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등장한 '아이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다...4차산업혁명 단초된 '혁신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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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등장한 '아이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다...4차산업혁명 단초된 '혁신의 아이콘'
  • 백성요 기자
  • 승인 2017.06.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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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등장 이후 세계 IT 시장 재편, 10년간 아이폰이 선보인 혁신
故 스티브 잡스 애플 CEO

2007년 6월29일, 10년 전 오늘. 애플의 첫번째 아이폰이 판매를 시작했다. 그해 1월 9일, 고(故)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선보였던 아이폰이 드디어 대중들의 손에 쥐어지기 시작했다. 

잡스는 2007년 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스콘 웨스트에서 열린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3.5인치에 키보드도 없는 심플하고 유려한 디자인의 2G 폰을 들고 나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애플은 휴대폰을 재발명할 것입니다. 이 제품의 이름은 아이폰입니다"

결과적으로 잡스의 이 발언은 겸손한 표현이 됐다. 아이폰은 휴대폰의 재발명 정도가 아니라 인류의 생활 양식을 바꿔놓을 정도의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아이폰으로 전화, 인터넷 검색, 지도, 음악 감상, 동영상 감상을 시작했다. 당시 인기였던 MP3 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PDA 등의 제품은 빠르게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영원할 것만 같던 휴대폰의 절대 강자 노키아가 존폐의 기로에 섰고, 모토로라는 여기저기 팔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아이폰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IT 기업과 통신사에 혁신을 강요했다. 

아이폰의 대성공이 불러온 글로벌 모바일 시장 재편

2007년 1월 9일,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최초의 아이폰을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

아이폰은 출시 첫 해 129만대가 팔렸다. 500달러가 넘는 높은 가격임에도 소비자들은 아이폰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했다. 당시로서는 대체제가 없는 유일한 기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대폰에 으레 있게 마련인 숫자 키패드도 없다. 모든 기능은 홈버튼과 터치로 설정과 조작이 가능했다. 아이폰의 하드웨어를 활용한 새로운 기능 추가도 쉽다. 애플이 함께 공개한 앱스토어에서 앱을 내려받아 설치하면 된다. 

기존에는 제조사가 제공하는 몇몇 소프트웨어 외에 사용자가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면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애플은 앱스토어라는 소프트웨어 시장을 열고 판매자(개발자)와 중개자(애플)가 7대3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모델을 제시했다. 개발자들은 앱스토어로 몰렸고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다. 애플이 제시한 생태계는 이후 다른 앱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기존 2G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강자 노키아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노키아의 공백을 치열한 경쟁 끝에 채운 것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카피캣'이라는 비난에도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애플보다 더 높은 스펙의 하드웨어를 채택하고, 운영체제로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선택했다. 

초기에는 아이폰의 성능에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의 OS 최적화와 하드웨어 퍼포먼스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2012년을 기점으로 애플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양강구도가 굳어지게 됐다. 

모토로라 등 유명 휴대폰 제조사들도 다양한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놨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모토로라는 결국 여기저기 팔려다니는 신세가 됐고 '모토로라의 저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아이폰이 국내에 미친 영향

10년 전인 2007년 6월29일 판매를 시작한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2009년이 되어서다.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국내 시장은 삼성전자의 '햅틱'으로 대표되는 터치형 3G폰이 대세를 형성했다. 

당시 위피(WiPi)라는 무선 인터넷 플랫폼이 국내 핸드폰에 의무탑재됐고, 이를 이용한 데이터 통신만이 가능했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만 접속이 가능했고, 인터넷 접속을 위한 데이터 요금은 너무 비쌌다. 

국내 소비자들은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Wi-fi) 기능이 국내용 핸드폰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쌓여가고 있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지만 'IT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던 시점이다. 

2009년 11월29일, 아이폰이 등장한지 거의 3년만에 드디어 KT가 단독으로 아이폰3GS를 국내 출시했다. 당시에 많은 해석이 나왔지만 이통시장 점유율 1위인 SK텔레콤을 위협하기 위한 KT의 과감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출시 100일만에 40만대의 아이폰3GS가 팔렸다. 국내 휴대폰 시장은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2009년 81만명에 머물렀던 스마트폰 가입자는 3년만인 2012년에는 3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은 스마트폰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LG전자의 옵티머스, 팬택의 시리우스 등의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아이폰3GS와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윈도우모바일 기반의 옴니아는 '전지전능'이라는 광고카피가 무색할 정도의 평가를 받으며 아직까지도 삼성전자의 대표적 실패작으로 남았다. 

10년간 아이폰이 보여준 혁신

애플은 아이폰5까지 단일 모델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1년에 한 번씩 신제품을 출시했다. 첫 모델과 지금의 모델 디자인이 큰 틀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정도로 일관성과 정체성을 유지했다. 또 짝수해에 모델 숫자를 바꾸고 홀수해에 기능이 대폭 향상된 S 모델을 내놓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애플의 첫 2G 아이폰

아이폰이 첫 등장한 2007년.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멀티터치와 사파리 브라우저를 통한 인터넷 검색, 아이팟을 그대로 이식한 음악 재생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2008년, 애플은 3G 통신 규격의 아이폰3G와 함께 개발자를 위한 모바일 앱스토어를 선보였다. 애플이 구축한 앱스토어, 애플뮤직, 아이튠즈 등으로 대표되는 생태계는 애플이 전세계 시총 1위 기업이 되는 밑바탕이 됐다. 또 아이폰3G에 최초로 GPS 기능이 포함됐다. 

2009년 애플은 아이폰3GS를 공개한다. 구글 맵과 함께 사용가능한 나침반 기능이 추가됐고, 복사-붙여넣기도 할 수 있게 되며 더욱 '컴퓨팅' 기능이 향상됐다. 

2010년의 아이폰4는 애플에게 의미있는 모델이다. 처음으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직접 설계했다. 이전까지는 삼성전자의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A4 CPU를 장착해 전작들에 비해 월등한 속도 향상을 이뤘고, 배터리 수명도 늘었다. 또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장착됐고 영상통화인 페이스타임을 위한 전면 카메라도 탑재됐다. 

2011년에는 애플의 인공지능 음성인식 비서 '시리(Siri)'가 아이폰4S와 함께 공개됐다. 1080p의 풀HD 영상 녹화가 가능했고, 아이클라우드를 이용해 계정 정보를 백업할 수 있게 됐다. 아이메세지가 등장한 것도 이 때다. 

2012년 아이폰5가 공개됐다. 통신규격이 LTE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디스플레이 크기가 3.5인치에서 4인치로 커졌다는 점이다. 당시 삼성전자 등 글로벌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자 대화면 전략을 구사했다. 3.5인치가 휴대용 기기인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사이즈라고 주장하던 스티브 잡스 사후 첫 공개된 아이폰에서, 애플은 결국 화면의 크기를 0.5인치 늘렸다. 다만,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사이즈라는 전제 하에. 아이폰5와 함께 애플은 라이트닝 커넥터를 채택했다. 기존의 30핀 케이블과 호환되지 않으며 불만을 낳기도 했다. 

2013년 등장한 아이폰5S에는 지문인식 기능이 탑재됐다. 홈버튼에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잠금해제가 가능했다.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제조사가 채택하고 있는 보안 방식이다. 이와함께 AP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애플이 새롭게 설계한 A7칩은 64비트를 지원해 보다 빠른 영상처리가 가능해 졌다. 이때부터 애플은 2가지 모델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지문인식 기능이 빠지고 다양한 색상을 강조한 약간 저렴한 버전의 5C가 5S와 함께 소개됐다. 

아이폰6와 아이폰6plus

2014년에 등장한 아이폰6는 애플의 변화를 의미했다. 애플페이 등의 새로운 서비스가 탑재되기도 했지만, 잡스 사후 애플의 정체성을 잃었다거나, 더이상 애플은 혁신의 아이콘이 아니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애플은 아이폰의 크기를 4.7인치로 늘렸고, 5.5인치의 아이폰6플러스 모델을 함께 선보였다. 애플의 관례에 어긋나는 제품인만큼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폰6는 현재까지 2억2000만대가 팔리며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아이폰이 됐다.

2015년에는 3D 터치 기능이 추가된 아이폰6S/6S+ 모델이 공개됐다. 3D 터치는 화면을 누르는 감도에 따라 사진이나 메일을 미리 볼 수 있다거나 하는 기능을 구현한다. 또 애플뮤직의 서비스가 시작됐다.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뒤로가기 버튼이 화면 우측 상단에 표기된다는 점이다. 

2016년,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한 아이폰7이 공개됐다. 아이폰 최초로 플러스 모델에 듀얼카메라가 탑재됐고, 방수, 방진 기능도 추가됐다. 그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3.5mm 이어폰 잭을 과감히 없앤 점이다. 애플은 에어팟이라는 무선 이어폰을 악세사리로 판매하며 전통적인 이어폰 잭을 없앴다. 

2017년, 올 가을 발표할 아이폰은 아이폰7S와 10주년을 기념하는 아이폰8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홈버튼이 없어지고 베젤리스 디자인이 구현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애플의 혁신이 예전만은 못하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스마트폰의 역사를 열었던 애플의 신제품은 언제나 소비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백성요 기자  sypaek@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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