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과거 세대 회장들과 다른 차원의 경영쇄신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이같은 부회장 발(發) 광폭행보는 지속될 것이라는 변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인도 국빈 방문 중 노이다의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와 투자 확대를 당부한 한 마디에 이 부회장의 경영쇄신책을 비롯한 광폭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 4차례 해외 출장을 조용히 다녀오긴 했지만 이 부회장이 공개된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부회장이 공식 행사에서 문 대통령과 만남을 통해 국내 경영 행보를 자연스레 재개한 모양새다. 

이 부회장은 지난 3월 유럽과 캐나다 순방에 이어 5월에는 중국과 일본 출장길에 오른 바 있지만 이것은 의례적인 글로벌 경영챙기기로 대통령과의 만남을 염두에 둔 인도 출장과는 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반도체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조정위원회의 중재 방식을 무조건 전격 수용하기로 한 것도 지금까지의 삼성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아직 조정위 중재안이 나온 상태는 아니지만 기존 삼성과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접근법이고 당연히 이 부회장의 의중이 담겼다는 것. 

 

따라서 삼성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사망한지 11년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다만 삼성은 중재안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선에 머물지 말고, 그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와 가족들에 책임있는 사과와 함께 직업병을 없애기 위한 대책 마련 등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았다.

 

재계에서는 백혈병 문제, 무노조 경영, 경영쇄신 등 삼성이 당면한 문제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은 물론 신뢰 회복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며 이는 이재용 체제에서의 향후 지향점을 예고해주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전자 홍보마케팅에서도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 디지털시티'에 출입기자들을 대거 초청해 2018년형 TV '더 프레임' 등을 공개했다. 삼성 디지털시티에 기자들을 초청한 것은 2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2일, 서울시 중구 태평로빌딩 기자실에서 자사의 무풍에어컨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이 또한 2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고객들과 접점인 미디어를 통해 친숙하게 다가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의 본격적인 신뢰회복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무노조 삼성'이라는 공식도 이 부회장 체제 이후 깨지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삼성전자서비스는 약 8,000여명 규모의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1938년 삼성 설립 이후 80년간 지속됐던 '무노조 경영' 원칙이 폐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렇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사실상 용도 폐기된 상황이다. 삼성에는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해 삼성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웰스토리,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SDI, 삼성화재, 삼성중공업 등 다수의 기업에 노조가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엔지니어링 등은 민주노총 소속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노조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현재 삼성은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 상생 강화, 사회공헌 등을 통한 경영 쇄신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대통령 면전에서 "국내에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해달라"는 말을 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이같은 움직임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삼성 주요 관계자들은 함구를 하고 있지만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삼성 디지털시티 행사에 참석한 삼성 관계자는 "(대통령 만남 이후 투자와 일자리 관련)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삼성은 이미 구체적 계획에 대한 준비는 이미 끝내고 세부 규모와 발표 시기를 조율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같은 삼성의 움직임을 전반적으로 삼성의 위기국면을 타개하기위한 승부수로 해석하는 의견도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 자신의 국정농단 사건 연루는 물론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삼성증권 유령증권 배당사고 등 주요 계열사가 연루된 부정적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문 대통령이 주문한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요청에 화답하는 모양새로 대규모 경영쇄신안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최대 100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통큰 투자를 포함한 경영쇄신안이 나올 것이라는 추측 등이 무성하다. 삼성은 지난 정권에서 경제활성화 주문에 50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바 있어 현 정권의 소득주도 성장에 맞춰 2배의 투자는 필요하다는 것. 반도체를 통한 이익 등 투자 여력은 있다. 삼성은 대중소 상생과 신사업 발굴 등에 투자가 이루어질 전망이 나온다. 국내 주요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들을 위한 대규모 펀드 조성, 인공지능(AI)을 비롯 신사업 투자 등이 예상된다.

 

일자리 고용 창출의 경우 삼성그룹 전 계열사 차원에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각 계열사별 채용 가능 인원수를 파악한 뒤 전체 채용 규모를 결정하는 기존 방식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별 채용 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론 협력사들도 채용을 늘리는 상생 고용 방안도 예상된다. 채용과 투자 등에 있어 삼성과 협력사가 함께 안정적인 상생 생태계를 만드는 형식이다. 하반기 채용 규모만 7,000명이 넘고 1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회공헌 대책도 곧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헌 전체적인 윤곽은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장 상근 고문이 주도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보유한 세계적 기술력을 기반으로 교육, 안전, 빈곤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업시민으로서의 의무로 보고 있다. 이는 기업의 비즈니스와 사회적 책임이 선순환 가치로 상생하는 CSV(공유가치창출) 개념과 관련이 깊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국정농단 관련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의 고민은 삼성을 책임진 3세 경영자로서 삼성의 신뢰 회복에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은 기존 삼성의 경영 관행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문 대통령의 한 마디는 해외로 떠돌던 이 부회장의 국내 광폭행보로 이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구체적 행보가 담긴 대규모 경영쇄신책에 국민적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