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칼럼] 자사주 소각 의무화, 업종별 해법 달라야 한다
상태바
[인사이트칼럼] 자사주 소각 의무화, 업종별 해법 달라야 한다
  • 최성남 인사이트녹경 기자
  • 승인 2025.06.20 1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명 정부가 자본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강도 높은 정책 기조를 천명한 가운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기업 인수합병(M&A) 방어 수단 등으로 활용되며 묵인돼 온 자사주를 일정 시한 내에 반드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법제화가 추진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명분은 분명하다. 주주가치 제고, 투명 경영, 자본시장 선진화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반응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기 위해 이를 EB(교환사채) 형태로 외부에 넘기는 방식이 확산되서다. 자칫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EB 발행 규모는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를 넘어섰다. 특히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일부 대기업들 역시 적극적으로 EB를 활용하며 자사주 소각 의무를 피해가기 위한 전략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SKC는 지난달말 자사주 299만 주를 기반으로 한 3100억 원 규모의 EB를 발행했으며, LG화학 역시 총 1조4000억 원 규모의 EB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유가증권시장 뿐만 아니라 코스닥 시장에서도 다수 기업의 자사주 기반 EB 발행은 급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시장은 이를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을 피하기 위한 ‘꼼수 대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B 발행으로 소각을 피할 수는 있지만, 만기 시 자사주 인도라는 부채성 부담을 안게 되면서 ‘일단 피하고 보자’는 단기적 회피 전략이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내 자본시장의 특수성과도 무관치 않다. 국내 증시에선 전통적으로 자사주를 주가 방어용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수급 구조상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는 경영진의 방어 논리로 이어져 왔다. 실제 대규모 자사주를 매입한 이후 주가가 반등하는 사례는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수급 논리를 통한 회사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주가 방어에 나섰다는 것인데, 실제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후진적 시각이다.

미국 등 선진시장에선 자사주 매입은 곧 소각이란 공식이 통용된다. 애플, 메타, 알파벳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매입과 동시에 소각을 실행하며, 주주 환원 의지를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을 통해 기업의 주당순이익(EPS)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주주 가치 구현에 기여를 했다.

국내 역시 선진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다만 문제는 업종과 기업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융업의 경우 자사주를 소각하면 자기자본이 줄어들어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는 구조에 노출될 수 있다. 자본비율이 생존에 직결되는 업종에 일괄적인 소각 의무를 적용하는 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업종별 구분 없이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면 EB 남발, 배당 축소, 자본확충 차질 같은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때문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업종별 차등 설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금융업종 등은 자사주 소각 대신 배당 확대로 환원 유도 정책을 펴는 것이 더 실효적일 수 있다. 동시에 EB 발행 요건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자사주 인도 조건, 교환 만기 시점, 투자자 보호 장치 등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고, 자사주 활용 목적을 분기별로 공시토록 해야 한다. 단기적 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단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EB 시장에 구체화된 제도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인센티브 역시 제공돼야 한다. 자발적으로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등 긍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 자율성 속에서도 주주 환원이 촉진될 수 있도록 정책적 설계가 진행돼야 한다. 반대로 EB를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업에 대해선 이자율 조건, 회계상 부채 처리 방식 등에서 규제 강화가 뒤따라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의무화를 명분으로 강제로 정책을 추진하기 보단 정밀성을 기반으로 한 정책으로 기업 스스로 변화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현재 이재명 정부의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 방향은 옳다. 다만 실행은 정교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은 궁극적으로 기업이 주주 환원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목적이 최우선된다. 그것이 소각이든 배당이든, 또 다른 형태의 기업의 성과 공유이든 실질적 환원의 방식이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건 강제보다 설득이다. 제도의 유연성과 기업의 진정성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가가기 위한 정책적 설계가 뒷받침될 때 '진짜 대한민국', '진짜 주주환원'이 가능할 것이다.

최성남 자본시장부장

 

최성남 인사이트녹경 기자  insight@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