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美·EU "한국의 화학물질 규제, 심해도 너무 심해"..."규제 '모라토리움' 선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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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전쟁]美·EU "한국의 화학물질 규제, 심해도 너무 심해"..."규제 '모라토리움' 선언하라"
  • 양도웅 기자
  • 승인 2019.08.1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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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품' 국산화 가능한가, 일본과 격차는?... 2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한경연, 12일 '소재·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개최
이덕환 교수 "어느 산업 집중 육성할지, 민간(기업)이 결정해야"
이홍배 교수 "소재·부품 국산회 위해선 일본 등과 더 가까워져야"
곽노성 교수 "한국의 화학물질 규제 효율성, 일본의 절반 불과"

일본의 일방적 수출규제 조치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이와 관련한 2가지 질문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주요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하면 언제쯤 가능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소재·부품 부문서 일본과의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이다.

종합하면, 일본에게 의존하지 않을 정도로 주요 소재·부품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느냐는 것. 

이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대한 답변이 1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소재·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주제의 세미나 현장에서 이뤄졌다. 

간략하게 말하면,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부품보다는 '소재'에 집중했다. 소재는 '뜯어 봐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서 배제하고, 우리 정부도 12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맞대응을 하면서 '한일 경제전쟁'이 발생한 가운데,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자료=연합뉴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서 배제하고, 우리 정부도 12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맞대응을 하면서 '한일 경제전쟁'이 발생한 가운데,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자료=연합뉴스]

◆ 이덕환 교수 "획일적으로 답변하기 힘들어... 과학기술과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에 맡길 순 없어, 민간이 해야"

서강대 이덕환 교수(화학과)는 "주요 소재·부품의 일본과 격차나, 국산화가 언제쯤 가능한가에 대해 획일적으로 답하긴 어렵다"면서 "염두에 둬야 할 건 부품 산업과 달리 소재 산업은 100% 화학 산업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교수는 "화학 산업 가운데 범용소재 산업인 정유 부문에선 우리가 세계 5-6위에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며 "이 부문은 일본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해야 하는 정밀소재 산업에선 약 40년간 투자를 했음에도 (일본 등 소재 선진국을) 따라가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밀소재 산업에선 어떤 분야는 일본보다 앞서 있지만 어떤 분야는 시작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과의 격차를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소재·부품 산업서 일본과 격차보다는 이덕환 교수는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 교수는 "우리가 집중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은 국가 차원에서 어떤 소재정밀 산업에 집중 투자해 육성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과학기술과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에 맡겨둘 수 없고, 전적으로 민간(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정확하게 국내 어떤 산업에 얼마 만큼의 피해가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국가 차원의 투자 대상은 전적으로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소재·부품의 국산화뿐 아니라,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언급했다. 용케 국산화했음에도 국내서만 경쟁력을 가진다면, 그건 "돈 낭비"라는 것. 

이 교수는 "훨씬 더 중요한 건 '시장성'"이라며 "우리나라 기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는 건 가치가 없다. 일본 소재 산업을 능가해 다른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수출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그대로 낭비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왼쪽부터) 한양대 곽노성 교수, 서강대 이덕환 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전무, 동의대 이홍배 교수.
1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경련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소재·부품 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한양대 곽노성 교수, 서강대 이덕환 교수, 전경련 배상근 전무, 동의대 이홍배 교수.

◆ 이홍배 교수, "우리는 제조 강국... 소재 '국산화' 위해선 오히려 독일·일본 등 '설계 강국'과 가까워져야"

동의대 이홍배 교수(무역유통학부)도 한국과 일본의 소재 부문에 주목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소재 부문에서 한국은 '제조 강국', 일본은 '설계 강국'으로 평가했다. 

이홍배 교수는 "부품 부문은 우리가 일본을 상당히 따라잡고 있지만, 그 외 소재 부문에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특히, 소재 부문의 설계기술은 우리가 일본을 (당장) 따라잡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부품과 달리 소재는 '뜯어봐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부품 부문은 선진국에서 제작한 것을 수입한 뒤에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설계기술을 확보할 수 있지만, 소재 관련한 설계기술은 이 같은 방법으론 알 수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설계기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소재 부문의 설계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은 '소재 설계기술 강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이날 세미나 중간에 발표된 "한국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다"는 우리 정부의 선택에 대해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수는 "소재 설계기술 강국과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건 기업이 주도적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정부가 멍석을 깔아줘야 하는데, 이번 조치는 좀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소재(부품 포함) 부문의 국산화를 높이기 위해선 일본과 관계를 끊는 쪽이 아니라, 강화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게 이 교수 입장이었다.

그는 "소재·부품 국산화를 앞당기는 방법은 대내적이 아닌 대외적으로, 일본·독일 등과 교류·협력의 폭을 늘리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세미나 현장.
1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경련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소재·부품 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 곽노성 교수 "화학물질 규제 효율성, 일본이 100이라면 한국은 50... 규제 '모라토리움' 선언해야"

한편, 화학물질 규제 측면에서 일본보다 크게 뒤쳐져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양대 곽노성 교수(과학기술정책학과)는 "규제 효율성 면에서 일본이 100이라면, 우리는 50정도"라며 "일본이 법을 지키면서 업체들이 소재개발과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법을 지킬 경우 업체들이 사업을 접어야 하게끔 제도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는 요원하다고 평가했다.

곽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는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는 어렵다"며 "단순히 몇몇 업체들의 볼멘소리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산업 전반의 문제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소재 산업이 발달했고, 소재 산업을 이루는 화학물질에 대한 평가 기준도 자체적으로 발달해 있는 미국과 일본, 유럽보다도 규제가 많다는 게 곽 교수의 설명이었다. 

석유화학단지. 우리나라는 범용소재 산업에서는 일본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지만, 정밀소재 산업에서는 뒤쳐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석유화학단지. 우리나라는 범용소재 산업에서는 일본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지만, 정밀소재 산업에서는 뒤쳐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그는 "연구를 해야 하는 대학에서도 정부 규제 때문에 화학물질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에 장애가 있을 정도라면, 소재·부품 산업이 발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규제 모라토리움을 선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곽 교수는 "이상보다 현실이 중요하다"며 "규제에 따라 평가할 수 없는 능력인 상황에서 규제를 그렇게 높여선 혼란과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신규·기존 화학물질을 신고해야 하는 현행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을 신규 화학물질만 신고하는 일본과 미국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2018년 백서에 의하면 일본과 미국보다 화학물질에 민감하다는 EU에서도 한국 규제가 너무 심하다고 평가하는 상황이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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