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서 곳곳 초기 삼성 전략 벤치마킹 흔적
삼성 인력, 기술 유출해 R&D 오명은 부담
[녹색경제신문 = 조영갑 기자] IPO 신고서에서 CXMT의 기술 전략을 설명하는 대목 중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跳代研发(도대연발)'이다. 뛸 도, 시대 대, 궁구할 연, 필 발. 풀어쓰면 세대를 뛰어 넘어 연구(R&D)를 펼치겠다는 의미다. 이른바 '점프형 연구개발'인 셈이다. 삼성전자가 D램 세대를 뛰어넘으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던 시기를 연상케하는 대목이다.
실제 CXMT는 DDR4 등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레거시 제품을 '점프'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인 DDR5 시장 등에 신속하게 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LPDDR4X에서 LPDDR5/5X로, 1세대 공정에서 10나노급 4세대 공정으로 곧바로 진입하겠다는 이야기다. 삼성이 과거 일본이 장악한 D램 시장에서 256K D램 승부수를 던지면서 승기를 빠르게 끌어왔듯, CXMT 역시 빠른 기술 이동으로 차세대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이야기다.
다만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삼성 기술 유출 이슈와 인재 빨아들이기 등은 글로벌 IDM 브랜딩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CXMT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우리 법원은 삼성전자의 D램(10나노급) 기술을 CXMT 쪽으로 유출한 전 삼성전자 연구원 A씨에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세대 건너뛰기 전략으로 1-4세대 기술 갖춰"
29일 현지 외신 등을 종합하면, 상하이증권거래소는 CXMT가 최근 제출한 IPO 신고서와 관련 커촹판(科創板 STAR마켓) IPO 심사를 승인하고, 정식 상장 절차 진입을 알렸다. 외신에 따르면 상하이거래소 상장심사위원회는 28일 심사 승인을 확정하고,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에 관련 절차를 이관했다. 우리의 증선위 격인 해당 위원회의 비준을 거치면 CXMT는 상하이거래소에 정식 상장하게 된다.
과창판 상장의 경우 총 주식수 대비 10% 이상의 신주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CXMT는 이번 상장을 통해 약 15%의 신주 발행을 의결했다. 이로 인해 신주가 과창판에 상장되면 CXMT의 총 주식수는 708억1506만주 수준으로, 신주발행 주당가액 2.78위안을 대입해 역산하면 상장 시총은 약 2000억 위안(한화 약 44조2920억원) 가량이 된다. 총 295억 위안(한화 약 6조5328억원) 가량을 조달한다.
업계에서는 예상보다 커촹판 심사가 신속하게 이뤄진 점을 들어 3분기 내 상장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커촹판 상장 심사는 통상 접수부터 완료까지 3개월에서 6개월 가량 소요된다. CXMT가 중국 지방정부 펀드 출자금을 토대로 설립된 사실상의 국영기업인데다 D램 쇼티지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조달이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당국의 신속 심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CXMT는 이번 공모 자금의 상당 부분을 D램 제조 기술 업그레이드에 투입한다. 공모자금을 포함 총 345억 위안(약 7조6393억원)을 캐파 확대 및 D램 제조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비 조달, R&D 등에 투입한다. 세부적으로 ▲메모리 웨이퍼 제조 양산라인 기술 업그레이드에 75억 위안(약 1조 6611억원) ▲DRAM 저장 기술 업그레이드에 180억 위안(약 4조원) ▲장기 연구개발(R&D) 등에 90억 위안(약 2조원) 가량을 투입한다.
1980년대 패스트팔로어 자처한 삼성전자와 오버랩
신고서 곳곳에는 다분히 삼성전자를 의식한 대목들이 눈에 잡힌다. 우선 CXMT가 추구하는 전략이 삼성전자가 초기 D램 사업을 석권할 당시의 레토릭들과 닮았다. CXMT는 '跳代研发(도대연발)'을 화두로, 기술 세대를 신속하게 점프해 신 시장에서 겨루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 대비 기술에서 뒤쳐질 경우 현 세대를 넘어 차세대로 빠르게 진입해 신시장을 선점하는 전략과 유사하다.
지난해 최초 제출된 CXMT IPO 신고서에서 CXMT는 스스로를 중국 D램 산업의 공백을 메운 존재로 규정한다. CXMT 측은 "우리는 D램 핵심 기술 개발을 돌파하고, 상용화 양산을 통해 중국의 D램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보였던 오랜 공백을 메우는 데 일조했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가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 일본 메이커에 맞서 반도체 보국을 설파한 대목과 겹치는 지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CXMT의 발전 전략은 초기 삼성전자와 놀랍도록 유사한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기술-생산-인재-국가전략'의 큰 틀을 엮는 전략적 퍼즐로서 IPO를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IPO가 국내 IDM 메이커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기술적 초격차 달성을 위해 무모하리만치 선제적 투자를 감행하는 공격성도 겹친다. 삼성전자는 이른바 '황의 법칙'을 내세우며 D램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 D램 시장의 판도를 선도하는 존재로서 군림해 왔다. CXMT 역시 신고서에서 약 8조1200억원 가량의 누적 손실을 명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 IPO를 통해 7조원 이상을 단기적으로 CAPEX 투자에 지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단 공정을 담당할 상하이팹 조성이 핵심이다. 시장 선점을 위해 적자 정도는 감수하고 간다는 이야기다.
삼성 출신 인력도 곳곳에 눈에 띈다. 차이마오(1978년 생) 독립이사(사외이사)와 왕단(1983년 생) 이사다. 차이마오 이사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베이징대 전자학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베이징대집성회로학원 원장을 지내고 있다. 왕단 이사는 한국 영주권을 보유한 인물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삼성전자 수석 엔지니어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2019년 CXMT에 입사해 연구개발 이사로 R&D를 이끌고 있다. 사실상 삼성이 키운 인재가 핵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기술 유출 이슈 역시 지속적으로 CXMT를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된 전직 CXMT 개발팀장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A씨는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의 엔지니어로 알려진 인물이다. CXMT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D램 관련 핵심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해당 인물은 삼성 18나노 D램 공정에 관여했으며, 삼성 내부 공정 데이터를 활용해 중국 현지 D램 양산을 주도한 걸로 파악된다. CXMT가 역점을 두고 있는 10나노급 D램 양산과도 기술적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영갑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