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삼성전자 백혈병 분쟁 종결 2년, ‘반도체 신화’ 이건희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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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삼성전자 백혈병 분쟁 종결 2년, ‘반도체 신화’ 이건희의 빛과 그림자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0.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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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반올림 11년간 백혈병 분쟁 중재안 수용...10년간 보상 프로그램 운영
-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문 발표...경영권 세습 중단 및 '뉴 삼성' 변화 선언
- '동행' 사회적 가치 중시 및 준법경영위 출범..."뒤처지는 이웃이 없도록 주위를 살피자"

‘반도체 신화의 그늘'로 불리는 삼성전자 백혈병 분쟁이 타결된 지 2년이 지났다. 11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진행된 백혈병 논란은 삼성의 아픈 손가락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아픔이기도 하다.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 후유증이 장소를 달리해 지금도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기 대문이다.

오늘의 삼성이 만들어지는데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드라이브를 건 반도체가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백혈병 문제는 ‘반도체 신화’ 이 회장의 또 다른 얼굴로 비춰졌다. 이 회장은 보상 논의가 본격 진행되는 동안 병석에 있다가 지난 10월 별세했다. 이제 ‘뉴 삼성’으로의 환골탈태는 그의 뒤를 이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맡겨진 숙제다.

◆ 그날

황유미 사망 후 11년간 백혈병 분쟁 종지부...삼성과 반올림 중재안 타결

2018년 11월 2일.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질병 피해자 전원을 보상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11년을 끌어온 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이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낸 중재안을 조건없이 수용한다고 결정했다. 재발 방지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2018년 11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왼쪽부터), 김지형 조정위원장,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년 11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왼쪽부터), 반올림 황상기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이 협약서에 서명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조정위원회는 전날 삼성전자와 피해자 대변 시민단체 ‘반올림’에 중재안을 전달했다. “1984년 5월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피해자에게 최대 1억5,000만원의 보상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중재안은 곧장 타결에 이르렀다. 그 해 7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조정위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도체 백혈병’ 중재안의 핵심은 개인별 보상액을 낮춰서라도 최대한 많은 피해자에게 보상하도록 한 점이다.

조정위는 “피해구제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반도체 및 LCD 작업환경과 질병과의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인과성이 의심되는 수준까지 피해자의 보상범위를 최대한 폭넓게 하되 개인별 보상액은 낮췄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논란은 2007년 3월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황유미(당시 23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황씨가 사망하자 그의 부친 황상기씨는 같은 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측은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고 급여 지급도 거절했다.

그해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발족됐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가 시민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반올림은 삼성의 사과와 대책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의 근무환경과 백혈병 발병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삼성은 2010년 미국의 산업환경 관련 회사인 인바이런에 용역을 맡겼다. 1년 뒤 인바이런은 “백혈병 발병과 직접적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1년 서울행정법원은 고 황유미 씨 등 2명에 대해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2012년 9월, 삼성전자가 백혈병 문제 관련 대화 의사를 가족들에게 전달하면서 협상 분위기가 마련됐다. 반올림은 2013년 1월 삼성전자의 대화 제의를 수용하고 다섯 차례 비공개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그해 12월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의 첫 본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 위임장 문제 등으로 갈등이 빚어지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2014년 2월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돼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이 영화 제목은 당시 삼성전자가 TV광고를 통해 소개한 카피인 '또 하나의 가족'을 빗댄 것이었다. 그해 4월 9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피해자 측에 대한 사과와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보상,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담은 '피해자 및 유족의 구제를 위한 결의안' 발의했다.

삼성전자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문제의 해결 방안을 협상해 온 반올림 회원과 피해자 가족들이 2016년 서울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사과와 보상에 대한 교섭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문제의 해결 방안을 협상해 온 반올림 회원과 피해자 가족들이 2016년 1월 서울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사과와 보상에 대한 교섭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그해 5월 기자회견을 통해 백혈병 등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당사자와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반올림 출범 7년 만에 공식사과와 보상 문제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9월에는 반올림 유족 및 피해자 대표 6명이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1월에는 조정위원회가 발족하면서 협상은 조정위를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조정위는 2015년 7월 삼성전자가 1000억 원 규모의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1차 조정권고안을 발표했으나 협상에 실패했다. 가족대책위가 신속한 보상 등을 이유로 삼성 측과 직접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 삼성전자는 이를 수용했다. 삼성전자는 그해 9월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보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로써 본격적인 보상 절차에 접어들었고 2018년 11월 타결로 이어졌다.

당시 고 이건희 회장은 와병 중이었고,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으며, 법원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 그후

삼성 사과문 발표와 피해자 보상 프로그램 10년간 진행...1차 142억원 지급

2018년 11월 23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자 보상안 합의 이행을 약속했다. 이로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직업병 보상 문제는 11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합의 이행 협약식'에서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중재판정에 모두 합의하고, 이행 협약을 체결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반올림에 공식 사과했다. 김 대표는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다"며 "병으로 고통 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가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가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진 연합뉴스]

황상기 반올림 피해자 대표는 "이번 보상안이 대상을 대폭 넓혀 반올림 피해자들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포함돼 다행"이라며 "사외협력업체 등 이번 보상범위에 들지 못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보상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보상업무는 반올림과의 합의에 따라 제3의 독립기관인 ‘법무법인 지평’이 맡았다.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은 김지형 지평 대표 변호사로 정해졌다. 삼성전자는 중재 판정에 명시된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했다.

보상 대상자는 1984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반도체·LCD 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하다가 관련된 질병을 얻은 전원(재직자·퇴직자 포함)으로 정했다. 피해 보상대상 질병은 기존 26종에서 46종으로 확대했다. 특히 암의 경우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골수종, 폐암 등 16종이 포함됐다. 갑상선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이 망라된 셈이다.

또 다발성 경화증, 쇠그렌증후군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한 희귀질환 전체가 보상 대상자에 포함됐다, 유산 및 사산, 선천성 기형 및 소아암 등 자녀 질환 등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모두 보상하기로 했다.

보상 기간은 1984년 5월 17일부터 오는 2028년 10월 31일로 10년간이었다, 그 이후는 다시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 보상액은 근무장소, 근속 기간, 질병 중증도 등을 고려해 별도의 독립적인 지원보상위원회에서 산정하되 백혈병이 최대 1억5,0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난소암과 유방암은 각각 최대 7,500만원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올해 4월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는 황상기 반올림 대표 앞으로 또 사과 편지를 보냈다. 2007년 3월 6일 황유미씨가 숨진 지 13년 만이다. 삼성 쪽으로부터 받은 첫 개별 사과편지였다. 반올림 관련 피해자들에게도 동일한 편지가 발송됐다.

이어 올해 6월에는 첫 번째 보상이 이뤄졌다. 지원보상위원회(위원장 김지형)는 지난해 1월 발족 이후 보상 신청 건수 499건 중 458건(92%)에 대한 심의를 완료했다. 실제 보상 대상은 400건으로 142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41건은 추가 심의 대상.

질병 종류에 따라 생식질환이 183건으로 가장 많았다. 암 170건, 자녀질환 26건, 희귀질환 21건 순이었다. 백혈병을 포함한 혈액암은 47건이었다.

보상 신청자는 반도체 라인 근무자가 285명으로 전체의 71.2%를 차지했고, LCD 라인은 89명(22%)으로 조사됐다. 반올림에 소속된 53명에 대한 지원 보상도 종결됐다. 보상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거부한 피해자를 제외한 46명에 대해 지원을 마무리했다.

◆ 앞으로

'반도체 신화와 백혈병' 이건희 회장 별세...이재용 부회장에게 남겨진 숙제 

2020년 10월 25일.

'반도체 신화‘와 함께 ’삼성 백혈병' 꼬리표가 붙었던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반올림은 "삼성의 어두운 역사는 이건희의 죽음과 함께 끝나야 한다"며 "삼성의 경제적 성공과 반도체 신화의 영광을 독차지해왔지만 이건희 삼성이 만든 어둠이 작지 않다. 노동자들 건강과 생명은 언제나 삼성 이윤 뒤로 밀려났다"고 논평했다.

 

고 이건희 회장(좌)과 이재용 부회장

반올림은 여전히 삼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2007년 불법 비자금 사태 때 처벌을 면하려 약속했던 경영 사퇴와 비자금사회환원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생명 보험 피해자들과 철거민 등은 여전히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있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삼성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도 해결 과제로 거론한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은 올해 2월 삼성그룹의 윤리·준법경영을 감독하는 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를 출범시켰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주요 7개 계열사가 협약을 맺고 준법프로그램 이행에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준법 의무 위반 행위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신사업도 하겠다"면서 "사회가 더 윤택해지게 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백혈병 문제 등 삼성의 불편했던 과거는 이재용 부회장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있던 지난 6년여 동안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총수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이제부터는 선대 회장의 공과를 넘어 삼성의 장점인 창의력과 도전 정신, 일등주의 등을 계승함과 동시에 이 부회장이 약속한 ‘뉴 삼성’에 주력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과거의 관행과 선을 긋고 ‘동행’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이 부회장은 최근 들어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을 멈추게 하지 않는 힘이라는 게 개인적인 믿음” “뒤처지는 이웃이 없도록 주위를 살피자. 조금만 힘을 더 내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언급이 늘고 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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