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정치경제학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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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정치경제학의 재발견"
  • 조원영
  • 승인 2016.04.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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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경영인클럽(회장 김동욱)은 지난달 15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 호텔에서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을 초청, 「관자경제학의 재발견」을 주제로 조찬회를 개최했다. 내용을 요약한다.<편집자>

관자경제학과 상가(商家)

동아시아의 역사문화는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자백가의 효시가 바로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 학자인 관중(管仲)이다. 그의 저서 「관자」는 정치와 경제, 외교, 군사 등 21세기에도 극히 중시되는 모든 부문을 깊숙이 논하고 있다.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를 논할 때 반드시 그를 짚고 넘어 가는 이유다. 공자가 「논어」에서 제자들과 함께 관중을 논하며 최고의 인자(仁者)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주목할 것은 방대한 분량의 「관자」가 정치경제에 관한 논의를 전체의 절반가량 할애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에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학을 포함해 애덤 스미스와 케인즈 및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의 사상을 유가, 도가, 법가 등과 더불어 제자백가의 일원인 상가(商家)로 꼽는 이유다.

상가는 부민부국(富民富國)의 방략을 중농(重農)이 아닌 중상(重商)에서 찾고 있는 게 특징이다. 취지 면에서 21세기의 경제경영학 이론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관자」를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 텍스트로 간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관자」에 관한 연구를 관학(管學)으로 통칭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제 「관학」은 중국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학계는 관중을 효시로 하는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 학파를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한 서구의 자유주의 경제학과 대비시켜 통상 경중가(輕重家)로 부르고 있다. 「경중」 용어는 「경중」편에서 따 온 것이다.

관중은 개방적인 대외무역을 통한 모든 재화의 원활한 유통, 상평창을 통한 물가 안정과 사회 안전망 구축, 소금과 철의 전매 제도를 통한 재정 확충 방안 등을 「경중」으로 표현했다.

원래 중국에서는 주(周)나라 때부터 상품의 생산과 조절, 화폐 유통, 당국의 물가통제 등을 「경중」으로 불렀다.

청대 말기 일부 변법개혁파가 영어 「이코노믹스」를 「경중학(輕重學)」으로 번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 「이코노미」를 경세제민의 약자인 「경제」로 번역하며 메이지 유신을 강력 추진한 것과 같은 취지다. 중국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나름 독자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면서 변법개혁파의 번역어는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자리를 일본 번역어가 차지했다. 「경중학」 대신 경제학(經濟學)이 널리 통용된 배경이다.

주목할 것은 21세기에 들어 와 중국 학자들이 관자경제학을 다시 「경중학」으로 명명하고 나선 점이다. 중국 전래의 역사문화에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21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관학」의 본산은 일본이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표적인 인물로 지금의 교토 일대에서 활약한 유학자 이카이 요시히로와 야스이 히라나라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21세기 현재까지도 「관자」의 주석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만큼 매 구절마다 뛰어난 주석을 남겼다. 일본이 에도 시대 이전부터 상업을 중시하며 부국강병을 역설한 관자경제학에 공명한 결과다.

중국과 한국의 역대 왕조는 일본과는 정반대로 하나같이 맹자의 가르침을 좇아 사서삼경을 중시하며 중농주의 정책 기조를 견지했다. 그러나 「관자」는 이와 정반대이다. 농업을 중시하기도 했지만 상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종 금융정책 및 재정정책을 통해 국부를 쌓을 것을 주문한 게 그렇다.

중농의 기조를 견지한 중국과 한국에서 「관자」가 오랫동안 사대부들 사이에서 일종의 금서처럼 간주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중국에서 관중이 상가의 효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G2의 일원으로 우뚝 선 21세기 이후의 일이다. G2의 일원이 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틀이 이미 「관자」에 상세히 기술돼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다.

이민(利民)과 균부(均富)

관중을 효시로 하는 상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제자백가이다. 그러나 춘추전국 시대는 물론 그 이후의 진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가는 분명 하나의 사상적 흐름으로 존재했다. 전한 초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평준서」와 「화식열전」을 편제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화식열전」에서 「화식(貨殖)」은 곧 자원의 생산 및 교환을 통해 재화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공업 활동을 의미한다.

거만의 재산을 모은 부상대고(富商大賈)에 대한 사마천의 기본 입장은 선명하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부자들 중에는 목장 주인, 하층 장사꾼, 부녀자 등이 있다. 사마천은 이처럼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부상대고가 된 비결을 모든 정성을 기울여 주어진 사업에 매진한 덕분으로 파악했다.

「관자」와 「화식열전」의 키워드 중 하나가 백성에게 이익을 안기는 이민(利民)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중은 “무릇 자신을 위하는 이기(利己)는 추호도 없고 오직 백성만을 이롭게 한 사람은 오직 순임금뿐이다.

당초 그는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고, 하빈(河濱)에서 그릇을 굽고, 뇌택(雷澤)에서 고기를 잡았다. 이 때 자신은 조금도 이익을 취하지 않고 그 이익으로 백성을 가르치고, 백성이 모든 이익을 갖도록 했다.”고 했다.

관중이 「이민」을 부국강병의 요체로 간주한 배경이다. 그가 「부민」을 생략한 채 곧바로 부국강병으로 나아가고자 한 제환공의 성급한 행보를 제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민」이 선행돼야 부국강병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관자 사상을 관통하는 최고 이념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필선부민(必先富民)」으로 표현된 「부민」을 들 수 있다. 부민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이민(利民)에서 시작한다.

관중의 경제 사상은 「이민」 내지 「부민」으로 요약된다.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이민 정책을 펼쳐야 백성이 부유해지는 부민을 달성케 되고, 부민이 완성돼야 나라도 부유해지는 부국이 가능해지고, 부국이 돼야 강병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는 전인민을 고루 잘 살게 만드는 균부(均富) 사상으로 요약된다.

관자의 「부자가 원하는 만큼 소비토록 하면 덕분에 빈자도 일자리를 얻게 된다」고 언급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자는 「균부」에 방점을 찍고 부자의 사치성 소비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자공(子貢)과 유상(儒商)

역사적으로 볼 때 유학을 공부한 사람 가운데 상가 이론을 깊숙이 흡입해 치부한 대표적인 인물로 공자의 수제자 자공(子貢)을 들 수 있다. 유상(儒商)의 효시에 해당한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해박하고 언변에 뛰어났다. 그가 당대 최고의 부를 이룬 것도 그의 이런 뛰어난 자질과 무관치 않았다. 공

자가 사망했을 당시 제자들은 모두 3년 간 상복을 입었다. 오직 자공만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다시 3년을 더 시묘(侍墓)하다가 떠났다. 3년 시묘도 쉬운 일이 아닌데 6년 시묘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자공의 스승에 대한 애모의 정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짐작케 해 주는 대목이다.

당초 공자가 생전에 총애했던 애제자로는 자공 이외에도 안회(顔回)와 자로(子路)가 있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 모두 스승인 공자에 앞서 요절했다.

공자가 안회를 총애한 것은 자신의 사상을 집약한 인(仁)을 능히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자로는 의(義)를 상징했다. 천하유세 이전의 전기 제자인 안회 및 자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기는 했어도 공자가 천하유세를 끝낸 후 육성한 후기 제자 가운데 자하(子夏)는 예(禮)를 집대성한 인물에 해당한다.

「인·의·예」는 공자가 역설한 지덕(知德)에서 「덕」의 항목에 해당한다. 「지」는 「인·의·예」로 상징되는 덕목과 구별되는 학문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과한 채 유학의 기본 취지가 덕을 닦고 함양하는 수덕(修德)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맹자와 성리학자들이 「수학」을 멀리한 채 「수덕」을 강조한 데서 이런 오해가 만들어졌다. 그 폐해는 매우 컸다. 난세의 시기에 「수덕」을 강조한 성리학이 오히려 패망을 재촉하는 독소로 작용한 게 그 증거다. 난세의 시기에 「지」는 부국강병의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그 요체이다.

공자의 제자 중 이를 실현한 인물이 바로 자공이다. 그는 열국의 제후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모았고, 공자가 더불어 시(詩)를 얘기할 만하다고 칭송할 정도로 「지」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후세인들의 자공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했다. 그가 이재(理財)에 밝았던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멸욕설(滅欲說)을 주장한 성리학자들이 이재에 밝았던 자공을 높이 평가할 리 만무했다.

그의 뛰어난 언변도 못마땅했을 것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실천한 안연을 극도로 높이면서 의도적으로 자공의 「유상」 행보를 깎아 내린 근본 이유다.

이로 인해 후대인들은 관중의 부국강병 책략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관자」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어가 「중상」을 통한 부민부국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아가 역대 왕조 모두 중농 대신 중상을 역설한 사마천의 주장을 극도로 꺼린 까닭에 이전 왕조의 사서를 편찬할 때 「평준서」를 모방한 「식화지」만 편제하고 「화식열전」은 아예 편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가의 존재가 오랫동안 묻힌 근본 배경이다.

목할 것은 사마천이 관중의 상가 사상과 자공의 유상 행보를 높이 평가한 점이다. 「화식열전」에 「관자」를 대거 인용하고, 「중니제자열전」에 절반 가량을 자공에게 할애한 게 그렇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파악한 결과다.

“무릇 백성은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다. 천하의 백성과 더불어 이익을 향유코자 하는 자는 천하의 백성이 지지하고, 천하의 이익을 독점코자 하는 자는 천하의 백성이 제거하려 든다.

천하의 백성이 제거하려 들면 설령 잠시 성공할 지라도 반드시 패망하고 만다. 천하의 백성이 지지하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지라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 흔히 「보위를 안정시키는 관건은 천하의 백성과 더불어 이익을 향유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관중을 사상적 비조로 한 상가는 바로 인간의 「호리오해(好利惡害)」를 통찰한 까닭에 「부」 자체를 긍정 평가한 데서 출발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개개인의 이익추구 행위를 자본주의의 출발로 간주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 학파인 상가의 위대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관중을 상가의 사상적 비조, 자공을 공부하며 사업하는 유상의 효시로 특서해 놓았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볼 지라도 자공은 전세계의 시장을 무대로 일면 열심히 학습하며 일면 분주히 사업을 벌이는 21세기 글로벌 비즈니스 맨의 표상이 될 만하다.

G2 시대와 상가 사상

서구 학자들 가운데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앞날과 관련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국이 과거 일본이 걸었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다른 점이 더 많다.

첫째, 중국에선 금융과 통신, 에너지, 핵심 제조 분야를 포함해 광범위한 분야에서 외국 기업의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 심지어 자국 기업들을 배제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들 업종은 전략산업으로 간주돼 정부의 엄한 통제를 받고 있다.

국영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이들 기업 모두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전위대이자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둘째, 경공업과 소매업, 수출부문 등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역설했듯이 철저히 자유경쟁에 맡겨 두고 있다.

실제로 현재 중국에서는 서구의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애플의 스마트폰과 나이키 운동화를 비롯한 중국의 주요 수출품들 모두 해외 다국적 기업에 의해 제조되거나 그들의 주문을 받아 생산되고 있다. 폐쇄적이었던 일본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관자」와 「화식열전」 등 동양 전래의 고전에서 「인간경영」의 요체를 추출해 낸 뒤 잘 다듬어 정밀한 이론으로 주조해 낼 경우 얼마든지 21세기의 새로운 경제경영 패러다임으로 통용될 수 있다.

이는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21세기의 시각에서 볼 지라도 놀랄 수밖에 없는 뛰어난 수준의 경제경영 이론서가 나왔다

. 「관자」와 「화식열전」이 그 실례이다. 이를 얼마나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인 관자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절실한 때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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