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기간 무시한 즉시 결단…"주주가치 제고 선도하겠다는 의지"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4대 금융지주가 1분기 역대급 실적을 나란히 발표한 가운데 KB금융만이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상법 개정으로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지만 KB금융은 이를 단 하루도 쓰지 않고 즉시 전량 소각을 선언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지난 23일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보유 자기주식 1426만2733주를 전량 소각한다고 밝혔다. 발행주식 총수의 약 3.8%에 해당하며 금액으로는 약 2조3000억원 규모다. 단일 소각 건 기준으로 업계 역대 최대다. 같은 날 이사회는 주당 1143원의 분기 배당(전년 대비 25.3%↑)과 6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도 결의했다. 5월까지 누적 소각 규모는 6300만주에 달하게 된다.
이번 소각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에는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이 부여됐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유예기간을 최대한 활용해 자본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다. 그럼에도 KB금융은 유예기간을 활용하지 않고 법 개정 즉시 소각 결정을 단행했다. KB금융 재무담당 나상록 전무는 컨퍼런스콜에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고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해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하겠다는 이사회와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소각한 물량은 단순히 새로 매입한 주식이 아니다. KB금융 관계자는 "2016년과 2019년에도 KB가 선제적으로 자기주식을 매입·소각했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매입해오면서 보유하고 있던 물량"이라며 "1년 6개월 유예기간이 있음에도 즉시 소각하는 것은 주주가치를 극대화해 주주가치 제고를 선도하겠다는 KB의 의지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10년에 걸친 자사주 매입 행보가 이번 즉시 소각으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실적 자신감이 이 같은 결단의 배경으로 꼽힌다. KB금융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1조89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5% 증가하며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자본시장 비이자이익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비은행 순이익 기여도는 지난해 37%에서 43%로 높아졌다. 전통적 은행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비은행·비이자 중심으로 수익 다변화를 달성했다는 평가다. 대규모 주주환원을 단행하고도 CET1 비율은 13.63%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자본비율을 유지하는 만큼 공격적인 주주환원에도 자본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기조도 변수로 작용했다.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확대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강조해왔다. KB금융이 유예기간 없이 즉시 소각을 결정한 것은 이 같은 정책 기조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동시에 주주친화 경영의 선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시장에 각인시키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번 소각으로 KB금융의 주주가치는 단기적으로도 가시적인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박금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