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다] 현생인류 이동… 기후변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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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품다] 현생인류 이동… 기후변화 탓이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19.10.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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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지 살 수 없어 밀어낸(PUSH) 게 아니라 녹지축 확대되면서 끌어당긴(PULL) 것
국제 공동연구팀, 현생인류 정 발상지와 이주 원인 처음으로 밝혀내
국내 연구팀이 현생인류의 정확한 발상지와 이동 원인을 처음으로 규명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IBS]
국내 연구팀이 현생인류의 정확한 발상지와 이동 원인을 처음으로 규명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IBS]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기후는 늘 변화해 왔다. 국내 연구팀이 현생인류의 정확한 발상지와 이들의 이동이 기후변화 탓이었음을 처음으로 밝혀내 전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악셀 팀머만 단장(부산대 석학교수) 연구팀은 호주, 남아공 연구팀과 함께 현생인류의 정확한 발상지와 이주 원인을 세계최초로 밝혀냈다. ‘현생 인류’란 현존 인류와 해부학적으로 같은 인류를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연구팀은 현생인류의 가장 오래된 혈통이 20만 년 전 아프리카 칼라하리 지역에 출현해 13만 년 전 기후변화로 이주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발상지에서 살 수 없어 현생인류를 밀어낸(PUSH) 게 아니라 녹지축이 확대되면서 발상지에서 다른 곳으로 끌어당겼다(PULL)는 사실을 확인했다. 칼라하리 지역은 나미비아, 짐바브웨 국경에 이르는 보츠와나 북부지역(그레이터 잠베지 강 유역 남쪽)을 말한다.

공동 연구팀은 남아프리카에 사는 후손들의 DNA를 추적해 현생인류의 정확한 발상지를 밝혀냈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현했음은 이미 알려졌었는데 정확한 발상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현생인류 유골은 동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반면 살아있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혈통(L0의 후손)은 남부 아프리카에 주로 거주하기 때문이다. ‘L0’는 현생인류 최초 어머니에서 처음 갈라져 나온 혈통으로 현재도 L0 후손들이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연구팀은 ‘L0’ 혈통의 후손 198명을 새로 찾아내 기존의 1019개 표본으로 작성된 ‘L0’의 하위 계통 출현 연대표를 다시 작성했다. 새 연대표에는 이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희귀 하위 계통이 추가됐다. 유전자 하위 계통의 출현 시점은 이주 시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구팀은 개선된 연대표와 후손들의 언어·문화·지리적 분포 정보를 연계해 최초의 이주 경로와 발상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

IBS 연구팀은 현생인류가 발상지에서 이주한 원인으로 지구 자전축을 꼽았다. 자전축 변동으로 아프리카 지역에 기후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해양 퇴적물 등 고(古)기후 자료와 기후 컴퓨터 모델 분석으로 지구 자전축의 느린 흔들림(세차운동)이 남반구의 여름 일사량을 변화시켰고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 전역의 강우량이 주기적으로 변화했음을 규명했다. 세차운동은 태양과 달의 인력으로 지구 자전축이 약 2만1000년 주기로 회전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같은 기후변화로 약 13만 년 전에 발상지 북동쪽(잠비아, 탄자니아 지역), 약 11만 년 전에 남서쪽(나미비아, 남아공 지역)으로 녹지가 형성됐다. 이주가 가능한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이는 유전학적으로 분석한 이주 시기는 물론 경로와 일치해 현생인류가 기후변화로 이주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번 연구는 유전학적 증거와 기후물리학을 결합해 초기 인류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데 의의가 있다. 연구를 이끈 악셀 팀머만 단장은 “호주의 유전학자들이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하고 IBS의 기후물리학자들이 고기후를 재구성해 인류 첫 이주에 대한 최초의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팀은 앞으로 ‘L0’ 외 다른 혈통의 이주 경로도 추적해 인류 조상들이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 기후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초기 인류 역사의 수수께끼를 계속 풀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10월 29일 온라인판(논문명 : Human origins in a southern African palaeo-wetland and first migrations)에 실렸다.

◆현생인류, 이주 원인 중요한 이유=지금까지 현생인류의 최초 이주 원인으로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현생인류가 건조해진 기후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녹지 개방으로 사냥과 수렵채집을 하며 녹지축을 따라 이동했다는 가설이다. 첫 번째 가설은 발상지가 더 살 수 없어 현생인류를 밀어냈다(PUSH)는 가설이고 두 번째는 발상지에 살 수는 있는데 녹지축이 확대되면서 끌어당겼다(PULL)는 가설을 일컫는다.

어떤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지질학적 데이터와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부터 기후와 식생 변화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 해양과 육지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약 2만 1000년의 주기로 남아프리카에서 습하고 건조한 상태가 교대로 반복되는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천문학적으로 유발된 지구 축 변화, 계절 변화와 관련이 있다. 남반구 여름이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근일점)에서 발생할 때 남아프리카 여름은 가장 덥고 습도가 높아져 강수량과 식생이 증가한다. 만 년(반주기) 후 지구 자전축은 반대로 기울어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지점(원일점)일 때 남반구는 여름이 된다. 이때는 건조하며 토지 생산성이 감소한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과거 남아프리카 강우량과 식생 패턴 변화를 재현했다. 분석 결과 유전학에서 밝힌 최초 이주 시점과 일치하는 약 13만 년 전 칼라하리 북동쪽 지역은 습해지며 녹지축이 발상지까지 이어졌고 이 녹지축을 따라 인류가 최초로 이주했음을 규명했다. 또한 연구팀은 세차운동과 지구 축 경사도의 상호작용으로 약 11만 년 전에 남서쪽으로 또 다른 녹지축이 열렸고 그 시기에 인류가 남서쪽으로 이주를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공동저자인 이순선 IBS 기후물리 연구단 연구위원은 “현생인류의 정확한 발상지와 기후변화 탓으로 이주했다는 것을 알아냈다”며 “특히 이번 논문은 선행연구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해 종합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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