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투운용·KB자산운용, 의결권 공시 86% 중복기재로 실명 비판
- 미래에셋·교보AXA는 연기금 수준...전담조직 운영이 차이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상장주식 보유 상위 5개사 중 한국투자신탁운용과 KB자산운용을 '거수기 운용사'로 실명 낙인찍었다. 두 회사가 의결권 공시에서 '주주권리 침해 없음'이라는 한 줄 문구를 80% 이상의 안건에 반복 복사하며 165조원 규모 펀드 자산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4일 발표한 '2024년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현황 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273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율은 91.6%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79.6%에서 12.0%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반대 의견 행사율도 같은 기간 5.2%에서 6.8%로 1.6%포인트 올랐다.
의결권 행사는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를 대신해 보유 주식에 대한 주주총회 안건에 찬성·반대·기권 등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 수단이다. 하지만 주요 연기금과 비교하면 자산운용사들의 소극적 자세가 여전히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율은 99.6%, 반대율은 20.8%에 달했다. 공무원연금도 행사율 97.8%, 반대율 8.9%를 기록해 자산운용사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자산운용사들의 반대율 6.8%는 국민연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형식적 의결권 행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미온적 태도는 운용사들이 보유한 자산 규모를 고려할 때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공·사모펀드는 국내 상장주식 66조9000억원, 비상장주식 13조9000억원, 해외주식 83조7000억원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이번에 실명을 거론하며 질타한 대상은 상장주식 보유 상위 5개사 중 한국투자신탁운용과 KB자산운용이다. 두 회사는 의결권 행사 사유를 작성할 때 '주주권리 침해 없음' 같은 문구를 여러 안건에 똑같이 기재하는 방식을 남발했다는 게 금감원의 지적이다.
한투운용의 중복 기재율은 86.2%, KB자산운용은 80.2%에 달해 투자자가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 사유를 기재하라는 법규 취지를 정면으로 무시했다는 평가다.
전체 273개 운용사 중에서도 72개사(26.7%)가 의결권 안건 절반 이상에 '주주총회 영향 미미', '주주권 침해 없음' 등으로 형식적 기재에 그쳤다. 57개사(20.9%)는 아예 세부지침을 공시하지 않았고, 54개사(19.8%)는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개정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미래에셋자산운용과 교보AXA자산운용은 모범 사례로 언급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의결권 행사율 99.3%, 반대율 16.0%를 기록했고, 교보AXA자산운용도 행사율 97.4%, 반대율 16.1%로 연기금과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신영자산운용도 투자대상 회사 경영진과의 면담, 주주제안 등을 통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은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가 자본시장법 취지에 아직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 펀드의 경우에도 보유주식의 중장기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의결권 행사와 기업과의 소통이 운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자산운용사 의결권 공시점검을 다각도로 실시하고, 분기별·운용사별 펀드 의결권 행사 비교·공시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도 개선해 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의무 이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나아영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