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다] 차세대 메모리 소자, ‘스핀’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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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품다] 차세대 메모리 소자, ‘스핀’에 답 있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6.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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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S 연구팀, ‘왼손 방향 스핀파’ 찾아내
강자성체와 CoGd 준강자성체 내부에서 자화의 오른손과 왼손 방향 회전 모식도(왼쪽). 스핀파와 브릴루앙 산란 측정 모식도.[자료=KRISS]
강자성체와 CoGd 준강자성체 내부에서 자화의 오른손과 왼손 방향 회전 모식도(왼쪽). 스핀파와 브릴루앙 산란 측정 모식도.[자료=KRISS]

반도체 기반 전자소자는 전자의 두 가지 특성을 이용한다. 전하와 스핀이다. 양자역학적 성질인 스핀을 고려하지 않고 전하만을 전기장으로 제어해 그동안 발전해 왔다. 문제가 생겼다. 소자 자체의 메모리 저장 한계, 소형화에 따른 열 방출 한계 등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빠르게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초저전력, 초고속, 대용량 등 차세대 메모리 소자 구현에 사용될 스핀 연구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 박현민) 양자기술연구소 양자스핀팀은 1960년대 이론으로만 소개됐던 왼손 방향으로 회전하는 스핀파를 세계최초로 증명했다. 스핀을 이용한 차세대 소자개발에 새로운 지평선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양자스핀팀(김창수 선임연구원, 황찬용 책임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수길 박사, 김갑진 교수, 김세권 교수와 공동으로 전이금속 코발트(Co)와 희토류 가돌리늄(Gd)이 일정 비율로 혼합된 CoGd 준강자성체(서로 다른 크기의 반평행한 자화들로 이뤄진 자성체)에서 왼손 방향의 세차운동(회전하는 천체나 물체의 회전축 자체가 도는 형태의 운동이나 그 현상)을 하는 스핀파를 측정하고 이에 기반을 둔 물리 현상들을 새롭게 밝혀냈다.

스핀(spin)과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의 합성어인 ‘스핀트로닉스’ 기술은 전자의 전하와 스핀을 동시에 제어하는 기술이다. 기존 전자소자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스핀들의 집단적 움직임을 나타내는 스핀파의 경우 작동 주파수가 매우 높은 영역에 분포하고 전력 소비가 매우 적어 초고속 저전력 소자에 적용할 수 있다.

스핀트로닉스를 실현하려면 전자의 스핀 방향을 자유롭게 제어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스핀을 결정하는 물리적 원인과 제어 방법, 스핀의 회전 방향 분석 등 복합적이고 난도 높은 연구가 필요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석을 잘게 쪼개면 전자스핀 하나에 해당하는 작은 자석까지 나눌 수 있다. 이 작은 자석은 자기장이 주어지면 오른손 방향으로 세차운동을 하는 성질을 갖는다.

반평행하게 정렬된 코발트와 가돌리늄의 단위 자화는 회전 관성이 더 큰 가돌리늄의 자화 때문에 전체적으로 왼손 방향으로 회전하는 성질을 가질 수 있다. 1960년대에 준강자성체의 세차운동에 대한 이론들이 발표되면서 왼손 방향 운동이 예측됐는데 현재까지 미시적 수준에서의 실험으로는 관찰되지 못했던 현상이다.

공동 연구팀은 빛과 스핀파 사이의 충돌을 이용하는 기법인 브릴루앙 광산란법(Brillouin light scattering)을 사용해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빛이 물질에 쬐어지면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산란광이 발생한다. 브릴루앙 산란은 물질 내 존재하는 진동 모드와 상호작용을 통해 입사광의 진동수(내지 파장)가 변하며 산란하는 현상이다. CoGd 준강자성체에 빛을 쪼아 스핀파와 충돌시킨 후 되돌아온 빛을 분석해 스핀파가 가진 에너지와 운동량을 알아낸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수십 피코초(1000억분의 1초) 영역에서 왼손 방향 운동을 처음으로 관찰했다. 준강자성체의 자화보상온도에서 스핀파 에너지가 ‘0’ 근처로 수렴하고 자기장의 증가에 따라 각운동량 보상온도가 같이 증가하는 현상 등도 새롭게 찾아냈다.

황찬용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오른쪽으로 도는 자화를 기반으로만 이론이 제시되고 실험이 진행됐다”며 “스핀파의 왼손 방향 운동을 최초로 규명함으로써 차세대 스핀트로닉스 소자개발에 새로운 지평선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재료과학분야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6월 30일 온라인(논문명: Distinct handedness of spin wave across the compensation temperatures of ferrimagnets)에 실렸다.

◆연구팀 미니 인터뷰

-이번 성과 의미는.

“자화의 세차운동은 지금까지 오른손 방향의 운동만이 관찰됐다. 준강자성체의 왼손 방향 운동은 오래전부터 이론으로 예견돼왔는데 미시적 영역에서 스핀파의 왼손 방향 세차운동을 측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황찬용 책임(왼쪽)과 김창수 선임연구원.
황찬용 책임(왼쪽)과 김창수 선임연구원.

-어디에 쓸 수 있나.

“우선 초고속 저전력 소자개발을 할 수 있다. 스핀파의 경우 작동 주파수가 수 GHz에서 THz에 이르기까지 매우 높은 영역에 분포한다. 전력 소비가 매우 작다. 초고속, 저전력 소자에 적용이 가능하다. 스핀의 회전 방향 분석을 통한 추가 연구를 통해 스핀의 세차운동과 관련된 물리적 원인과 제어 방법을 알아낸다면 전자의 스핀 방향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도 있으며 이를 활용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스핀 소자의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이 가능하다. 준강자성체의 스핀파는 자화보상온도에서 ‘0’ 근처의 에너지를, 각운동량보상운도에서는 수십 GHz의 영역까지 쉽게 도달하기 때문에 스핀 소자의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할 수 있다. 이 성질을 응용하면 현재 반도체 전자소자의 가장 큰 문제인 초고속 작동, 저전력 소모라는 두 가지의 해결책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처음 변온실험을 했을 때, 새벽까지 실험하다 예상치 못한 왼손 방향 회전이 측정되자 실수로 장비를 잘 못 다뤄 이상한 데이터가 나온 줄 알았다. 새벽까지 진행했던 실험 데이터가 날아갔다고 여겨져 속이 많이 상했다. 다음날 장비를 모두 점검하고 다시 측정했다. 전날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KRISS 양자기술연구소에서 스핀 동역학 측정기술에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기본사업의 가장 큰 결과물로 국내는 물론 국외 스핀파 분야의 연구를 선도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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