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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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있는 그대로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3.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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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 ‘투명성’에 깊은 상처 낸 신천지교회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 이들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한 숙박업소 사장. 이 사장에게 지원품과 기부금을 보내준 시민. '힘내라 대구'를 외치는 국민. '연쇄 희망 나누기'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 이들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한 숙박업소 사장. 이 사장에게 지원품과 기부금을 보내준 시민. '힘내라 대구'를 외치는 국민. '연쇄 희망 나누기'가 이어지고 있다.

투명성은 참 어렵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을 싫어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국회에서든, 국가에서든 대부분 ‘투명성’은 없고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코로나19(COVID-19)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섰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말들이 많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국회 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급증하는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이들이 있다. 반면 질병관리본부가 검사량을 대폭 늘리면서 ‘확진자를 일일이 찾아내는 과정’이란 평가도 있다.

정치적 책임을 묻든, ‘일일이 찾아내는 것’이라는 평가를 하든 모두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에게는 ‘고생이 많다. 힘내라’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의견이 다른 이들이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에 대해서만은 힘을 보태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국내 확진자 현황과 동선 등을 일일이 공개했다. ‘투명성’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다. 더하지도 보태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았다. 코로나19 관련 객관적 데이터를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이번 국내 코로나19 사태는 ‘신천지 대유행’에 그 원인이 있다는데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한다. 한동안 30여 명에 머물렀던 확진자가 지난달 18일 31번째 신천지교인이 감염되면서 일파만파 퍼졌다.

신천지교인 31번째 확진자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감염자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신천지교회 대응은 그야말로 ‘숨기고 거짓 정보 흘리기’로 일관했다. 신천지교인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자 보건당국은 신천지교회 측에 교인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달 18일 31번째 확진자 확인 이후 신천지교회는 지난 2월 25, 26일에야 교인 명단을 내놓았다. 이 또한 전체 교인 명단이 아니었다. 급기야 경기도는 과천신천지교회를 압수수색해 명단을 강제로 확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지자체가 확보한 명단과 신천지교회가 제출한 명단에 누락이 발생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가 ‘투명성’을 최고 가치로 내걸고 있는 사이 신천지교회는 ‘숨기기’ 전략으로 방역에 구멍을 뚫었다.

무엇보다 ‘신천지 대유행’에서 신천지와 이만희 신천지교회 총회장의 행보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줬다. 정확한 통계는 분석해 봐야 알겠는데 지금까지 확진된 코로나19 감염자 10명 중 많게는 8명 이상이 신천지교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감염자 대부분이 신천지교회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만희 총회장은 두문불출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교인에 큰 환란이 닥쳤다면 직접 나서서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게 ‘믿음의 책임’일 것이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이른바 ‘특별 편지’ 형식으로 ‘이번 사태는 요한계시록 환란’ ‘믿음 빼앗으려는 폭풍’ 등의 말도 되지 않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이 같은 이만희 총회장의 무책임에 대해 서울시는 물론 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신천지교회를 검찰에 고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경했다. 박 시장은 “신천지교회와 이만희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된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질병관리본부와 법무부는 현재 31번째 확진자와 이후 급증한 신천지교인이 어떻게 감염됐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월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을 때 신천지교인 일부가 중국 우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질병관리본부의 추가 역학조사 등이 이뤄져야 하겠는데 ‘1월 신천지교인 우한 방문→국내 31번째 확진자 등 집단감염→2, 3차 감염’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또한 신천지교회가 숨기고 있었다면 더는 국민으로부터 용서받기 힘들 것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일 신천지 교단에 가지고 있는 시설을 소속 신도 가운데 경증환자들을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이 전 총리는 “신천지 소유시설을 신천지 소속 무증상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고 그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며 “그것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을 겪는 국민에 대한 신천지의 최소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의 이 같은 주문은 사실 이만희 총회장이 먼저 내놓아야 할 대책이었다.

신천지교인임을 숨기고 방역 현장에서 버젓이 일한 공무원들도 수두룩하다. 대구 서구보건소에서 감염 예방업무 총괄을 맡은 A 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통보받기 전까지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격리 통보 전까지 신천지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다른 기초 자치단체 등에서도 공무원이 신천지교인임을 숨기는 사례가 발견됐다.

방역 당국이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보면 대구 외 지역의 신천지교인 8563명이 기침이나 발열 등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천지 교육생 393명도 감염이 의심되는 증상을 보였다. 아직 100% 조사가 끝난 것도 아니다. 100% 전수 조사가 끝나면 그 숫자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심증상이 있다고 모두 감염된 것은 아닌데 늘어날 확률은 높다.

연락이 닿지 않는 신천지교인도 많다. 신천지교회 측이 내놓은 교인 현황을 보면 국내 신천지교인은 21만2324명, 해외 3만3281명 등 24만5605명에 이른다. 교육생은 국내 5만4176명, 국외 1만951명 등 총 6만512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성년자 1만6680명, 주소지 불명 863명 등이었다.

독일과 호주 등은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을 매일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두고 “한국 코로나19 통계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검사 건수가 많다는 것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2일 현재까지 10만5379명을 검사했다. 이 중 4212명이 확진됐다. 일본은 지금까지 약 2500명, 미국은 약 500건 검사에 불과하다. 검사 건수가 많을수록 확진자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보다 일본과 미국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는 검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감염된 이가 훨씬 많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뭔가를 숨기고, 감추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종감염병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전 세계 각국은 우리나라 국민에 대해 입국 금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이 또한 그 나라 사정상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피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투명성’을 내세우고 있다. 당분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급증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숨기고 속여야 할까.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우리나라는 감염자를 일일이 찾아내는 ‘방역시스템’으로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이는 확진자를 신속히 확인해 격리하고 차단함으로써 ‘원천봉쇄 전략’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순간 확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겠는 데 어느 정도 선에 오르면 급격히 꺾일 게 분명하다.

국가 오명과 경제적 피해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투명성’으로 일관한 보건당국에 ‘숨기기와 거짓 정보’로 일관한 신천지교회는 이번 사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신들이 “한국 코로나19는 다른 원인이 아닌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급증했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 전 총리가 지적했듯 이제 신천지교회도 관련 시설을 개방해 전 국가적 방역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신천지교회 측이 여전히 ‘마녀사냥이다’ ‘우리도 피해자다’는 피해자 코스프레(Costume Play, 의상 놀이)로 일관한다면 철저히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소외당할 것이다. 국가 방역시스템에 동참하는 것만이 지금까지 ‘죄’를 씻고 ‘회개’하는 길이다.

코로나19 진료를 위해 전국에서 자원해 한걸음에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진, 도착한 의료진들에게 자신이 운영하던 숙박업소를 무료로 개방한 사장님, 숙박업소를 무료개방한 사연이 소개되자 이곳으로 지원품과 기부금을 보내주는 시민, ‘힘내라 대구’를 외치며 응원하는 국민. 1시간 남짓 쪽잠을 자며 전국 현황을 매일 살피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관계자들. 코로나19에 대항해 싸우는 이들이 대한민국에는 많다. 이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은 코로나19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투명성'으로 일관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관계자들에 대한 국민적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투명성'으로 일관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관계자들에 대한 국민적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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