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 관광객 떠난 명동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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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국 관광객 떠난 명동 엘레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10.21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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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타격 역력한 거리, 수십년 옛 모습 지키는 명소는 어디에?
▲ 2000년대 초반 명동 거리 밤풍경 (사진 =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 2000년대 초반 명동 거리 밤풍경 (사진 =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달이 떠서 그 빛으로 명동 거리가 적시어졌으면..."

1940년대 차를 따르고 음악을 들려주던 여인 '시몬'은 명동이 지닌 낭만과 밤의 정취를 이야기하고 커피를 즐겼다. 그녀는 상해에서 돈을 많이 벌어왔다며 남편과 명동에 가게를 낼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선량하고 순진한 ‘서정파’ 남편의 직업은 무성영화의 변사였다.

시절은 황량했고 현실도피적인 분위기야말로 명동을 지배한 현실이었다. 감수성과 욕망, 지성과 예술혼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흘러들어 명동에 저수지처럼 고였다.

서정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명동백작' 이봉구의 단편소설 '명동의 에레지'는 그 '흔한' 문제의식 제기 없이, 그 시절 명동을 스케치하기 바쁘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속한 명동(明洞)은 조선시대 한성부 남부 명례방에서 '명'자를 딴 동네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주택가였지만, 일제강점기 인근 충무로가 상업지역으로 발전하면서, 덩달아 발전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금융 중심지면서 첨단 유행문화의 중심지기도 하고, 한국 가톨릭의 총본산이기도 하며, 민주화운동 시기엔 투쟁의 보루기도 했다. '명동백작'의 회고처럼 김수영, 박인환, 변영로, 전혜린 등 당대의 문인과 예술가들의 집합소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들어선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의 여행객들이 꼭 한번 들르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아무튼 명동은 서울시 안에서도 대표적인 번화가라는 것에 부정할 사람이 없을 거 같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일상이 크게 바뀌고, 이른바 '번화가'라고 알려졌던 곳들 역시 그 여파가 크게 미친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인파가 북적이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그동안 명동을 찾던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며, 안그래도 불황이던 경기에 더욱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고 명동의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국내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전 국민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 조정됐을 당시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현재 명동 거리도 옛 영화와는 사뭇 거리가 먼 쓸쓸한 풍경이다.

설령 코로나19 사태가 이르게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 명동의 모습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니 과거의 영화여, 당분간 안녕히 가시라. 미망의 풍경에 주석을 남겨 놓으려고 한다.

낮술을 한잔 마시고 걸었던 명동의 거리는 '이 세상 어떤 술을 마셔도 활기를 얻지 못하는, 가망도 없고 핏기도 없는 풍경'이라고 읊조렸던 어떤 문인의 넋두리를 떠올리게 했다.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변천사를 지닌 명동에서 이른바 '명소'라고 손꼽을 수 있는 곳은 무수히 많다. 특히 반가운 풍경은 급격한 개발과 변화 속에서도 수십년 간 원래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명동 거리를 지키고 있는 곳들이다.

다섯 곳을 찾아 명동 거리를 한 바퀴 둘러보자. 넉넉잡아도 20분 내외로 다섯 곳을 지나칠 수 있을 만큼 근처에 모여 있는 곳들이다.

▲ 명동예술극장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명동예술극장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출발은 서울시 중구 명동길 35에 위치한 명동예술극장이다. 1936년 영화관 명치좌로 개관한 이곳은, 1946년에 국제극장으로 개칭했고, 1947년엔 시공관이란 이름으로 영화관 및 극장으로 쓰였다.

1950년대엔 서울시와 국립극장이 공동으로 상용했으며, 1962년에는 개보수 후 국립극장(명동)으로 재개관했다. 명동국립극장은 1975년말 대한투자금융으로 매각되며 극장으로서는 맥이 끊긴다. 이후 34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으로 정식 개관하며 옛 모습을 찾는다.

2009년 재개관 당시 약 230억원을 투입한 복원공사에선 건물 외부 원형은 최대한 옛 모습을 보존하고, 내부를 현대식 공연장으로 개조했다. 1936년 준공 당시의 바로크 양식이 잘 드러나 있는 건물로 유명하다. 옛 국립극장 시절엔 지하 1층, 지상 3층, 객석 820석 규모에서, 현재는 지하 1층, 지상 5층, 552석 규모의 중극장이다.

▲ 건축가 김수근의 오양빌딩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건축가 김수근의 오양빌딩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건축물 자체로 눈길을 끄는 곳 중 하나는 명동의 한쪽 켠 입구 격인 명동9길 39에 위치한 오양빌딩을 꼽을 수 있다. 구 외환은행 본점인 하나은행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오양빌딩은 1964년 준공된 건축가 김수근의 노출 콘크리트 조형시기 작품 중 하나다. 부지 경계를 따라 단계적으로 밀려나 3개로 분할된 정면 오른쪽 모서리에서 보이는 수직성이 인상적이다. 또한 정면 왼쪽은 도자기 장식을 부착한 패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영양센타 본점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영양센타 본점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영양센타 본점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영양센타 본점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치킨이 외식문화를 점령하기 전,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의 전기구이 통닭집이 아닐까 싶은 영양센타 본점은 명동2길 52, 중국대사관과 화교학교 인근에 있다. 이곳은 1960년 개업했다.

지금도 예전처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를 향해 전기구이 통닭이 익어가는 모습을 내보이고 구수한 향기를 흘려보내며 발길을 붙잡는다. 통닭과 함께 삼계탕도 팔고 있어 보양식을 찾는 오랜 단골손님들도 많다.

▲ 부루의 뜨락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부루의 뜨락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부루의 뜨락 1층 내부를 꽉 채운 각종 음반들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부루의 뜨락 1층 내부를 꽉 채운 각종 음반들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영양센타 본점의 옆 건물엔 1979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이 있다. 이곳은 건물 4층 전체를 음반으로 꽉 채운 곳이다. 1997년 개봉한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 한석규와 전도연이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바로 이곳에서 촬영했다.

음악을 즐기는 수단과 방법이 바뀌고 있는 요즈음도 여기처럼 예전 방식의 음반가게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반갑다. 중고 LP 마니아들에겐 보물창고나 다름 없다.

▲ 카페 가무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카페 가무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카페 가무의 내부 모습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 카페 가무의 내부 모습 (사진 = 녹색경제신문 DB)

 

'시몬'이 즐기던 커피는 이제 전국 어느곳이나 다양한 종류의 전문점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명동의 커피집으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은 명동4길 16에 위치한 카페 '가무'다. 1968년부터 영업하고 있고, 알베르 카뮈의 이름을 가져와 상호로 쓴 곳이다.

수십년 세월 동안 힘을 내고 있는 명소가 건재하고 있다지만, 한국의 관광상권 1번지라고 말할 수 있는 명동 거리의 타격은 심각하다.

서울 중구청 통계연보에 의하면 명동에 등록된 사업자는 6770개에 달한다.

대로변 대형 상점에서부터 골목골목 소규모 업소에 이르기까지 그 예전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걷기 힘들었던 명동 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인근 직장인들까지 뒤섞여 한창 북적여야 할 점심시간 즈음에도 대부분 음식점들에 테이블 여유가 넉넉하다.

명동지역 자영업 업계는 코로나19 확산이 한창 진행되던 올해 3월 기준 벌써 매출이 90% 이상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10월 현재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상태서 명동 상권이 얼마나 나락일지 가늠하기조차 버겁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1750만명으로, 이는 지금까지 사상 최대치였다.

명동의 상권이 특히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올해 매출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부분을 통째로 들어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경제동향 관련 그린북은 3월 기준으로도 중국인 관광객 비율이 전년동기 대비 96.5% 감소했다고 봤다.

앞서 명동지역 자영업 업계서 주장한 매출 감소폭의 수치와 다르지 않은 수준.

이는 비단 명동만 처한 상황이 아니다.

한국감정원의 9월말 발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국 중대형 상가(3층 이상, 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12%로 전기 11.7%보다 0.3%p 상승했다. 

중대형상가 공실률이 12%를 넘은 것은 지난 2002년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착한 임대인 운동 등의 캠페인이 회자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라는 게 명동지역 상인들의 하소연이다.

도리어 임대료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며, 적자가 계속돼 심각하게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들도 많았다.

정부는 추경예산 등 3조원 규모를 활용해 영세 자영업자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앞서 언급처럼 사실상 올해 매출이 통으로 날아간 이들에게는 너무나 미력한 수준이다.

최대 200만원의 지원에 그치고 있는 것.

OECD가 발표한 각국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을 비교해 보면 2018년 기준 한국은 25.1% 수준이다.

미국이 6.3%로 가장 낮았고, 노르웨이 6.5%, 호주 9.6%, 독일 9.9%, 일본 10.3% 수준.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되고, 이로 인해 타격이 누적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연쇄 도산에 이르게 될 경우, 경제와 사회 전반에 큰 충격과 혼란을 가져올 것이란 예측은 자명해 보인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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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 2020-10-22 03:32:47
중국분들 와서 얼릉 가장비싼땅 명동 다 사세여.. 내국인들은 언론xx들수작의 비싸다는등 깍아내리기놀이와, 가장비싼 배아픔에 지네나라 역사 다무시하고 외화벌이 감사 외면했으니.. 명동 세계8위 서울 중심땅 중국땅도 나쁘지않을듯 화이팅!. 내국인은 어짜피 소비가 죽은지오래 .... 딴 좋은 동네를찾아보길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