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임채영 기자] 최근 시장 일각에서 제기된 'AI(인공지능) 거품론'으로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들의 주가가 조정을 받은 가운데, 브로드컴과 미디어텍 등 주요 기업들이 압도적인 수주 잔고를 앞세워 시장의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DigiTimes)는 이들 기업이 수익성(마진)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시장 점유율 확대를 택한 것은 거품 붕괴가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16일 디지타임스는 최근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 이후 불거진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브로드컴이 공개한 AI 제품 수주 잔고(Backlog)는 최소 730억 달러(약 10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향후 6개 분기 동안 소화해야 할 막대한 물량으로, AI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허상'이 아닌 '실재'함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풀이된다.
보도에 따르면 시장이 우려하는 지점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수익성 저하'다. 브로드컴 CEO 혹 탄(Hock Tan)은 "AI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마진율은 비(非)AI 제품보다 낮다"고 시인한 바 있다.
디지타임스는 이러한 마진율 하락의 원인을 '고객사의 변화'에서 찾았다. 구글, 아마존 등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들의 칩 개발 역량이 강화되면서, 전단(Front-end) 설계를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팹리스 업체들은 핵심 아키텍처 설계 대신 IP 제공이나 후공정 관리 등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하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마진율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즉, 주문은 폭주하지만 예전만큼 높은 이익을 남기기는 어려운 '박리다매'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주요 팹리스 기업들이 이 '저마진 게임'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타임스는 "브로드컴, 마벨, 미디어텍 등 전통의 강자들은 '이익률 방어'와 '매출 외형 성장'이라는 갈림길에서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며 "이는 AI 시대에 기술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치러야 할 합당한 대가이자 입장료"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디어텍 측은 "ASIC 사업의 매출총이익률은 다소 낮을 수 있으나, 영업이익률단에서 이를 상쇄할 수 있어 전체적인 수익 구조는 통제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매체에 따르면 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이 브로드컴의 마진율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이는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향후 2군 업체들까지 가세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더라도, 선두 업체들은 수익성보다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고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채영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