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 명분 뒤에 남은 과제, 상장 책임 공백 논란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최근 다수 가상자산에 대해 거래지원 종료(상장폐지)를 연이어 결정하면서, 거래소의 상장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거래소 측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상장은 비교적 쉽게 이뤄지는 반면, 퇴출은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녹색경제신문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빗썸에서 지난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 사이에만 거래유의종목 지정 또는 거래지원 종료 결정을 받은 가상자산이 16개에 이른다. BOA, DICE, EVZ 등 다수 종목이 이 기간 거래지원 종료 일정에 포함됐거나, 거래유의종목으로 지정된 뒤 상장 유지 여부를 다시 심사받았다. 짧은 기간에 이뤄진 대규모 정리 조치를 두고 시장에서는 “사후 정리에 치우친 대응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기간 업비트에서 거래유의종목 지정 또는 거래지원 종료 결정을 받은 가상자산은 5개 뿐이었다.
2025년 초부터 현재 시점까지 기간을 넓혀 살펴보면 빗썸의 거래지원 종료 규모는 더욱 도드라진다. 빗썸에 따르면 해당 기간 거래지원 종료 결정을 받은 가상자산은 36개로 조사됐다. 업비트에서 같은 기간 14개의 가상자산이 거래지원 종료를 받은 것을 고려하면 2.6배 많은 가상자산이 빗썸에서 상장 폐지된 셈이다.
빗썸 측은 프로젝트의 사업 지속성, 공시 이행 여부, 커뮤니티 신뢰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다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거래유의종목 지정 이후 검토 기간이 짧고, 거래지원 종료 결정이 비교적 갑작스럽게 내려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특히 연말·연초처럼 유동성이 낮은 시기에 정리 결정이 집중됐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거래지원 종료 그 자체보다, 그 이전 단계인 상장 심사와 사후 관리의 연결 구조에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는 상장 당시 기술성·사업성·법적 리스크 등을 검토했다고 설명하지만, 이후 수개월 또는 1~2년 만에 다수 종목이 상장 유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퇴출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장 심사 단계에서 어떤 검증이 이뤄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 상장 직후 거래량 급증과 가격 급등을 경험한 뒤, 시간이 지나 거래지원 종료로 이어지며 투자자 손실로 직결되는 사례도 있었다. 거래소 측은 “상장은 투자 권유가 아니다”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상장은 투자자에게 일종의 신뢰 신호로 인식돼 왔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거래소가 상장과 퇴출 모두에 대한 결정 권한을 쥐고 있으면서도 상장 이후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프로젝트의 부실이나 공시 미흡이 거래지원 종료 사유로 제시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리스크가 상장 이전 단계에서 충분히 설명되거나 걸러지지 않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거래지원 종료 제도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이면서도, 동시에 리스크가 현실화된 이후의 사후 관리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한 뒤 유의종목 지정과 퇴출로 대응하는 방식은 예방보다는 정리에 가깝다”며 “상장 단계에서의 검증과 사후 관리 책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거래소들은 상장 자산을 정기적으로 평가·검토해야 하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 다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상장 심사 기준과 유지·퇴출 판단 과정이 거래소 자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상장 책임을 제도적으로 어디까지 묻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코인 무더기 퇴출’ 흐름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왜 이 코인이 퇴출됐나'가 아니라 '왜 이 코인이 상장됐나'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연말·연초에만 16개 종목이 정리 대상에 오른 현실은, 거래소 상장 심사 체계와 사후 관리 구조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빗썸의 대규모 거래지원 종료는 단순한 종목 정리를 넘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를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평가다. 상장은 거래소의 판단이지만,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정비가 진행되는 만큼, 상장 단계에서의 책임과 사후 관리 기준을 어떻게 정교화할 것인지가 향후 시장의 신뢰를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빗썸 관계자는 "빗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회원사는 DAXA가 제정한 ‘가상자산 거래지원 모범 사례 가이드라인’에 따라 거래지원 유지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면서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유의 촉구, 거래유의 종목 지정, 거래지원 종료 등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금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