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청소기 양강 구도 속 에코백스 전시 축소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CES는 ‘Consumer Electronics Show(소비자 가전 전시회)’의 약어로, 1967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약 60년 가까이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신기술을 선보여온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입니다. 다만 더 이상 가전만으로 CES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전이라는 폼팩터 자체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외형이나 사용 방식에서 급격한 변화를 주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CES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화질을 개선하는 AI, 사용 패턴을 학습하는 AI, 에너지 효율을 관리하는 AI처럼 가전의 ‘두뇌’를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집약되기 시작했고, CES는 점차 가전 전시회라기보다 AI 적용 사례를 보여주는 무대에 가까워졌습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올해 갑자기 나타난 변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AI를 앞세운 CES는 이미 몇 해 전부터 반복돼 왔고, 현장에서는 “AI가 붙지 않은 제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폼팩터가 등장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시의 발전 방향이 정체돼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정체 속에서 올해 CES는 각 기업이 이 한계를 돌파하는 것보다, 제품을 어떻게 연출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간 구성과 전시 동선을 통해 기존 기술을 재포장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경쟁 구도를 의식한 전시가 두드러졌다는 평가입니다.
삼성, LVCC 떠나 ‘독립 전시’ 실험…집중도 높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CES에서 기존 LVCC 센트럴홀을 떠나 윈(Wynn) 호텔에 단독 전시관을 꾸렸습니다. 전시장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사실상 CES 기간 삼성전자가 독립 전시장을 운영한 셈입니다. 윈 호텔은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가 계열사 행사와 주요 고객사 미팅을 위해 CES 기간 별도로 대관해 온 전용 호텔입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중국 업체들을 의식해 전시장을 옮겼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중국의 베끼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유사한 제품이 같은 공간에 나란히 놓이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을 것이란 전언입니다. 새로운 폼팩터를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비교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삼성의 독립 전시관은 메인 전시장과 떨어져 있어 접근성은 아쉬웠지만, 전시 완성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벽면 전체를 디스플레이로 구성한 입구 연출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줘 압도적이었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여러 기업과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기존 전시장과 달리, 단일 공간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어 몰입도 높은 전시 연출이 가능했다는 관측입니다.
LG전자는 LVCC 센트럴홀 가장자리 출입구와 맞닿은 기존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해당 입구를 통해 들어서면 곧바로 LG전자 부스로 이어지는 구조 덕분에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했습니다. 전시 완성도 역시 중국 업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LG전자는 마이크로 RGB, OLED, 마이크로 LED 등 다양한 TV 기술을 나란히 배치하며 기술 스펙트럼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다만 관람객의 시선은 LG의 주력 제품인 OLED TV에 머무는 모습이었습니다. 크기는 가장 작았지만 선명도와 화면 완성도에서 체감 차이가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시장 전면에 배치된 부속품 코너는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포용적 디자인을 강조했지만, 실제 전시물은 일반적인 생활 부품에 가까워 메시지가 선명하게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홈 로봇 ‘클로이드’도 눈길을 끌었지만,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와 비교되며 기술적 임팩트에서 다소 약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센트럴홀 채운 물량의 중국, 체감 성과는 글쎄...
삼성전자가 빠진 LVCC 센트럴홀 전면은 TCL과 하이센스가 차지해, 메인 출입구 앞쪽이 모두 중국 업체 부스로 채워졌습니다. 가전 박람회인 CES에서 센트럴홀은 가장 중요한 기업이 기술을 선보이는 무대였던 만큼 이 배치는 상징적인 의미가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국은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 데 한계를 나타냈습니다. 부스 규모는 컸지만 신제품이 배치된 밀도가 낮았고, 특히 TV 전시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중국 업체들이 가장 빠르게 추격해 왔다고 평가받는 TV 분야에서도 여전히 한국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미니 RGB TV는 제품 두께가 두드러져 투박한 인상을 줬고, OLED와 경쟁하기에는 블랙 표현력이나 해상도에서 강점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제품에 미니 RGB 소자가 실제로 적용됐는지를 두고 기술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크기나 디자인으로도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욱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마이크로 LED 전시는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모듈 사이 경계가 그대로 드러나 화면에서 일체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TCL의 경우 자회사인 CSOT가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별도로 마련된 CSOT 부스에서 AR용 마이크로디스플레이 등 새로운 기술을 기대했지만 전시 규모는 매우 작았습니다. 시연으로도 모노톤 제품의 제한적인 기술력만 확인할 수 있었고, 컬러 제품에 대해서는 “현재는 체험이 어렵다”는 설명만 들었습니다.
중국 독주 ‘로봇청소기’...에코백스 전시 축소 이유?
그럼에도 중국 업체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인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로봇청소기입니다. 이 시장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사실상 경쟁 구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핵심 소프트웨어 역량과 제품 출시 속도에서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빠르게 제품을 반복 개선할 수 있는 중국 업체들과 달리, 한국 업체들은 생활가전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로봇청소기를 주력 사업으로 키우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로봇청소기 시장 점유율 상위 3개 브랜드는 로보락(19.3%), 에코백스(13.6%), 드리미(11.3%)로 모두 중국 업체였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도 로보락의 점유율은 45~50% 수준으로 추정되며 사실상 독주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베네치안 전시장의 중심은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로보락은 지난해와 동일한 위치에 대형 부스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지난해 CES에서 ‘팔 달린 청소기’를 선보였다면, 올해는 계단을 오르는 ‘다리 달린 이동형 로봇’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술 확장을 강조했습니다. 청소기에서 출발해 ‘가정용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입니다.
반면 지난해 로보락과 비슷한 규모로 베네치안 정중앙에 부스를 꾸렸던 에코백스는 올해 전시장 안쪽 미팅룸 구역으로 밀려났습니다. 직접 부스를 찾아간 기자가 “왜 작년처럼 메인 홀에서 전시하지 않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한 단어로 답했습니다. “예산(Budget).”
판매는 잘 되고 있지만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전시 예산을 줄였다는 설명입니다. 첨예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로봇청소기 시장에서도 이제 CES는 기술을 보여주는 무대라기보다, 투자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공간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CES는 가전 중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신기술 전반을 포괄하는 무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올해 처음 신설된 ‘CES 파운드리(Foundry)’는 차세대 기술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해 CES에서 양자컴퓨팅을 주요 주제로 내세우며 기술 포럼을 운영했던 흐름을 확장해,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기술들을 따로 모아 보여주겠다는 시도였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체감한 CES 파운드리는 전시라기보다 자료의 나열에 가까웠습니다. 실제 제품이나 시연보다는 화면을 통한 데모와 발표 중심으로 구성됐고, 전시장 한편에서 관련 포럼이 간헐적으로 열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체험할 만한 장면이 부족했다는 평가입니다.
문슬예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