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고물가/고지가 시대 혼자 식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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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eets DESIGN] 고물가/고지가 시대 혼자 식사하기
  • 박진아 IT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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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공간이 된 21세기 레스토랑에서 행할 에티켓

일본 만화책을 TV 시리즈로 각색한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 속의 히어로 이노가시라 고로 씨는 일본 곳곳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동네 마다에 있는 맛집을 찾아내어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며 음미하는 일에서 인생의 낙과 안식을 찾는다. 요즘 많은 현대인들의 일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이나 음식점에 가서, 직장이나 집 근처 동네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테이크아웃 식사를 사서 집에서, 또는 스마트폰 음식배달 앱으로 집으로 요리를 배달받아 남이 만들어준 갖가지 음식을 먹고 양분을 취하는 외식・매식 생활은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외식(外食)'은 '집에서 직접 해 먹지 아니하고 밖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그런 식사'라는 뜻이고 '매식(買食)'은 '음식을 사서 먹음 또는 사서 먹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의미상 거의 비슷한 것으로 정의한다.

맥도널드 햄버거의 맥도널드 넥스트(McDonald's Next) 프로젝트를 위해 란디니 어소시에이츠 건축디자인 사무소가 진행한 인테리어 리디자인. 원자화되고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공동체감을 불어넣는다는 취지로 긴 공용 테이블을 중앙 공간에 설치하는 컨셉을 이용했다. 이 사진은 홍콩 맥도널드 레스토랑의 모습. Image: Landini Associates.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 통계 결과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약 80명의 한 명 꼴로 식당이 있을 정도로 외식업이 보편화되어 있다. 서비스 산업을 통틀어서 특히 외식업과 식품산업은 지난 10년 동안 매년 7%에 가까운 성장률을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 내다본다. 그런가하면 반드시 아침・점심・저녁 세 끼니를 제때에 먹어야 한다는 관념도 희미해져 간다. 하루 24시간 아무때나 내킬때마다 먹고마실 것을 집어 사들고 해결하는 일명 ‘풀뜯기’식 식생활을 하는 인구도 늘었다.

현대 음식점은 21세기형 공용 공간
1인가구와 맞벌이 인구의 증가, 사회활동 여성인구의 증가, 결혼율 감소와 이혼률 증가 등으로 전통적 가족구조가 파괴되어 가는 사이, 어머니나 아내가 최소 하루 두끼니 차린 식탁 주변에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기는 빛바랜 추억 속 사진 마냥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간다. 이렇게 갑자기 1인 가구 수가 급증하자 우리나라에서도 혼자서 식사하는 혼밥 문화 또는 ‘솔로 다이닝(solo dining)’이 보편화 되었고 혼자 식사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이미 미국에서는 약 4-5년전부터 레스토랑 손님중 반 이상이 혼자 앉아 식사하는 나홀로 식객인 것으로 집계되기 시작하며 식음료업 마케팅 업계가 주목하기 시작했고, 작년 영국 웨이트로즈(Waitrose) 수퍼마켓 체인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소비자 식음료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인들의 65%가 매일 정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외식・매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고 집계되었다. 일찍이 다양한 선택폭으로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 직접 해 먹는 것보다 저렴하고 일상 문화의 일부로 정착돼 있는 아시아권과 인도대륙에서 외식・매식 인구는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4-5년 사이, 그같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전세계 대도시에서는 혼밥족 고객을 특별히 고려해 디자인된 레스토랑들도 속속 문을 열었다.

혼자 식사하는 것에 부끄러운 느끼거나 얼른 끼니를 해결하고 떠나야 하는 바쁜 고객에게 적합하도록 디자인된 일본의 이치란 라면 테이블과 서비스 디자인.  주문과 음식 서비스 및 지불 시간을 효율화했다. 이치란 라멘 뉴욕 브루클린 지점의 칸막이식 식탁 광경. Image: Ichiran Ramen.

나홀로 식객들을 고려한 솔로 전문 다이닝 음식점들이 가장 세심하게 신경쓰는 점은 고객이 혼자 식사를 할 때 느끼는 고충을 최대한 줄이고 맘편히 식사할 수 있게끔 인테리어 설비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개인주의적이라는 서구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여간해서 레스토랑에 혼자 가기를 꺼리고, 역으로 레스토랑 업자들도 영업적 측면에서 나홀로 고객을 그다지 반겨하지 않는 것은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혼자 식사하는 자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선입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매 테이블 마지막 한 자리까지도 활용해 매출을 올려야 하는 음식점주는 바쁜 식사 시간 대에 혼자 온 손님에게 4인용 식사 테이블을 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우아하고 맘편히 식사하기
얼마전부터 혼자 당당하게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의 기술과 방법을 알려주는 솔로 다이닝 블로거들은 단골 레스토랑에서 눈치볼 것 없이 느긋하고 즐거운 식사경험을 누리려면 바쁜 영업시간 대를 피해 가는 것이 에티켓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도 나홀로 식객들은 주로 삼시 세끼니 시간대에서 벗어난 일명 ‘간식 시간대’와 늦은 아침식사 또는 브런치 시간대에 식사하러 음식점을 찾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혼자서 4인용 식탁을 차지하여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비즈니스 회식을 하러 몰려든 직장인 인파를 피할 수 있다.

음식점주들은 이제 해마다 늘어나는 혼밥 손님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최근 몇 년 외식업계는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행위를 분석하고 이 혼밥 트렌드를 매출 실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경험 디자인을 인테리어로 반영하여 응용하는 추세다. 혼자서 앉아 식사하는 손님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되 맘편히 식사를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수 년 전부터 구미권 레스토랑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공용 식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긴 공동체형 테이블 실험은 실패한 사회엔지니어링 실험으로 판명됐다. 현대 테크놀러지가 현대인의 외식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책 『스마트 캐쥬얼: 미국 구르메 레스토랑의 변신(Smart Casual)』의 저자 앨리슨 펄먼(Alison Pearlman)에 따르면, 강요된 공적 공간이 자아내는 어색함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공용 테이블에 합석한 낯선 이방인들이 스마트폰이나 랩탑을 이용한 테크놀러지와 음식 자체로 더 몰두하게 내몰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한다.

미국 LA에 있는 아시아/하와이풍 퓨전 컨셉의 메뉴를 제공하는 A-Frame 레스토랑은 느긋한 하와이 해변가의 비치바를 연상시키는 바 테이블을 갖추고 있다. 테이블을 지정받기 위해 칵테일을 들고 대기하는 손님들 외에 혼자 식사하러 온 혼밥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데 바 테이블은 유용한 공간이다. Image: A-Frame.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바 테이블 디자인은 긴 공용 테이블 디자인이 초래할 수 있는 심적 불편함이나 이방인과의 사교에 대한 압박감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 솔루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반대편 바텐더가 이러저리 오가며 작업하는 바를 향해 한 방향으로 바라보며 앉아 드링크나 식사를 할 수 있는 바 시팅 방식은 낯모르는 이웃 손님들과 시선이 마주치거나 상호작용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반대편 바텐더나 서비스 스태프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볼거리가 덤으로 펼쳐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바 테이블, 길거리 푸드 트럭이나 주방개방형 오픈 키친이 선사하는 퍼포먼스적 요소는 엔터테인먼트 효과까지 주기 때문에 요즘 레스토랑 리디자인에 응용되고 있다.

혼밥 고객은 여럿이 식사하는 고객들과 달리 여간해서 한 두 시간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경우는 드물다. 자리에 앉은 직시 주문하고 식사하고 지불하고 자리를 뜨는 시간은 30분 안팎 가량으로 빠르기 때문에 업주 측에서 혼밥 고객이란 빠른 테이블 회전을 뜻한다. 그런 점에 착안하여 나홀로 식객을 환영하는 식당이나 음식점들은 주문부터 상차림, 지불, 식탁 치우기까지 서비스 시간과 동선을 최대한 신속하게 효율화하여 매출 증가로 연결시키는데, 예컨대 이치란 일본 라면 체인점이 고객과 서비스 스태프 사이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효율과 프라이버시를 극대화하는 테이블과 서비스 경험을 제시해 화재가 되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이미 서구권의 레스토랑 고객 60% 이상이 혼자 식사하는 나홀로 식객이라고 한다. 그러하다 보니 식당은 남들과 공유해야 하는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개념 변화하고 있으며, 현대인들도 그에 걸맞는 새 행동 규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받는다. 과거 함께 식사하기가 사회적 의례이던 시절,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조용하고 깍듯이 식사하면서 상대방과 쾌적한 대화와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쳤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생긴 1인 손님 전용 레스토랑인 에엔마알(Eenmaal)의 인테리어. 손님들은 아담한 1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면서 개인용 스마트 디바이스나 랩탑을 앞에 두고 작업도 겸할 수 있다. 손님으로 만원인 시간대에도 옆 손님과 눈길이 마주치거나 소통하지 않도록 시트가 배치되어 있어 프라이버시와 자기만의 조용한 시간을 원하는 고객들이 찾는다. Image: EENMAAL.

그러나 테크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다양한 익명의 개인들이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지금 외식 문화도 달라졌다. 각종 푸드 블로거, 셀프헬프 사교서, 구르메 전문지는 테이블 위 식기로 자기 영역을 분명히 확보하고 낯선 옆 손님에게 불쑥 말을 걸거나 옆자리 대화를 엿듣는 짓은 금해야 할 식사 매너의 첩경이라 가르친다. 요즘 나홀로 식객들의 대다수는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를 들여다 보며 식사한다. 타인의 접근을 미리 막기위한 신호로 늘 헤드폰을 끼고 식사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특히 18-24세대 연령대 젊은이들과 여성들은 스마트폰을 반드시 식사와 함께 사용하고 있고, 어떤 손님들은 혼자 식사를 하면서 스마트폰이나 랩탑을 켜놓고 사업 화상통화나 업무를 보기도 한다.

끼니를 만들고 음식을 취하는 방식은 시대의 사회문화와 기술진보와 함께 변화한다. 그런 한편으로, 모바일 개인 테크놀로지가 주도된 1인 단위 소비문화의 발전 이면엔 질 위주의 맛있는 요리와 상황판단력과 절제력을 갖춘 서비스 스태프 같은 소프트 스킬이 외식산업에 전에 없이 중요해졌다. 실제로 커플이나 단체 손님에 비해서 혼자 온 식객이 음식점의 요리사나 웨이터와 안면을 트거나 담소하는 시간이 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혼자 간편히 끼니를 해결하려면 수퍼마켓 및 편의점 포장식이나 배달음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1인 고객들은 또 혼자서 레스토랑을 찾아 온다. 왜 일까? 1인 외식 고객은 자기가 좋아하는 셰프의 요리, 레스토랑 분위기, 낯익은 서비스 스탭의 눈치있는 서비스를 찾아온 되돌아오는 팬이나 단골고객들이다. 식도락의 왕도란 좋은 일행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는 인간본유의 욕구와 사회적 진리는 쉽게 변치 않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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