있게 할 거야’ 아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겨울이라 날씨가 매우 춥다. 추모 문화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아들을 못 지킨 것에 대한 미안함, 사랑을 많이 주지 못 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 용균이가 공부만 하다가 24살에 이제 갓 사회 생활을 시작했는데, 꽃다운 나이에 죽은 게 안타깝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 하고 꿈도 펼치지 못 하고 아무 것도 안 한 상태에서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갔다.

요즘 청년들이 다 그렇다. 용균이 동료들도 현장이 캄캄한데 앞날도 캄캄하다고 말한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말도 있고, 그럴 정도로 청년들이 암담함을 얘기한다.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런 걸 보면 나오게 된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나아지는 삶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유지해 보겠다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는 거다. 구조적으로 이윤은 위로 올라가고 책임은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게 국회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다. 결국 어려운 국민들이 뭉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나서서 기업과 정부를 압박해 환경을 나아질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 같다. 김용균재단을 설립한 것도 22개 권고안이나 산안법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게 만들고픈 마음 때문이다."

-김 씨의 죽음 뒤에도 작업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들었다.

"용균이가 일했던 9, 10호기만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1~8호기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우리 사회가 정말 몇 푼 안 되는 돈을 투자하는 것에 인색하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쥐어짜기만 한다.

정부에서 사람들 목숨의 값어치를 너무 처절하게 낮춰놨다. 직위가 높은 사람들만 사람 대접을 받고, 권리를 가지려고 한다. 사실 우리 국민들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있는 건데, 우리 국민들 살리는 일을 맡아달라고 일을 시킨 건데… 제발 국민들을 조롱하고 짓밟고 사람들을 죽이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재발 방지 하겠다고 손도 잡아주고 말씀도 하셨다. 총리, 기재부, 산업부, 고용부 모두 불러서 합의까지 했는데 다 말뿐이다. 국민을 기만한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말만하고 국민들은 우습게 아는 거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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