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한 대통령들...그들은 떠나면서 어떤 말을 했을까?
상태바
하야한 대통령들...그들은 떠나면서 어떤 말을 했을까?
  • 조아라 기자
  • 승인 2016.11.15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 국내외 스스로 물러난 대통령 사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 자리를 물러나면서 어떤 말을 했을까?

◇ 대한민국 1호 ‘하야 대통령’ 이승만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1960년 4월 26일 오후 1시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하야 발표였다. 한 시간 후인 오후 2시 정부는 부통령 선거와 내각책임제 개헌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다음날 이 전 대통령의 사임서가 수리됐다.

이 전 대통령은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 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마산 3·15 부정선거 의거'에 참여한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목숨을 잃은 지 40여일 만이었다.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전국은 “이승만 하야하라”는 외침으로 가득 찼다. 이승만 정부의 12년 장기집권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윤보선, 하야성명 → 하야 번복 → 하야성명

 

“이 나라의 일을 군사혁명위원회의 사람들이 맡아서 보게 하였으며 국민 여러분이 또한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지금 안심하고 이 자리를 물러나겠습니다”

5·16 군사 쿠데다가 일어난 지 사흘째인 1961년 5월 19일 윤보선 전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0일 하야를 번복했다.

그는 군사혁명 발생으로 인명의 희생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하야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일을 군사혁명위원회의 사람들이 맡아서 보게 하였으며 국민 여러분이 또한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지금 안심하고 이 자리를 물러나겠습니다”고 발표했었다.

윤 전 대통령의 공백은 군사정권이 새 정부로 인정받는 데 장애로 작용할 거란 우려가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새정부 인사들의 설득으로 하야를 번복했다. 윤 전 대통령의 하야 번복이 군사정권 협력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는 이같은 배경이 자리한다.

군사쿠데타 이후 무려 1년이나 청와대 주인을 유지했던 윤 전 대통령은 결국 1962년 3월 하야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공격수로 감금과 연금을 반복하다 생을 마감했다.

◇ 최규하, ‘자의반 타의반’ 하야발표로 허수아비 옷 벗다.

“지난 봄 학생들의 소요와 광주 민중 항쟁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정치 도의상의 책임을 통감해 왔고, 역사적 전환기에 임기 전이라도 사임함으로써 평화적 정권이양의 선례를 남겨 정치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전 대통령은 재임 8개월 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침묵했다. 최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

시간이 흘러 하야 1시간 전 녹음된 최 전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됐다. 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임이 성명에서 발표한 것처럼 ‘평화적 정권교체’가 아닌 ‘군의 광주 무력 진압 책임’에 있음을 들었다.

녹음기록에는 “우리 군이 광주에서 실수한 것은 가슴 아픈 일로 국군통수권자로서 정치 도의상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결심했으니, 앞으로는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사임으로 국민들이 과거를 잊고 화합하여 재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담겨있었다.

◇ 샤를 드골 대통령, 군더더기 없는 사임

“저는 공화국 대통령직 정무를 중단합니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효력을 발생합니다”

1959년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은 1969년 4월 사임을 발표했다. 그의 사임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제5공화국을 발족해 ‘7년 중임제’로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드골은 ‘위대한 프랑스’를 목표로 활동을 전개했다. 

1967년 드골은 경기 악화로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음해 경제성장률은 집권 이후 최저인 4.4%를 기록했다. 1969년 지방제도와 상원 개혁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면서 대통령직을 내놨다.

◇ 리차드 닉슨, ‘워터게이트’ 불명예 퇴진

“제가 판단을 잘못한 일이 있었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모두 그 시점에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고 내린 판단이었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74년 8월 닉슨 전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났다. 의회가 자신에 대한 탄핵 절차를 시작한 때였다. 지지도는 급락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워터게이트 건물에 있는 민주당의 선거캠프를 도청한 사실이 알려졌지만 닉슨 전 대통령은 이를 축소·은폐하려 했다. 이런 시도는 결국 자진 사임으로 이어졌다. 분량이 꾀 길었던 그의 사임 연설문은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됐다.

닉슨 전 대통령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나라의 상처를 치유하고, 지난 수개월 동안의 나쁜 감정과 분열의 과거사를 정리하고, 위대하고 자유로운 국민의 유대감과 단결의 중심에 있는 공통의 이상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라며 "저의 사임이 이 나라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치유의 과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하야, 30년 군부독재 막내리다.

“나는 오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며, 모든 권력을 이집트 군사최고위원회에 이양할 것이다”

2011년 2월 11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물러났다. 30년간 이어진 군부독재도 막을 내렸다.

1987년부터 무려 4번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된 무바라크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와 국제사회 퇴진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하야했다.

시위 과정에서 300명이 목숨을 잃고 5000명이 다쳤다. 이집트 전역으로 시위가 확대되고, 대통령궁까지 포위되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백기를 들었다. 연일 시위가 이어지던 거리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조아라 기자  archo@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