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설비교체예산, “실적 악화되자 갑자기 삭감”... '꿰어맞추기식' 고질병, 산불 참사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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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설비교체예산, “실적 악화되자 갑자기 삭감”... '꿰어맞추기식' 고질병, 산불 참사 불렀나
  • 양현석 기자
  • 승인 2019.04.0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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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들 예산 아니었는데 갑자기 설비교체보강 투자 줄여”
예산관리 부서 책임자 대부분 사무직군... 적자 때마다 설비유지보수 예산 손대
한전의 설비교체보강 예산이 2018년 대폭 줄어든 이유가 전년까지의 집중 투자로 ‘대상 설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한전의 해명과 달리, 한전 실적이 악화되던 중간에 갑자기 삭감됐다는 정황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성산불에서 한전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은 한전의 설비 점검 모습.(녹색경제신문 DB)

한전이 지난해 실적악화가 예상되자 회계년도 중간에 급작스럽게 설비 유지보수 예산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필수적인 설비교체 예산을, 실적 보전을 위해 꿰어맞추기 식으로 운영하는 주먹구구 경영이 이번 고성산불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녹색경제신문 취재 결과 실제 한전의 유지보수 예산이 작년 3~4월경 갑자기 축소됐다는 증언과 적자 때문에 해당 예산이 축소된 정황이 여러 경로에서 나오고 있다. 즉 적자를 면하기위해 관리유지의 핵심이지만, 눈에띄지 않는 설비투자에 대한 정당한 비용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됐다는 것. 전력계 대다수는 이런 관행이 고성산불 참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전의 지난해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은 총 1조4418억원으로 2017년 1조8621억원 대비 4203억원 가량 축소됐다. 특히 오래됐거나 문제가 있는 설비를 교체하고 보강하는 목적의 예산인 설비교체보강 예산은 1조1470원으로 2017년 1조5675억원에 비해 4205억원이 축소됐다.

이에 따라 교체나 보강해야 하는 설비를 관리하지 못해 전력설비 관리 소홀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 영향이 이번 고성산불의 원인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8일 한전은 이에 대해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한전은 “적자 여부와 상관없이 안전과 직접 관련된 예산은 지속적으로 증액해 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의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은 배전설비의 성능저하에 따라 설비를 교체 보강하는 예산(투자예산)과 배전설비의 이상유무를 점검・수선하는 예산(손익예산)으로 구분해 집행하고 있다.

한전은 “설비교체보강 예산은 투자가 이행되면 그 효과가 15년에서 20년 동안 지속되므로, 과거 3개년(’15~’17년)의 집중적인 투자로 인해 2018년도 이후부터는 설비교체보강 대상설비가 줄어들게 돼 2017년 대비 2018년도 예산이 줄어든 것”이라고 해당 예산의 축소가 적자와 관계없음을 강변했다.

(자료-한전)

한전의 이 해명은 사실일까? 실제로 한전의 설비교체보강 예산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크게 증가했다. 이 시기는 한전이 큰 폭의 흑자를 보던 시기와 일치한다. 공교롭게 이 예산이 20% 이상 삭감된 2018년부터 한전의 실적은 급격히 하락됐다.

한전의 설비교체보강 예산이 하락했던 적은 과거 10년 간 또 한 번 있었다. 2012년 한전은 설비교체보강 예산 집행을 전년인 2011년보다 67억원 삭감했다, 또 이때는 심지어 점검수선 예산까지 2년 연속 감소해 전력계에서는 큰 우려를 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당시 한전은 적자 상태였다는 정황도 이번 예삭 삭감 시기와 일치한다. 한전이 적자 때마다 설비안전과 직결되는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했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한전이 설비교체보강 예산을 별도 계획을 가지고 3년간 크게 늘려 집행한 후 2018년부터 줄였다는 해명과 배치되는 증언은 전기공사업계에서 나왔다.

8일 한전의 협력업체인 전기공사업체 관계자는 “2018년 연초에는 사업소마다 전년과 다름없이 사업계획을 잡고 설계를 진행해, 업체들도 이에 맞춰 발주를 준비했으나, 4월경 갑자기 사업소마다 보수 예산을 30%씩 반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사업체들은 1년 단위로 매출 계획을 세워 인력 및 장비를 갖추는데 갑자기 예산이 줄어들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한전의 한 사업소 직원은 “사업소는 전년 집행했던 예산을 준용해 연초 사업을 진행하는데, 지난해 상반기 중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예산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나왔던 예산을 반납한 것은 아니고, 추가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예산이 안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한전이 3년간 집중적인 설비교체 및 보강을 통해 대상 설비가 줄어들었다면 ‘18년 예산을 책정할 때부터 설비교체보강 예산이 삭감된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터이고, 이를 사업소나 협력업체들이 모를 리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사업소 단위까지 예산 내역의 공유가 잘 안됐을 수는 있지만, ‘18년부터 설비교체보강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예정됐던 일”이라고 부인했다.

한편, 적자 때마다 한전의 유지보수 예산이 삭감되는 현상에 대해 한 전력계 전문가는 뿌리 깊은 ‘사무직군과 기술직군의 소통 부재’를 원인으로 들기고 한다.

이 전문가는 “현장의 설비를 관리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기술(송/변/배전)직군인데 반해 예산을 책정하는 부서의 실무자들은 거의 사무직군이다 보니, 예산 책정시 설비 관리의 중요성이 반영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꼬집고, “설비 관리 예산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진 ‘티’가 나지 않고, 사고가 나도 기술직군 실무자가 관리소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아 기술직군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져 있지만, 직군 ‘파워’에 밀려 예산 책정에서 후순위로 밀린다”고 말했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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