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승계 목적 '주식담보대출' 증가하는데… 제도 '미흡' 투자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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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승계 목적 '주식담보대출' 증가하는데… 제도 '미흡' 투자자 '불안'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0.10.2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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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대출 비중 두산 96.2% 1위… 60% 넘는 롯데·금호석화 등 줄 이어
의결권 손상 없이 유동성 확보… 경영·승계 자금 마련 창구로 이용
투자자엔 '리스크'…주식담보대출 비중 정해놓은 나라들과 비교해 규제 '미흡'
[자료=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이 기업 배당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자료=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이 기업 배당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대기업집단 오너 일가가 '주식 담보대출' 비중을 늘려가면서 투자자 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다. 총수가 있는 55개 그룹 가운데 보유 주식의 약 18%가 담보로 제공됐을 정도로 비중이 큰데도 국내 제도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국내 대기업집단은 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추세다.

CEO스코어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 9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64개 대기업 집단 중 총수가 있는 55개 그룹은 보유 주식의 17.9%를 담보로 제공했다. 2017년 말 12.3%에서 5.6%p 상승한 수치로 담보로 제공한 주식의 가치는 9조206억원에서 14조8328억원으로 64.4%(5조8122억원) 증가했다.

주식 담보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두산그룹으로 96.2%를 기록했다. 롯데(65.1%), 금호석유화학(61.6%), 한진(55.6%), 유진(55.4%), 현대중공업(51.8%) 등은 50%를 넘겼다. 그 뒤를 SK(48.3%), 한화(47.9%), 한국테크놀로지그룹(46.4%), OCI(39.1%), 효성(38.1%) 등이 이었다.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은 의결권의 훼손 없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대주주가 개인 자산을 활용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경영자금이나 승계자금 마련, 상속세 등 세금 납부 등이 주목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개인 의사결정인데도,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불러 대리인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경영진이 주주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오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임병권 한국주택관리공사 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발표한 '내부자의 주식담보대출이 주가급락위험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임 연구위원은 "최대주주나 주요주주 등의 기업 내부자가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주식 담보대출은 주식수익률의 변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기업 내부자의 주식담보대출과 주가 급락 위험은 일련의 관련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가 급락의 위험성은 코스피보다는 코스닥 시장에서 더 크고, 내부자의 총 주식담보대출 비율이나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내부자의 인원수가 증가할수록 주가급락위험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집단이 대부분 코스피 상장 기업이긴 하지만 담보 제공 비율이 90% 넘는 두산을 비롯해 롯데(65.1%), 금호석유화학(61.6%), 한진(55.6%), 유진(55.4%), 현대중공업(51.8%) 등 국내 기업들은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려워보인다.

박진모 울산대 회계학과 교수 역시 지난 8월 지역산업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대주주 등의 주식담보대출은 개인 의사결정이지만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된다"며 "담보 대출을 시행한 대주주 등은 주가 하락시 발생하게 되는 마진콜(추가 담보 납입)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유인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대주주들이 이런 마진콜을 수용하지 못하면 반대매매로 소액 주주가 피해를 입게 되거나 심할 경우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내에서는 제도가 미흡한 형편이다. 대만은 2011년부터 이사가 담보로 제공한 주식이 소유한 주식의 50%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 역시 2018년부터 주식담보대출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담보 주식은 총 거래액의 5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수의 미국 기업들도 내부규정상 주식담보대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은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3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의 주식담보대출은 2007년 약 5조 원에서 2017년 약 18조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며 "국내에서는 2009년부터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구체적 규제는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기업 내부자의 주식담보대출 계약이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일반) 중 제2부 대량보고내역에 관련 내용이 공시되고 있다.

임병권 연구위원은 "해당 자료는 주로 기업 내부자의 보유주식변동(장내매수나 장내매도 등)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 보고되고 있어 내부자의 주식담보대출 내역을 투자자들이 명확하게 인지하기에 한계점이 있다"며 "보다 엄정한 공시체계를 구비해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서창완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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