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업계, 룰렛을 멈춰라
상태바
[기자수첩] 게임업계, 룰렛을 멈춰라
  • 박금재 기자
  • 승인 2021.04.28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확률형 아이템' 올인한 韓 게임업계, 미래 성장성 불투명해져
'착한 게임' 만들기 소홀한 채로 가상화폐 시장 진출...유저들 반응 싸늘해
룰렛 사진.
룰렛 사진.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게임업계는 지난해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야외활동이 불가능해진 탓에 실내에서 취미로 게임을 즐기게 된 유저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한 게임사들은 화려한 파티를 벌였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연봉이 대폭 인상되는가 하면, 막대한 성과급 지급이 이뤄지며 세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룰렛'이 있었다. 

도박 기구 얘기다. 우리는 그동안 게임이라는 간판 뒤에 숨은 룰렛 속에 끝없이 구슬을 굴려왔고 결국 그 병폐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이름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게임을 왜 즐기는가?

각자의 이유가 다르겠지만 기자는 게임이 그 어느 것보다도 평등한 놀이라서 좋아한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쥐고 있는 순간 만큼은 어떤 기업 총수든, 위세 있는 정치인이든 기자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고, 오직 게임 플레이만으로 성과가 갈린다.

상대보다 앞서고 싶은 의지, 좋은 플레이를 펼치기 위한 열정만으로 누구든 꺾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룰이 깨지게 됐을 때 게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한 게임에 몇 억원을 쏟아부어야만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다면, 아니 몇 억원을 쓰더라도 그 자리에 설 수도 없을 만큼 게임 속 성패가 불확실성에 의존한다면 그것을 '게임'이라 부를 만한가? 

"할 게임이 없다."

주위 지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한 분기마다 수십 개의 신작 게임이 출시되지만, 정작 플레이할 만한 게임이 없다고들 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게임사들은 몇 조원 대의 매출을 기록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플레이할 게임이 없다고 하니 기이한 일이다.

아마도 대다수 한국 게임들의 지나친 과금 유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쉽사리 한국 게임에 손을 대지 못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출시된 지 10년이 지난 외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가 아직도 점유율 5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바일 게임 인기차트에서는 자극적인 중국 게임들의 공세에 한국 게임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더불어 콘솔 게임 시장이 급성장을 이루면서 한국 게임업계는 더욱 경쟁력을 잃게 된 모양새다.

당장의 수익에 집중한 탓에 국내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 수익모델을 앞세운 모바일 게임 출시에 올인해왔고, 전 세계 게이머들이 최근 몇 년간 GOTY(한 해 발매된 게임 중 가장 훌륭한 게임)를 꼽는 데 행복한 고민에 빠진 사이에 한국 게임은 내세울 무기가 없어지게 됐다.

더욱 암담한 부분은 미래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21년 상반기 다수의 한국 게임사들은 향후 몇 년을 책임질 신작을 출시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 게임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확률형 아이템'이 빠진 게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1분기 내내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대해 국내 대표 게임사들이 유저들에게 사과하고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결국 면피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한국 게임기업들은 여기서 한 술 더 뜨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룰렛을 통해 몸집을 불린 게임기업들이 이제는 직접 플레이어가 돼 기업의 명운을 또 다른 룰렛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게임기업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인수에 목을 매고 직접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수익원 다각화를 위해 신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다만 본업이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일인 식당 사장이 손님에겐 싸구려 음식을 내놓은 채 여윳돈으로 카지노에 드나들 땐 문제가 된다.  

아직 국내에선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게임사를 보면 그런 식당 사장이 떠오른다.

한국 게임팬들은 '맛있는 한식 한 끼'를 기다리고 있다. 국밥처럼 든든하고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는 그런 식사 말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 게임기업들은 이제 손에 쥔 룰렛을 놓아줄 용기를 가져야 한다. 

어렵고 난관이 가득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게임기업으로서의 본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재밌고 즐길만한 게임을 만드는 일 말이다.

그리고 게임팬들의 태도 또한 과거와는 다르다. 좋은 게임이라면 룰렛과 같은 수익모델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과거에는 게임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하는 유저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기형적인 과금 모델을 게임기업이 만들어내야 했다면, 현재는 같은 풀 프라이스 게임을 판매하는 '스팀'과 같은 플랫폼이 성행하는 것을 고려하면 게임팬들은 재밌는 게임에 지갑을 여는 일에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룰렛을 멈추고 그 자리에 단단한 주춧돌을 놓자. 게임에 있어 어느 나라보다 열성적인 한국인들은 언제든 좋은 게임을 반길 것이다. 

언젠가 한국 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GOTY 자리에 앉길 기대해본다.  

박금재 기자  game@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