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경 칼럼] 한국 반도체, AI반도체는커녕 시스템반도체서도 경쟁력 상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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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경 칼럼] 한국 반도체, AI반도체는커녕 시스템반도체서도 경쟁력 상실 우려
  • 방형국 기자
  • 승인 2021.01.28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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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경쟁력 확보하지 못하면 AI반도체 꿈도 못꿔
-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인텔·TSMC와 기술 경쟁력 격차 확대 우려
- 시스템반도체의 4차산업혁명 실패하면 5차산업혁명은 딴 세상 얘기

지난 1997년 환란이 터지기 직전까지도 경제관료들은 수출이 잘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게 없다며 자신만만했다. 착각이었다. 걱정할 거 없다던 수출은 반도체로 인한 착시였고, 착시의 대가는 길고, 가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친 지난해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는데 그나마 수출이 성장률을 1.3%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총수출은 5128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5.4% 감소했지만, 반도체 수출이 전년보다 오히려 5.6% 증가, 992억 달러를 기록하며 수출입국의 체면을 살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수출도 반도체 덕에 그나마 선방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반도체에 기대어 살고 있다.

한국경제의 심장 반도체산업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는 수출의 증감이나, 호황이냐 불황이냐 따위가 아니다. 머지않은 날에 한국이 반도체 경쟁력이 3류를 지나 반도체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마느냐의 절체절명의 위기다.

산업생태계는 지금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핀테크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4차산업혁명을 향해 치닫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전에 5차산업혁명 얘기가 나오는 지경이다.

종전 3차산업혁명의 끝에서는 메모리반도체가 군림했고, 그 덕에 우리는 세계 최강의 반도체 경쟁력을 구가했다. 

4차산업혁명에 기대어 사는 지금 우리의 반도체 경쟁력은 1.5류다. 1류와 2류 사이에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1류이나, 4차산업혁명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스템반도체와 설계 위주의 파운드리에서는 2류다. 그래서 우리의 반도체 랭킹은 1.5류다.

반도체시장에서 1류로 군림해야 하는데 그게 요원하다.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시스템반도와 파운드리에서 세계 최강 국가들과 최강 기업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들을 따라 잡지 못하면 우리는 3류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산업에서 2류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다. 그 말은 패배자의 낙인(烙印)이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5차산업혁명은커녕 4차산업혁명도 딴 세상 얘기가 되고, 시스템반도체 이후 세상을 지배할 '인공지능(AI)반도체'는 꿈도 꿀 수 없다.

4차산업혁명 패전국에게 5차산업혁명에 참전할 자격과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현재 인류가 계획하는 반도체기술의 정점은 AI반도체이지만 우리는 중간 단계인 시스템반도체 근처에도 못가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를 거치지 않으면 AI반도체로 갈 수 없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기술에 30조원의 재원을 투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도 지난해 오는 2030년 시장 점유률 30%를 목표로 1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산업 육성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30조원, 50조원을 쏟아붓는 와중에 10년 동안 1조원으로는 어림도 없고, 관료주의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육성한다는 구실로 기업에 이래라, 저래라 하며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세계적인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서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해서 삼성전자의 업무가 올스톱될 리는 없다. 웬만한 투자나 판단, 결정은 종전대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반도체 등에 대한 투자는 얘기가 다르다. 투자규모가 수십조원대에 이르고, 기업의 체질과 한국 더 나아가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세기적(世紀的)인 판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미래 명운을 결정할 시점에서 오너의 있고 없고는 이같은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투자 적기를 놓치면 인텔 TSMC 등 글로벌 경쟁사와의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경쟁력 격차는 지금보다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삼성전자는 인텔과 TSMC에 밀려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19조원에 이른다. 이는 26조원2000억원(237억달러)의 인텔과 21조9700억원(5565억타이완달러·TWD)의 TSMC에 밀려 글로벌 3위에 그치는 수준이다.

TSMC의 매출은 52조9000억원(1조3393억타이완달러·TWD)으로 73조원의 삼성전자보다 매출규모가 적음에도 이익은 3조원을 올렸다. TSMC는 지난 2019년 영업이익 14조7216억원으로 당시 삼성전자(14조200억원)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난해 격차를 더욱 벌렸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자율주행, 4차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반도체 수요가 종전 메모리에 시스템반도체 및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쪽으로 급격히 넘어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에게 지금 일분일초가 아쉬운 실정이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 새로운 도약(밥거리/일거리)의 발판을 마련해야 함에도 팔다리가 묶여 나갈 방향을 잃었다. 오너의 결단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의 부재로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은 치명상을 입게 됐다. AI반도체로 집약될 미래 반도체산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에 몰렸다. 이 치명상의 대가가 우리를 먹여살리고,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후진국으로 몰락시킬까 두렵다. 

아마존의 커스터머 칩 '그라비톤 2' 이미지 [녹색경제신문 DB]
아마존의 커스터머 칩 '그라비톤 2' 이미지 [녹색경제신문 DB]

 

방형국 기자  re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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