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대행의 대행’ 체제 장기화…공급정책 컨트롤타워 공백
전문가들 “임추위는 후보 거르는 절차일 뿐…정책 공백 방치 안 돼”
“서울 도심 공급·PF 정상화 과제 산적…실무형 사장 조기 임명 필요”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출범 초기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서울 집값과 전월세 불안, 공공주택 공급 지연 우려가 동시에 커지는 가운데, 정작 정부 주택공급 정책의 핵심 실행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장기간 수장 공백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 국토교통비서관 A씨가 차기 LH 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지만, 임명 시점은 6월 초·중순으로 전망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민심이 정권의 최대 약점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LH 사장 인선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LH 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 후보를 추천하고,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친 뒤 국토교통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LH 정관도 사장 임명 절차에 대해 임추위의 복수 추천, 공운위 심의·의결, 국토부 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을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절차 자체가 아니라 속도다. LH 사장 공모는 임추위 서류·면접 심사, 공운위 심의, 국토부 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까지 거쳐야 한다. 통상 공모부터 임명까지 2~3개월이 소요된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평시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공공주도 공급 확대와 부동산 민심 회복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LH 사장 공백은 단순한 기관장 인사 문제가 아니라 정부 공급정책의 지휘부 공백”이라는 말이 나온다. LH는 공공임대, 공공분양, 택지 조성, 도심복합사업, PF 부실 사업장 정상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사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대규모 사업 구조조정, 신규 공급계획, 국토부와의 정책 조율이 속도를 내기 어렵다.
한 부동산 정책 전문가는 “임원추천위원회는 후보자의 자격과 적격성을 검증하는 절차이지, 정부 주택공급 시계를 멈춰 세우는 장치가 돼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실 국토비서관 출신처럼 국토부·LH 업무를 아는 인사가 유력하다면 검증을 신속히 마무리해 조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정책 드라이브 걸 시점에 LH는 대행 체제”
LH 내부 공백은 이미 장기화됐다. 전임 사장 퇴임 이후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졌고, 이후 또 다른 직무대행 체제로 넘어가면서 내부에서는 ‘대행의 대행’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공공기관 수장의 공백은 일반 공기업보다 LH에서 더 치명적이다. LH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을 실제 사업으로 바꾸는 기관이다. 국토부가 방향을 정해도 LH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급은 숫자로만 남는다. 특히 서울 도심 공급, 청년·신혼부부 주택, 공공분양 확대, 노후 택지 재정비, PF 정상화 등은 기관장 리더십 없이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LH 사장이 공석이면 국토부 실무자들이 아무리 방향을 잡아도 현장에서 대담한 결정을 하기 어렵다”며 “대규모 부지 매입이나 공공주택 전환 같은 사업은 기관장이 책임지고 끌고 가야 하는데, 대행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임추위는 뭘 하고 있나”…검증보다 중요한 건 정책 타이밍
LH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임추위는 후보를 공개 모집하고, 자격요건을 심사해 복수 후보를 추천하는 기구다. LH 정관상 임추위는 임원후보자를 추천할 때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개모집할 수 있고, 사장 후보자와 경영계약 조건 등을 협의해 국토부 장관에게 통보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러나 임추위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안 정책 타이밍을 놓치면, 정부 입장에서는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은 시장 심리가 중요하다.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공급기관의 수장이 임명돼 실행계획을 내놓는 것은 시장에 주는 신호가 다르다.
도시계획 분야의 한 교수는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규제 강화가 아니라 공급 실행력”이라며 “LH 사장 인선을 질질 끌면 시장에는 ‘정부가 아직 공급 조직도 정비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국토비서관 유력…“정책라인 인사면 더 빨리 써야”
A 비서관은 국토부 주요 보직을 거쳤고, 경기도 건설국장 시절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대통령실 국토교통비서관으로 주거·교통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 방향을 LH에 바로 이식할 수 있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LH 내부에서도 대통령실·국토부와 소통할 수 있는 ‘힘 있는 정책통’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공주택 공급 확대, 조직 개편, 사업 정상화 등 굵직한 과제가 산적한 만큼, 새 사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 관리형 리더십이 아니라 국토부·대통령실과 맞물려 움직이는 실행력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LH는 지금 관리형 사장이 아니라 공급형 사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통령실 정책라인에서 온 인사라면 오히려 국토부와 LH 사이의 의사결정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전 공급 의지 보여줘야”
정치권에서도 부동산은 지방선거 최대 변수로 꼽힌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주택공급, 전월세, 청년 주거 문제가 표심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지방선거 전 공급 의지를 보여주려면 LH 사장 임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메시지는 사람에서 시작된다. LH 사장을 임명하고, 새 사장이 서울 도심 공급, 청년주택, 공공분양 확대, 민간 PF 부지 공공전환 등 구체적 과제를 제시해야 시장이 움직인다.
한 전직 국토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은 타이밍을 놓치면 효과가 반감된다”며 “LH 사장 임명이 6월 중순 이후로 밀리면 지방선거 전 공급 메시지를 내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임추위와 공운위가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절차보다 속도와 책임이 더 중요한 국면”이라고 했다.
공급은 말이 아니라 조직으로 한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민심을 잡으려면 공급 의지를 말로만 보여줘서는 안 된다. LH 사장 임명은 그 첫 단추다.
임추위가 후보를 고르고, 공운위가 심의하고, 국토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는 필요하다. 하지만 절차가 공급정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지금 LH에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공백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리더십이다. 정부가 공공주도 주택공급 확대를 말한다면, 그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할 LH 수장부터 조속히 세워야 한다. 부동산 민심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순구 기자 po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