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삼성전자에 고객 협상·성과급 부담으로 작용?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SK하이닉스의 자신감 넘치는 올해 실적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곤란해진 것이 정작 경쟁사 삼성전자라는 풍문이 들려옵니다. 단순히 낙관적인 메모리 업황뿐만 아니라 수익 구조까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2026’ 행사에서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1000억 달러(145조원)를 돌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AI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가 산업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고 그 수혜가 실적으로 직결된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그는 메모리 수익성의 ‘왜곡’ 현상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최 회장은 “AI 메모리의 공급 부족으로 올해 부족분(Shortage)이 30%가 넘는다”며 “쇼티지로 인해 일반 칩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왜곡(distor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 회장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고부가 메모리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이익률은 현재 60%를 웃도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높은 수익성 때문에 메모리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HBM 출하 비중을 늘리려고 꾸준히 노력해 왔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보다 높은 이익을 남기는 제품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바로 일반 D램입니다. 최 회장은 “AI 인프라가 메모리 칩을 전부 빨아들이고 있다”며 “일반 메모리 칩의 마진은 80% 수준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HBM보다 일반 칩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이 업황 자신감을 드러내는 수준을 넘어 메모리 업체의 사업 구조까지 드러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경쟁사인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제품별 수익 구조가 공개적으로 언급되면서 자사의 포트폴리오와 맞물려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전언입니다. SK하이닉스가 D램 내 HBM 비중을 상당히 끌어올린 것에 비해 삼성전자는 여전히 일반 D램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LS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D램 내 HBM 출하 비중은 지난해 4분기 약 12~14%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의 HBM 출하 비중은 6% 수준으로 절반 이하입니다. 여전히 범용 D램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양사의 전략 방향도 갈리고 있습니다. 범용 D램 수익성이 단기적으로 HBM을 상회하는 국면이 나타나면서 공급업체별로 제품 믹스 전략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삼성전자는 수익성 극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더이상 삼성전자가 HBM 점유율 확대에 대한 의지가 커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차세대 제품인 HBM4와 고수익성 D램 중심으로 시장에 대응하고 HBM 생산능력 증설 역시 다소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1월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도 삼성전자는 “단기적으로는 HBM보다 서버 DDR 중심의 제품 믹스 운영이 필요할 수 있다”며 특정 제품에 편중하기보다 균형적 공급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부가 제품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SK하이닉스는 업계 선두로서 HBM 중심 전략을 유지해오다 최근에서야 서버 DDR 등 일부 제품 믹스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모습입니다. AI 수요에 대응하면서도 수익성 균형을 고려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업황 공개가 삼성전자에 부담이 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고객 협상 때문입니다. 메모리 산업은 장기 계약과 분기별 협상이 병행되는 구조입니다. 특정 제품군의 마진 수준이 공개적으로 언급될 경우 고객사 입장에서는 가격 협상의 기준점으로 활용할 여지가 생깁니다. 포트폴리오가 폭이 넓은 기업일수록 협상 변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내부 보상 문제입니다. 메모리 업황 호황이 이어질수록 성과급에 대한 기대도 커집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최근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한 경쟁사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성과급 상한을 폐지한 이후 올해 약 4조5000억원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했습니다. 연봉 1억원 기준 약 1억5000만원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는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활용하는 ‘PS(초과이익분배금)’ 체계에 따른 것으로 사실상 실적이 곧바로 보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EVA(Economic Value Added) 기반 산정 구조와 상한선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업부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지급되는 OPI 역시 연봉의 최대 50% 한도 내에서 결정되며, 영업이익에서 세금과 투자비용 등을 차감한 EVA 기준으로 재원이 계산됩니다. 이 때문에 실적이 크게 개선되더라도 투자 규모가 늘어나면 성과급 증가 폭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사실 낙관적인 메모리 업황 자체는 양사 모두에게 호재입니다. 일부 증권가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200조 가까이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업황이 좋을수록 부담도 커집니다. 시장의 기대가 커질수록 고객 협상과 내부 보상 압박 역시 동시에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호황이 만든 기대치가 또 다른 관리 변수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최 회장의 발언은 당사를 포함한 업황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경쟁사 입장에서는 기대치를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해준 셈이 됐습니다. 호황 속에서 삼성전자가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문슬예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