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소식 환영하지만 인력난은 증상일 뿐 근본 원인은 아냐"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정부가 글로벌 최대 반도체 IP 기업 ARM과 손잡고 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에 나서면서 국내 비메모리 산업 경쟁력 강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이번 협력이 인재 기반 확충에 의미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국내 비메모리 생태계가 취약했던 원인이 단순히 인력 부족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생태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ARM과 한국 반도체·AI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MOU을 체결하고, 인력 양성과 기술 교류를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향후 5년간 약 1,400명의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 ‘ARM 스쿨’(가칭) 설립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간 팹리스 관련 대학 과정도 있었고 산업계가 주도한 교육기관들도 있었지만 뚜렷한 결과물이 없었다"며 "ARM 스쿨은 보다 실무에 강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ARM은 전 세계 SoC IP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며 설계 표준을 사실상 주도하는 기업이다. 그만큼 ARM이 축적한 설계 노하우는 시스템반도체 개발 현장에서 핵심적이지만, 국내 교육 기관이 이를 동일한 수준으로 구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실제로 IP 블록을 실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아,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들은 인재를 채용한 뒤에도 재교육이 필요했고 이는 인력 공급의 병목으로 이어져 왔다.
업계는 ARM이 직접 참여하는 교육 체계가 마련되면 실무 투입이 가능한 ‘현장형 인재’를 처음으로 대규모 양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학에서 논리설계 이론만 배우던 인력이 ARM 교육을 통해 곧바로 SoC 아키텍처와 검증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실무에서 좀 더 유의미한 퍼포먼스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인력 양성이 팹리스 생태계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인력난은 하나의 '증상'이지 생태계 약화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는 팹리스 기업이 대규모 고객사를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팹리스 기업들이 큰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인재 영입이 어려운 것이지 인재가 없어 성장을 못했다는 말은 앞뒤가 조금 바뀐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IDM(종합반도체사)이 주도하는 파운드리 중심 구조가 오랜 기간 고착화되면서 설계기업이 안정적인 고객 확보와 양산 파트너를 찾기 어려운 구조가 유지됐다. 특히 모바일 AP, 통신용 칩, 자동차용 MCU 등 대부분의 상위 수요 시장이 이미 대형 업체들로 재편돼 있어, 국내 팹리스가 기술을 확보해도 경쟁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대만 TSMC의 경우, 순수 파운드리로서 중소 팹리스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서 생태계를 키운 반면 삼성전자는 2018년에 들어서야 협력업체 육성에 나섰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솔루션 파트너(DSP)가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파운드리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부재했다는 지적이다.
정부 정책도 파운드리 공장 투자나 메모리 고도화에 집중해 팹리스·디자인하우스(DH) 생태계는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사실상 밀려나 있었다. 정부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조금, 기술 지원, 교육 프로그램 등이 부처 단위로 흩어져 있어 통합적인 지원과 관리에 한계가 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설계 인력이 많아지면 물론 팹리스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인력이 있어도 팹리스 기업이 클 수 있는 생태계가 없다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갈 뿐이다. 이번 ARM과의 협력이 단발성 인력 공급을 넘어 체계적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져야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