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Very lonely’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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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Very lonely’ 트럼프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4.2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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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서니 파우치 소장(왼쪽 팔짱 낀 이)이 트럼프 대통령이 브리핑하는 사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네이처/Andrew Harrer/Bloomberg/Getty]
엔서니 파우치 소장(왼쪽 팔짱 낀 이)이 트럼프 대통령이 브리핑하는 사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네이처/Andrew Harrer/Bloomberg/Getty]

외롭고 쓸쓸한 ‘고독’. 스스로 즐기면 가끔 도움이 된다. 문제는 외부 요인으로 고독을 당할 때이다. 이때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다. 그 고독은 깊고 아플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고독’을 표현한 장면은 많다. 그중 압권은 ‘내부자들’에 나왔던 국회의원이자 대권 후보였던 장필우 장면이지 않을까.

경제(미래자동차), 언론계(조국일보)와 유착해 차기 대권을 향해가던 장필우는 내부 고발자에 의해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 국민을 개, 돼지로 봤던 재벌 총수와 언론사 주필, 이들과 협잡을 통해 권력을 쥐고자 했던 장필우. 출국금지와 체포영장이 발부된 그의 끝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한 호텔이었다.

침대 모서리에 등을 기댄 장필우는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 재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입술은 메말라 있다. 수염은 깎지 않아 덥수룩하다. 방바닥에는 빈 소주병이 대여섯 병 나뒹굴고 있다. 소주병 사이로 아무렇게나 뭉쳐진 휴지가 지저분하게 놓여 있다. 텅 빈 눈동자로 창문 너머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읊조린다.

“졸X, 고독허구만.”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전 세계 지도자들은 지금 고독하다. 자처한 고독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전문가로부터 외면받은 고독이다. 점점 이들 지도자가 설 땅은 좁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독은 짙다. 앞으로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9일(현지 시각) N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동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의 10명 중 5명 이상(52%)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36%에 머물렀다.

반면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와 자신들이 속한 주의 주지사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각각 69%와 66%를 차지했다. 미국은 19일 현재 코로나19 관련 총 확진자 75만7636명, 사망자 4만223명을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는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WHO)에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WHO가 코로나19와 관련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도 향하자 이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겠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발표 뒤 전 세계는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섰다. WHO는 선진국뿐 아니라 전 세계 취약한 국가 보건 시스템을 지원하는 만큼 섣부른 판단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과학 전문매체 네이처 지는 최근 트럼프의 WHO 지원중단을 두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네이처 지는 “WHO 지원중단은 잘못된 것이고 위험하다. 반드시 뒤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WHO는 코로나19뿐 아니라 에볼라, 메르스 등 전 세계 감염병과 관련해 특히 취약 국가 지원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WHO가 지난 1월 30일 코로나19와 관련해 국제 공중 보건 비상 사태(PHEIC)를 발표했었다. 이를 두고 뒤늦은 대처라는 전 세계적 비난이 있는 게 사실이다. 네이처 지는 “당시 발표는 해당 기관의 회원국이 권장 사항을 따르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며 “포괄적 테스트,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격리, 접촉자 추적 등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네이처 지는 “WHO 지침에 따라 독일, 싱가포르,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는 빠르게 행동했다”며 “미국은 이러한 권장 사항을 따르지 않은 국가 중 하나였다”고 반박했다. WHO가 제 기능을 못 한 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WHO 권고 사항을 오히려 따르지 않아 이번 사태가 커졌다는 진단이다.

물론 WHO에 대해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무엇이 옳았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WHO의 부족한 부분이 파악되면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지원중단이란 극약처방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현재 미국 연구원과 과학자,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조처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WHO 지원중단 결정을 철회하라는 주문이다. 트럼프의 ‘고독’은 여기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민은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트럼프보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을 더 신뢰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코로나19와 관련해 “날씨가 따뜻해지면 좋아질 것”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이 도움이 될 것” 등 그동안 비과학적 발언을 수없이 날렸다. 이럴 때마다 파우치 소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충고를 잊지 않았다. 이런 파우치를 두고 트럼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를 해고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방송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 트럼프는 기자 회견 도중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하면 “당신 언론사는 망해야 한다”는 등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와중에 최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대처를 매우 잘하고 있다는 자체 홍보 동영상을 틀었다가 CNN 등 미국 주요 방송국이 생방송을 중간에 끊어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생방송 브리핑을 중간에 방송중단할 정도면 트럼프의 ‘고독’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도 남을 법하다.

조만간 트럼프도 백악관이 보이는 한 호텔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이렇게 되뇔지도 모르겠다.

“Very lonely.”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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