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장진 “우린 계속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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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장진 “우린 계속 가고 있다”
  • 김경호
  • 승인 2014.06.25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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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삼성그룹의 ‘열정樂서 : 2014 아웃리치’ 부산편에서 강연한 영화감독 장진, 가수 김창완의 현장 강연요약. 이들 강연자는 벡스코 오디토리엄 홀을 가득 메운 3,500여명의 참가자들에게 열정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 오프닝
저는 장진. 영화감독임.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 대학교 때도 연극을 전공. 군 제대 후 24살에 희극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뽑힘. 그 이후 25살에 영화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영화계에 입문함

□ 본문
#1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24살에 신춘문예 당선됐지만, 부모님은 좋아하지 않으심
25살에 페미니즘 영화인 <개 같은 날의 오후> 시나리오 쓰고, 27살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
연극을 하던 사람이 27살에 감독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의 모난 시선을 받음

제 영화가 궤변적이고 독특한 성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음
첫 번째 작품 <기막힌 사내들>은 전국 합산 3만5천명으로 완벽하게 망함.
두 번째 작품 <간첩 리철진>은 상도 받고, 돈도 벌음. <간첩 리철진>을 만들면서 간첩한테 왜 휴머니즘을 입히는지 질문 받음. 간첩도 직업 중 하나라는 생각이었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함.

그 이후 <킬러들의 수다> 제작함.
우리가 남들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한, 킬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만든 영화로 잘 됐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소재를 썼다고 걱정함.
그렇지만 지금도 계속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를 유지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음.

최근 <하이힐>을 개봉했지만, 제대로 밟혔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렇게 잘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함.

#2 ‘끝이 어딘지도 모른 체 너무 빨리 왔다’
24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선입견과 자기벽과 부딪히며 살아옴. 그 중 6개월 정도는 미디어에 의해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스스로는 늘 ‘후졌다’,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런 칭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음. 그렇기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것.

‘피는 나지만 죽기는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옴. 상처는 났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음.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데 옆으로 한 차가 빠른 속도로 추월해 지나감. 그 때 그 차를 보고 한 줄 메모함.
“끝이 어딘지도 모른 체, 너무 빨리 왔다. 도착해보니 지옥이었다. 이곳에 오는데 너무 많은 추월을 했다.”
지금까지 빨리 왔지만 도착한 곳이 지옥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듦.
그리고 40대 중반, 사회적으로 새로운 것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됨.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나이임을 이제 깨닫고 있음. 주변사람들이 나를 ‘맛 갔다’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듦.

#3 아내가 내준 숙제를 통해 되찾은 열정
작년에 처음 뮤지컬을 했지만 결과 좋지 않음. 돈은 많이 벌었지만 호되게 당함.
아내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숙제가 있었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사진으로 찍고, 사진에 관한 인터뷰를 하시오. 아내가 그 숙제를 나에게 줬음.
한 달 동안 ‘지금의 나는 뭘까’생각했음. 그리고 사진을 찍었는데, 아내가 걱정하며 병원으로 가자고 했음. 사진은 모두 우울함, 남루한 삶에 관한 것들이었음.

아내가 40대 중반인, 약하고 초라한 남편의 자아를 들여다보며 묻기 시작함.

(첫 번째 사진 : 계단)
아내 : “오빠가 계단이야?”
장진 : “중간쯤에 있는 계단이 나. 사람들이 나를 밟고 올라 갈 꺼야” “나도 여기까지 올 때 많은 사람들을 밟고 왔거든”
이 대답에 아내는 불안해 함.

(두 번째 사진 : 담배)
아내 : “오빠가 담배야?”
장진 : “아직 열리지 않은 담뱃갑. 몇 개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담뱃갑”
이 대답에 아내는 어리둥절함.

(세 번째 사진 : 고드름)
아내 : “오빠가 고드름이야?”
장진 : “녹고 있는 고드름이야. 고드름은 원래 물이었어. 이제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아내가 자신을 멋지다며 바라봄. 불안한 기운이 조금 사라짐.

(네 번째 사진 : 빈 잔)
아내 : “빈 잔이네? 다 마신 커피잔이야?”
장진 : “커피는 다 마신 다음에 가장 깊고 좋은 향이 나. 지금 난 그래”
걱정하던 아내가 내가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일으켜가고 있다는 것에 안심함

(마지막 사진 : 지고 있는 해)

아내 : (다시 걱정)“지고 있는 해야?”
장진 : “해는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어. 세상이 움직인 것뿐임.
어딘가에서는 뜨고 있는 해.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렇게 아내와의 숙제가 끝남. 숙제를 통해 스스로에게 열정적인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짐. 자신을 알기 위해 닮은 것을 찾았던 며칠이 내 자신을 다시금 구원해 냄.

벡스코 오디토리엄홀을 가득 메운 3,500여명의 참가자들.
#4 우리는 계속 가고 있다
언제든 영화판을 적당한 즈음에 뜨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옴. 항상 모든 작품이 유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찍고 있음. 퇴출당하기 전에 적당한 곳에 스스로 나가자고 생각함.
대한민국에 감독으로서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최근 <플라이트> 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을 만남. 그에게 당신은 뭘 향해 비행하고 있냐 물었더니, 오 년 후인, 육십오 세가 될 때 만들 자신의 영화가 궁금하다고 대답.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육십오 세에 가장 좋은 영화를 찍었다고 함
그 대답을 들으며 도망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짐.
‘그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우리는 계속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해짐.
“끝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

나이가 많다고, 하고 있는 일이 안 풀린다고 해서, 남들보다 느릴 수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가고 있는 것. 쉬거나 돌아갈 수는 있지만 멈추거나 뒤로 가거나 다 왔다고 내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에 대한 철학임.

□ 마무리
저의 이야기는 한 쪽 귀로 들었다 흘려버려도 됨.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 이야기가 생각나는 그 정도만 바라겠음. 여러분이 제가 쌩쌩하게, 강력하게 잘 살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면 감사하겠음.

□ 부산 청춘들에게 전하는 말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느리다”
가장 좋은 방법은 후회를 하지 말 것.
잘못되고 생각대로 안 돼도 후회하지 말 것.
어차피 가는 길에 벌어지는 당연한 일.

 

김경호  g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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