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조기 발권 늘어도 9월 이후 장거리 수요 둔화 가능성
항공사 비용 보전에는 한계…대한항공보다 적자 LCC 부담 커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오는 9월 국제선 유류할증료가 7단계 뛰면서 미국 동부 노선 이용객은 이달보다 왕복 최대 18만9600원을 더 내게 된다.
여행객에게는 사실상 항공권 가격 인상이지만 항공사에도 일방적인 호재는 아니다. 유류할증료로 연료비 상승분을 일부 회수할 수 있지만 항공권 총액이 높아지면 여행 수요가 위축될 수 있어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유류할증료 인상이 여행·항공 관련 소비를 8월로 앞당긴 뒤 9월 이후 수요를 낮추고, 고유가와 고환율에 취약한 저비용항공사(LCC)의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항공료 상승이 장기화하면 서비스물가와 카드 소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뉴욕 왕복 유류할증료만 70만8000원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9월 발권 기준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이달 14단계에서 21단계로 오른다.
대한항공 기준 인천∼뉴욕·보스턴·시카고·애틀랜타 등 장거리 노선의 편도 유류할증료는 25만9200원에서 35만4000원으로 9만4800원 오른다. 왕복으로는 70만8000원으로, 8월 발권분보다 부담이 18만9600원 늘어난다.
후쿠오카·칭다오 등 500마일 이하 단거리 노선도 편도 3만5200원에서 4만8000원으로 36.4% 상승한다. 기본운임이 상대적으로 낮은 LCC 특가 항공권은 유류할증료가 최종 결제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수 있다.
9월 유류할증료 산정에 사용된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가격은 갤런당 355.46센트, 배럴당 149.29달러였다. 8월 할증료 산정 기준인 배럴당 119.06달러보다 한 달 사이 25.4% 상승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집계한 최근 세계 평균 항공유 가격도 배럴당 158.77달러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연료비는 항공사 영업비용 가운데 가장 큰 항목 중 하나다.
“9월 여행도 8월에 결제”…소비 시점 앞당겨질 듯
유류할증료는 실제 탑승일이 아닌 항공권 발권일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9월 이후 출발하는 항공권이라도 8월 안에 구매하면 14단계 할증료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 등 장거리 여행을 계획한 소비자들이 이달 말까지 항공권을 미리 결제하는 조기 발권 수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카드업계에서는 여행·항공 업종 결제액이 8월에 일시적으로 증가한 뒤 9월 이후에는 감소하는 소비 선반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이는 여행 수요가 새로 생기는 것보다는 예정됐던 결제 시점이 앞당겨지는 효과에 가깝다.
가격에 민감한 가족 단위 여행객은 장거리 여행을 미루거나 일본·중국·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으로 목적지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 왕복 항공권 4장을 구매하는 4인 가족이라면 뉴욕 노선 유류할증료 증가분만 약 76만원에 달한다.
항공권 부담이 커지면 숙박·면세점·여행사·렌터카 등 연관 소비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여행 플랫폼과 면세점에는 장거리 출국객 감소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단거리 노선과 국내 여행 상품은 일부 대체 수요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항공료 상승, 서비스물가에도 부담
유류할증료 상승은 항공권 최종 가격을 통해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8% 올랐다. 이 가운데 교통 부문은 7.7%, 개인서비스는 3.5% 상승해 전체 물가상승률을 웃돌았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2.6% 올랐다.
유류할증료가 오른 비율이 소비자물가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항공사가 기본운임을 낮추거나 특가 판매를 늘리면 실제 항공권 총액 상승폭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공유 가격과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항공사들이 기본운임 인하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해외 항공료와 여행 관련 서비스 가격이 물가의 하방 경직성을 높일 수 있다.
글로벌 항공업계에서도 연료비가 고점 대비 다소 낮아졌지만 항공사들이 가격 경쟁을 우려해 운임 인하를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한 항공사가 먼저 가격을 낮추면 경쟁사까지 운임 인하에 나설 수 있어 항공사들이 가격을 유지하는 대치 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
유류할증료 올라도 항공사는 못 웃어
유류할증료는 항공유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와 나누는 제도지만, 항공사가 연료비 증가분을 전부 회수하는 구조는 아니다.
항공유 가격은 수시로 움직이는 반면 유류할증료는 앞선 산정 기간의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다음 달 항공권에 적용된다. 유가가 빠르게 오르는 시기에는 항공사가 높은 연료비를 먼저 부담하고 할증료 수입은 뒤늦게 늘어난다.
iM증권은 유류할증료와 실제 항공유 가격 사이의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올해 2분기 운임에 반영하지 못한 초과 유류비를 대한항공 5500억원, 아시아나항공 2100억원, 제주항공 600억원, 진에어 460억원으로 추산했다.
대한항공은 2분기 매출 5조199억원으로 역대 2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유가 상승에 따른 연료비 증가로 전년 동기보다 1371억원 감소한 2618억원에 그쳤다. 한국발 여객 수요도 고유가 영향으로 일부 위축됐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유류할증료 인상이 항공사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9월 이후 항공유 가격이 안정되고 높은 탑승률이 유지돼야 한다. 유가는 계속 오르는데 여객 수요까지 줄어들면 할증료 인상 효과보다 연료비와 고정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대한항공보다 LCC가 더 아프다
고유가 국면에서는 대형 항공사보다 LCC의 실적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장거리와 프리미엄 좌석, 화물 사업을 함께 운영해 노선과 사업 부문별로 비용 부담을 분산할 수 있다. 반면 LCC는 일본·중국·동남아 등 단거리 여객 매출 의존도가 높고 가격 경쟁도 치열하다.
LCC 이용객은 항공권 가격에 민감해 유류할증료가 오르면 예약을 미루거나 경쟁 항공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기본운임을 낮춰 유류할증료 상승분을 상쇄하면 탑승률은 방어할 수 있지만 항공사 몫으로 남는 수익은 줄어든다.
제주항공은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0% 증가한 4417억원으로 분기 최대를 기록했지만 영업손실은 524억원으로 확대됐다. 회사는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적자 확대 원인으로 꼽았다.
진에어도 2분기 매출이 17.7% 늘어난 3603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손실은 73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3억원보다 커졌다. 고유가에 따른 유류비 증가가 매출 성장 효과를 상쇄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 295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고유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 화물기 사업 매각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 2분기 말 원·달러 환율은 1542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7원 상승했다.
항공주, ‘할증료 인상’보다 유가·환율·탑승률 봐야
주식시장에서는 유류할증료 단계 상승만으로 항공주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류할증료가 높아지면 항공사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비율은 높아진다. 반면 항공권 총액 상승으로 탑승률이 낮아지거나 특가 판매가 늘면 매출과 수익성이 동시에 압박받을 수 있다.
항공주는 국제유가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에도 민감하다. 항공유 구매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등 달러 결제 비용이 많아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상승할 경우 비용 증가 폭이 커진다.
항공사별로는 장거리와 화물 사업을 보유한 대한항공이 단거리 여객 중심의 LCC보다 상대적인 방어력이 높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다만 대한항공도 연료비와 환율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장거리 여행 수요까지 둔화하면 실적 눈높이가 낮아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항공주에서는 유류할증료가 몇 단계 올랐는지보다 항공유 가격이 고점을 통과했는지, 높아진 항공권 가격에도 탑승률이 유지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며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현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 LCC의 자금조달 부담이 먼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9월 유류할증료 인상은 여행객에게는 최대 19만원의 추가 부담이고, 항공사에는 수요와 수익성 사이에서 가격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시험대다. 항공료 상승이 일시적인 발권 시점 이동에 그칠지, 여행 소비와 서비스물가를 동시에 압박하는 요인이 될지는 향후 국제유가와 환율 흐름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한순구 기자 po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