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율 100%' 안전성 부각했지만 후순위 투자 위험 고지 논란...금감원 검사 이후 배상 확대
[녹색경제신문 = 나희재 기자] 900억원대 투자금을 모집했다가 전액 손실이 발생한 이른바 '벨기에펀드'와 관련해 최대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이 투자 고객을 대상으로 손실액의 최대 80% 배상을 추진한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 투자 고객을 대상으로 손실액의 40~80%를 배상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 일괄 배상을 결정한 뒤 투자자별 투자 경험과 연령, 투자 규모 등을 고려해 개별 배상률을 정하고 순차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전체 펀드 판매 규모는 약 900억원이다. 이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이 약 589억원으로 가장 많은 물량을 판매했으며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약 200억원, 120억원을 판매했다. 전체 투자자는 2500여명으로 알려졌으며, 과거 자료 기준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가입한 투자자는 1900명 안팎이다.
벨기에펀드는 2019년 6월 설정된 공모형 해외 부동산펀드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오피스 건물의 장기임차권에 투자해 임대수익과 향후 자산 매각에 따른 자본차익을 추구하도록 설계됐다. 해당 건물에는 벨기에 정부기관이 입주해 있었고, 출시 당시 정부기관 장기 임차와 높은 임대율 등이 주요 투자 포인트로 제시됐다.
문제는 자산 매입 과정에서 활용한 차입 구조였다. 펀드는 국내에서 모집한 투자금뿐 아니라 현지 선순위 대출을 함께 활용해 자산을 매입했다. 2024년 6월 기준 선순위 대출 원금은 약 7262만유로 규모였으며, 만기까지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이후 선순위 대주가 담보권을 행사해 자산 처분에 나서면서 후순위에 위치한 국내 펀드 투자자의 투자금은 사실상 전액 손실로 이어졌다.
특히 펀드의 핵심 위험이 판매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됐는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투자자들은 가입 당시 '벨기에 정부기관이 장기간 임차한 건물', '임대율 100%' 등 자산의 안정성을 강조한 설명을 들은 반면 선순위 대출이 존재하고 자산가격 하락 시 후순위 투자자에게 손실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은 제대로 안내받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자산 가치가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할 경우 선순위 대출금을 변제하고 나면 펀드 투자자에게 돌아갈 금액이 남지 않을 수 있음에도 이 같은 위험이 증권신고서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자산 가치가 약 26% 이상 하락할 경우 후순위 투자자는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구조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됐다.
손실이 현실화된 뒤 배상 규모도 단계적으로 커졌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한국투자증권의 자율배상 비율은 개별 사례에 따라 20% 수준에서 형성됐고, 지난해 10월 금감원이 한국투자증권과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현장검사에 착수할 당시에는 한투증권이 약 20~50% 수준의 배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금감원의 현장검사와 금융소비자 보호 압박이 본격화하면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벨기에펀드 투자자와 직접 만나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나 내부통제 위반이 확인될 경우 이미 처리된 민원까지 포함해 배상 기준을 다시 조정하도록 지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초 투자 고객 전원에 대한 일괄배상 방침을 정하고 배상률을 40~80%까지 끌어올렸다.
다만 이번 배상을 금융당국이 벨기에펀드 전체에 대해 불완전판매를 공식 확정하고 내린 분쟁조정 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투자증권이 금융소비자 보호와 판매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 등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배상 범위를 확대했다는 성격이 강하다.
이번 사태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안정적인 임차인 확보만으로 투자 안전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다시 보여줬다. 정부기관이 장기 임차한 자산이라도 매입 과정에서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투자자가 선순위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놓일 경우 자산가치 하락 폭에 따라 손실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감원 검사 이후 판매사가 배상 대상과 비율을 크게 확대한 만큼 향후 금융당국이 상품 설계와 판매 과정에서 설명의무 및 내부통제상 문제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펀드는 임차인의 신용도뿐 아니라 차입 구조와 담보 순위에 따라 손실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이번 사례는 판매 과정에서 기초자산의 안정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레버리지와 후순위 투자 위험까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나희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