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이 올랐다. 12년 만이다.
지난 2일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LG전자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로 한 단계 올렸다. 2014년 이후 약 12년 만의 상향이다. 앞서 무디스도 올해 1월 LG전자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1으로 높였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시선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 셈이다.
같은 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처음 마주 앉을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다. 그러나 완전히 공교롭지만은 않다.
구 회장은 2018년 LG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LG전자는 2021년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결정했고, 2022년에는 태양광 패널 사업도 접었다. 구광모의 첫 몇 년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에 가까웠다.
그 빈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LG 산하 LG AI연구원은 엑사원을 고도화했고, 올해 공개된 K-엑사원은 국내 AI 모델 경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LG전자는 로봇 사업도 조용히 넓혀 왔다. 2024년 베어로보틱스에 6000만달러를 투자했고, 지난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단순한 서빙로봇 투자가 아니라 상업용 로봇, 가정용 로봇, 산업용 로봇으로 확장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지난 4월 구 회장은 직접 실리콘밸리를 찾았다.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CEO를 만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논의했고, 스킬드AI 창업자들과 만나 피지컬 AI의 산업 적용 가능성을 점검했다. 말보다 경로가 먼저 보였다. LG가 바라보는 AI는 챗봇 안에 갇힌 기술이 아니었다. 공장과 로봇, 물류와 전장, 가전과 통신으로 내려오는 AI였다.
그동안 다른 총수들은 젠슨 황과 자주 만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엔비디아와의 접점을 공개적으로 키워 왔다. 구광모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LG가 늦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S&P는 LG전자의 EBITDA 대비 부채비율이 2025년 1.6배에서 2026년 1.2배, 2027년 1.0배 수준까지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용등급 상향은 단순한 재무 이벤트가 아니다. 접을 것은 접고, 키울 것은 키운 시간의 결과다.
구광모가 준비한 것은 회동이 아니라 회동의 이유였다.
엔비디아가 AI의 뇌를 쥐고 있다면, LG는 그 뇌가 들어갈 몸의 후보들을 갖고 있다. 로봇을 움직이는 액추에이터, 배터리, 카메라 모듈, 통신, 스마트팩토리, 가전과 전장 데이터가 그것이다. LG전자는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활용해 스마트팩토리 전환을 추진하고 있고, 로봇 사업에서는 엔비디아와의 기술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 확정된 것은 많지 않다. 구광모와 젠슨 황의 첫 회동에서 어떤 협력안이 나올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시장이 기대하는 피지컬 AI 동맹이 실제 주문서와 공동 개발, 매출로 이어질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사진은 빠르게 퍼지지만, 사업은 느리게 증명된다.
신용등급이 올랐다. 12년 만에. 그리고 그 위에서 처음의 악수를 준비하고 있다.
기업은 결국 CEO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는지를 닮아간다. 구광모의 LG그룹이 젠슨 황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조용히 정리하고 쌓아온 몸의 구조다. 손이 닿기 전에 이미 준비는 시작돼 있었다.
이충진 기자 hot@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