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공판’ 서울고법의 이상한 제재...사진기는 되고, 스마트폰은 안 되는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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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용 공판’ 서울고법의 이상한 제재...사진기는 되고, 스마트폰은 안 되는 취재
  • 정두용 기자
  • 승인 2019.12.06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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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내려주세요. 사진을 사용하면 소송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영하 10도의 한파가 찾아온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3차 공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현장.

서울고등법원 공보실 실무자가 포토라인에 있는 30여명의 취재진을 향해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2시5분부터 진행되는 파기환송심 양형 심리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1시29분께 법원에 도착했다.

25분 앞선 1시15분께부터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등이 순차적으로 출석했다. 모두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서울고법 공보실 직원과 보안 관리 대원이 취재진들에게 “핸드폰 사진 촬영은 금지다”라며 취재 제재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이 법원 외부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등장하기 직전이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현장에서 “사안이 예민한 만큼 위에서 제재 요청이 왔다”라며 “원래 사진촬영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간 통제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의아함을 나타내는 기자들이 많았다. 그간 ‘공인’에 해당하는 대기업 총수들의 법원 출석 장면은 늘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취재 기자들을 위해 법원 앞 포토라인이 마련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숱한 유명인들이 그간 법원에 출석했지만, 이날처럼 법원 공보실 직원이 직접 나서 기자의 촬영을 제재한 경우는 없었다.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 연합뉴스]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 연합뉴스]

법원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법원 내부는 촬영이 불가하지만, 외부의 출석 장면 취재를 제재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사전에 촬영 허가를 받는 과정도 없었고, 공보실 직원이 나서서 촬영을 막은 경우도 못 봤다”고 말했다.

출석자의 안전상의 이유로 경비인력을 배치하기도 하지만, 포토라인에서의 촬영을 제재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포토라인은 기본적으로 현장을 전하는 기자들의 취재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법원에 들어선 직후엔 법원 관계자가 나서 직접 기자의 스마트폰 사진첩을 확인하기도 했다. 삭제 여부를 여러 차례 물으며 “사진을 복구할 방법은 없는가”, “마음대로 촬영하면 안 된다”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협조를 요청하기보다 협박에 가까운 강압적 모습이었다. “취재 목적이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현장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온 기자들과 핸드폰으로 촬영을 진행한 기자들이 있었다. 공보실 직원은 스마트폰 촬영만을 제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황당한 일이다.

현장에서 촬영 허가증을 확인하는 과정도 없었다. ‘위’에서의 ‘요청’으로 정확한 ‘절차 없이’ 기자들의 ‘취재’를 막은 셈이다.

서울고법 공보실 측이 ‘소송’을 언급한 근거는 ‘내부 규정’에 있다. 사전에 사진촬영을 허가받아야만 취재가 가능하다는 규정으로 포토라인에 있는 기자들의 취재를 제재하고 나섰다.

서울고법 공보실 관계자는 “모두의 공평한 사진촬영을 위해서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누구나 막 찍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늘 사진 촬영을 통제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의 기자들은 “그런 적 없다”고 전했다. 법정 밖에서 이뤄지는 취재는 기자라고 밝히면 대부분 협조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촬영 승인 절차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고법 공보실이 이날 제재에 나선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셈이다.

정두용 산업부 기자
정두용 산업부 기자

기자의 본분은 ‘알리는 것’에 있다. 대중의 눈이 향하는 곳에 발길을 돌리고, 대중의 생각에 따라 시선을 돌린다.

이 부회장은 18년 연속 매출액 기준 재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수장이다. 법원에 판결에 따라 국내 경제의 판도가 변할 수 있다. 법원 출석은 이 때문에 상징적이다. 이 과정을 담아 전달하는 것, 과연 제재를 받을 일인가 싶다.

서울고법 공보실이 말한 제재의 근거는 “원활한 사진 촬영”이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 기자 취재 편의를 차원에서 마련된 포토라인에서 최선을 다해 현장 분위기를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원활한 사진 촬영’에 무엇이 위배돼 사진첩 사진을 삭제당했는지 오래 고민이 남을 듯싶다.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생각난다.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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