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선 빅테크 고객 확보, HBM선 퀄 통과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지난 7월 대법원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의혹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4년 10개월에 걸친 사법 리스크가 종결되면서 경영 정상화의 길이 열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직후 삼성의 행보다.
그동안 ‘위기설’이 따라붙던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HBM이라는 두 핵심 사업에서 연이어 성과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풀린 시점과 사업 성과가 맞물리면서 경영 정상화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운드리: TSMC와 격차 여전하지만, 고객사 확대 성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그동안 TSMC에 점유율을 크게 내주며 고전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은 7.3%에 그쳤다. 이는 전 분기(7.7%)보다 더욱 낮아진 수치로, 전년동기 약 11% 수준에서 1년 새 크게 하락한 결과다. 같은 기간 TSMC는 70.2%를 기록해 격차가 62.9%p에 달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두 자릿수 점유율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삼성전자의 점유율 축소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삼성은 이러한 점유율 하락세 가운데 최근 굵직한 고객사 계약을 확보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 7월 말 삼성은 테슬라와 약 22조원 규모의 차세대 AI 칩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신공장에서 생산되는 해당 칩은 테슬라의 자율주행용 차세대 AI6 칩으로, 최소 8년 이상의 장기 공급이 예정된 초대형 계약이다.
이어 지난 8월 애플과는 이미지센서(CIS) 및 일부 칩 위탁생산 협력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애플의 미국 내 생산 다변화 전략과 맞물려 삼성의 텍사스 오스틴 팹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9월에는 IBM과 차세대 서버용 CPU ‘파워11’ 칩 파운드리 계약을 맺었다. 해당 제품은 7나노 개량 공정과 2.5D 패키징 기술이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불과 몇 달 새 테슬라·애플·IBM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잇달아 고객 명단에 올리면서, 한동안 고객사 부재 논란이 이어지던 삼성 파운드리의 입지가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HBM: 엔비디아 퀄 통과로 반전 계기 마련
메모리 사업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삼성은 D램 전체 점유율에서는 줄곧 1위를 지켜왔지만, 최근 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HBM에서는 경쟁사에 밀렸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5년 2분기 HBM 시장 점유율을 SK하이닉스 62%, 마이크론 21%, 삼성전자 17%로 집계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40%대였던 삼성의 점유율이 20%p 이상 하락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지연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한 삼성은 올해 상반기 전체 D램 시장에서마저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줬다. 하이닉스는 HBM 효과를 기반으로 매출 점유율이 삼성보다 앞서며 D램 시장 전반에서 우위를 갖게 됐다. 이는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의 장기 우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삼성은 1c 공정 기반의 HBM4 개발을 순조롭게 진행하면서 기술 격차 축소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삼성이 차세대 HBM에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적용할 가능성도 언급되며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주 HBM3E 12단 제품이 엔비디아의 퀄리피케이션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삼성의 HBM3E 퀄 통과가 이뤄지며 SK하이닉스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위기’에서 ‘반등’으로
삼성전자는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분야의 고부가가치 사업인 파운드리와 HBM 두 축 모두에서 위기론에 시달렸다.
파운드리는 TSMC에 밀려 점유율이 크게 하락했고, 테일러 공장은 고객 부재로 가동을 연기한 채 표류했다. HBM에서는 하이닉스가 엔비디아 공급망을 장악하는 동안 삼성은 연속으로 인증 탈락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직후 테슬라·애플·IBM 등 굵직한 고객사 확보, HBM3E 퀄 통과와 HBM4 순항 등 성과가 이어지면서 삼성이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다만 점유율과 기술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수율 안정성 확보와 첨단 공정 경쟁력 회복이 향후 성과 지속 여부를 가를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성과가 우연한 반짝 성과인지, 구조적 경쟁력 회복의 신호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삼성은 이번 기회를 실질적 반등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슬예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