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경칼럼]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시장문제에 들이대는 정치적 잣대부터 걷어치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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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경칼럼]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시장문제에 들이대는 정치적 잣대부터 걷어치워야
  • 방형국 기자
  • 승인 2021.04.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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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換亂)으로 미국 등 일부를 제외하고 전 세계가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고 있던 지난 1998년 일이다. 러시아에서 모라토리엄 사태가 발생하자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렸다. 그의 금리인하 조치는 IMF사태 여파와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로 인해 바닥을 뚫고 지하로 추락할 뻔했던 미국경제를 구해냈다.

그리고 1년 뒤 1999년 말. 그린스펀은 그가 취한 저금리와 닷컴붐에 취해 흥청망청하고 있는 증시에 낮은 목소리로 시그널을 보낸다.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파티는 끝났다(party is over).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세계경제의 주치의’로 불리는 그의 시그널로 미 증시는 단기간 제법 큰 규모의 조정을 거쳤다. 그해 18,096포인트였던 다우지수는 불과 2개월만에 15,800포인트로 2,296포인트(12.69%) 급락했다.

그럼에도 주식투자자는 물론 정치권으로부터도 ‘세상 물정을 모른다’거나 ‘경질해야 한다’ 따위의 비난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선제적 조치가 세계를 강타한 환란사태로부터 미국의 자산붕괴를 사전에 방어했다는 칭송을 들었다.

그린스펀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87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뒤 조지 H 부시-빌 클린턴-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2006년까지 19년 동안 4명의 대통령과 연준 의장으로서 책무를 다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물론 시장의 신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엊그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을 내놓자 더불어민주당이 성토에 나섰다. 2030세대의 ‘코인 민심’이 악화하면서 일제히 은 위원장 비판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은 위원장의 발언은 할 일은 하지 않고 국민을 가르치려는 전형적인 관료적 태도이자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낡은 인식”이라고 했다. 일간에서는 “경질하라”는 극단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은 위원장의 ‘가상화폐 투자자는 정부가 보호할 수 없지만 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 발언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불만을 백분 이해한다. 폭등하는 집값과 일자리 부족, 왜곡된 정의(正義) 등으로 연애와 구직, 결혼과 출산, 내집마련 등 일상의 꿈마저 상실한 채 가상화폐로나마 상실당한 꿈을 메꾸려 한 이땅의 2030세대 젊은이들의 좌절감에서는 기성세대로서 할 말이 없다.

은 위원장의 발언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낡은 인식’이라는 박용진 의원의 지적은 맞다. ‘할 일은 하지 않고 국민을 가르치려는 관료적인 태도’라는 비판도 옳다. 진보의 시대에 낡은 인식을 갖고 있고, 할 일을 안 했으니 경질돼야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도 할 말이 없다. 비트코인 투자가 이미 7~8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OECD 회원국이자,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가상화폐 관련 법규가 한 줄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금융시장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경제 활력소가 되도록 관리, 감독하고, 관련 법규를 만들어야 하는 금융위원회는 물론 국회조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나, 여전히 낡은 인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금융위 공무원들이나 국회의원들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 특히 여당이 은 위원장의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다분히 2030세대를 의식한 때문이라 여겨진다. 4.7보궐선거에서 대패한 여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30세대 표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읽힌다. 시장문제에 또다시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구태를 반복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25차례나 내놓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고 있다. 부동산정책의 대실패다. 시장을 억누르려 한 것이 실패 원인이다. 시장문제를 정치로, 이념으로, 분풀이식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이런 참사가 반복된 것이다.

어제 관세청이 최근 3년간 서울 시내 아파트를 매수한 외국인 중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한 500여명에 대한 수사를 발표했는데 눈에 띄는 것이 이들의 자금에 가상화폐가 동원된 점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들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해서 불법 이전한 자금 규모가 무려 1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죽을 때까지 내집마련이 불가능해졌다는 좌절감도 뼈 아픈데, 가상화폐를 이용해 불법으로 조성한 자금으로 외국인들이 고가의 아파트를 수십채씩 샀고, 그 아파트값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크게 올랐으니 이중, 삼중으로 속이 쓰릴 만하다.

정부와 여당은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다. 표 얻기에 급급해서 선심성 정책이나 남발하고, ‘내로남불’ 식의 말풍선이나 날려서는 신뢰도 표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시장은 삶의 뿌리다. 터전이다. 시장을 한두번 속이는 것은 어찌 어찌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이내 시장으로부터 복수를 당하게 된다. 시장의 신뢰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시장문제에 툭하면 들이대는 정치적 잣대부터 걷어치워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 제공]

 

방형국 기자  re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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