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차 브랜드, 세미 오프로더로 남심 저격
[녹색경제신문 = 이현성 기자] SUV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선 가운데, 제조사들의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틈새 시장마저 놓치지 않기 위한 트림 세분화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기본 모델에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해 보다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고자 한다. 네바퀴굴림 SUV 특유의 험로 주행성을 강조한 ‘세미 오프로더’가 대표적인 예다.
SUV가 자동차 시장에서 대세로 떠오른 배경에는 ‘도심형 SUV’가 있다. 오늘날 SUV는 픽업트럭의 뼈대 버리고 모노코크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며 세단에 가까운 승차감과 정숙성을 손에 넣었다. 소비자는 하나의 자동차로 출퇴근부터 레저 활동까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SUV에 열광했다.
SUV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열기는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시장 규모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시장조사업체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SUV 시장 규모는 2023년 7900억달러에서 2025년 8900억달러로 확대됐다.
우리나라 도로 위만 봐도 SUV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SUV 운행 대수는 817만9806대로 전년 대비 6.7% 늘어났다. RV는 167만8606대로 3.9% 올랐다. 반면 세단은 1003만9957대로 2.2% 줄었다.
그런데 SUV 대중화는 또 다른 경쟁을 불러오고 있다.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다양한 차체 크기와 파워트레인의 SUV를 쏟아내며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트림 세분화 전략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른 개념이 ‘세미 오프로더’다.
세미 오프로더는 도심형 SUV에 정통 사륜구동 오프로더의 이미지를 투영한 차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험로 주행 시 차체 손상을 방지하는 플라스틱 클래딩으로 차체 하부를 두르고, 올터레인 타이어와 견인 고리 등으로 꾸며 오프로더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에 변주를 주기도 한다. 로우기어와 디퍼렌셜락 등 본격 오프로더의 하드웨어는 없지만, 주행 모드에 머드·샌드·스노우 등을 추가해 간단한 비포장도로 주행성을 끌어올린다. 일상 주행 시 편안한 승차감을 유지하되 활동 반경을 한 단계 넓힌 것이 핵심이다.
토요타는 세미 오프로더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로 꼽힌다. 2000년대 초 픽업트럭에 TRD 오프로드 트림을 선보인 이후, 4러너와 라브4 등 도심형 SUV에 확대 적용했다. 이를 통해 세미 오프로더가 소수 마니아가 아닌 대중에게도 매력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닛산 트레일스포츠, 볼보 크로스컨트리도 이와 흐름을 같이한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도 북미 시장에서 세미 오프로더 트림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현대차는 투싼과 싼타페, 아이오닉 5 등 SUV 라인업에 XRT 선택지를 추가한 데 이어, 오프로드 성능을 한층 강조한 팰리세이드 XRT 프로를 선보였다. 기아 역시 패밀리 SUV와 아웃도어의 결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공개한 텔루라이드는 개발 단계부터 디자인 테마를 도심형 SXP와 세미 오프로더 X-프로 둘로 나눠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미 오프로더의 매력은 ‘실용성’에 있다. 정통 오프로더 대비 연비와 정숙성, 승차감 손해가 적고, 도심 주행에서는 일반 SUV와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캠핑장 진입로, 눈길,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여기에 전용 범퍼 디자인과 보호 클래딩, 올터레인 타이어를 더해 운전자로 하여금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세미 오프로더의 부상은 SUV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라며 “세미 오프로더의 잠재력은 실제 험로 주행 성능과 빈도와 무관하게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현성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