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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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eets DESIGN] 공짜 점심은 없다.
  • 박진아 IT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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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기본소득제 실험에서 본 일자리의 의미

지난 4월 말, 핀란드는 2017년부터 시험 시행한 기본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 줄여서 UBI)를 2019년 1월을 끝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곧 전세계 언론은 기본소득제 실험은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 사회보장보험공단(Kela)이 2015년 10월부터 예비연구를 거쳐 작년 2017년 1월부터 착수한 기본소득제 프로젝트는 시작 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핀란드 국민중 25-58세 나이대의 실업자 2천 명을 무작위로 선발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매달 기초생활비 560 유로(우리돈 약 70 만원)를 정부에서 나눠주고 효과를 관찰해 보는 사회 실험이다.

1990년대 말엽 전세계인에게 이동전화 선풍을 일으켰던 3G 노키아 폰  3310 모델. 그후 노키아는 삼성, 애플로 이어지는 모바일폰 디자인 혁신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현재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제품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Image courtesy: Nokia.

1인당 개인소득과 물가가 높은 만큼 납세율도 살인적인 북유럽권, 특히 핀란드는 이웃 스칸디나비아국에 비해서 실업률이 높다. 1990년대 말부터 글로벌 기업 노키아 사의 부진 이후 이 회사에 의존하던 핀란드 사회보장체제와 노동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다. 미래 그림은 더 암울하다. 산업자동화가 더 가속화될 향후 15-20년 사이 실업율은 25-35%까지 늘어나고 국민들의 국가안전보호망 의존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 전망된다. 해서 2015년 대선 결과  들어선 현 중도우파 정부는 소득세, 연금보험, 건강보험, 실업수당, 양육수당 등 사회보장 망 아래에 관리되는 사회보장제도의 단순화와 운영비 절감 개혁에 팔걷고 나섰다.

그런 전망 속에서, 국민들이 정부가 주는 일정 금액의 현금수당으로 매사 관료적 절차나 서류업무를 거치지 않고도 자율적으로 예산을 짜서 지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기본소득제 실험의 의도다. 그로해서 실업자나 극빈자는 절박한 생존불안을 다소나마 덜고 늘어난 여가시간에 재취업 준비나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자기계발과 사회공헌을 한다면 덤이겠다. 그러나 지난 1년 남짓 시도된 핀란드식 기본소득제가 어떤 경제적・사회적 성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이 중단 선언을 하게 되었다. Kela는 오는 2019년말-2020년 경에 보고서를 출간할 것이라 한다.

포스트-노키아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핀란드  국민들은  노키아 이동전화를 국민통신기기로 고집한다. 노키아폰과 전용 앱으로 수퍼마켓 식료품 장보기를 하는 고객의 모습. Image courtesy: VTT Technical Research Centre of Finland LTD.

흥미로운 점은, 기본소득제 개념은 본래 좌파성향 철학자들이 상상했던 유토피아 사상에서 비롯되었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는 서구의 중도보수 정치가들이 포용한 경제정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968-71년 사이 몇몇 주에서 기본소득제 실험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공짜돈이 국민들의 노동윤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1976년 노벨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사회보장제도가 심히 비대해지고 관료화되는 환경 속에서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기본소득제를 제안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에 정당성을 제공해줬다.

앵그리버즈(Angry Birds) 온라인 게임을 창조한 로비오 스타트업 오피스 실내 광경. 핀란드판 IT/테크 스타트업을 거론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Photo: Janne Toivoniemi. Image. Courtesy: Rovio.

마거릿 대처 前 영국 총리는 ‘사회주의의 문제는 남의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만 좋은 것’이라고 꼬집었었다. <이코노미스트> 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사회보장보험공단에서 요청한 추가 예산(8천 5백 만 달러)을 핀란드 정부가 승인거부한 것이 기본소득제를 폐지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이었다. 기본소득제가 만인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내세운 정책일지언정 성과와 생산성 있는 경제원칙 - 일자리, 고용안정, 소득, 소비, 경제인구의 납세로 이어지는 순환 - 이 뒷바침되지 않고서는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부는 공짜현금 나눠주기 대신 기본소득세 대신 보편신용제(universal credit, 줄여서 UC)를 실험할 계획이다. 또 4차 산업과 실업에 대응하기 위하여 시장성과 성장잠재력 있는 사업자와 사업체를 지원하고 덴마크식 ‘플렉시큐리티’의 유연한 노동고용 모형을 응용할 것이라 한다.

핀란드 스타트업의 수익은 이 나라 전체 경제 매출의 50%를 넘고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다. 현재 핀란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테크 디자인 업체로 떠오르고 있는 폴라르(Polar) 피트니스 스포츠/라이프스타일 GPS 웨어러블 (사진 속 제품 이미지는 CYCLING M600 모델과 스마트폰 연동된 앱) 은 생산품의 95%를 전세계로 수출한다. Image courtesy: POLAR.

핀란드는 알바 알토, 카이 프랑크, 마이야 이솔라 등의 걸출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배출한 20세기 근대기 디자인 강국이었다. 남한 인구의 10분의 1 정도의 작은 인구수(550만)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민정신, 근면한 노동윤리,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 구조를 지닌 핀란드는 지난 20세기 동안 정부가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서 유토피아 복지사회 건설을 실험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노키아를 선두로 1990년대에 모바일 전화 문화를 선도했지만 2000년 닷컴버블, 디자인 혁신 실패,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수합병을 거듭하는 동안 노키아 전성기에 누렸던 옛 영광의 그늘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핀란드는 리눅스와 앵그리버드를 탄생시킨 적 있는 IT/테크 잠재력을 활동하여, 미래 경제의 돌파구를 IT 스타트업 문화와 창업 생태계에 기반한 테크산업에서 찾고 있다. 과거 노키아 같은 공룡급 대기업 주도식을 버리고 대신 여러 소규모 기술 스타트업이 특화된 제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수출하는 ‘하나의 골리앗에서 여러 다비드’ 전략이 그것이다. 특히 주력 테크 분야는 컴퓨터 생리에 친숙하고 사업가 정신이 활발한 젊은세대가 주도된 디지털 게임 소프트웨어, 보건의료, 환경, 비즈니스 서비스 섹터인데, 이미 테크와 디자인 산업 분야가 이 나라 수출수익의 50%를 차지한다.

핀란드 VTT 기술연구소가 개발한 빛 조절식 LED 가로등. 일년 내내 일조량이 적고 백야가 많은 핀란드에 적합한 인텔리전트 가로등 시스템이다. 하루 밤낮 빛 변화에 따라 빛 강도를 조절하여 기존 가로등 보다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공공장소 환경을 분위기있게 조성해 준다. Image courtesy: VTT.

기본소득제는 유독 정치가와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 솔깃하고 매력적인 주제다. 2016년 초여름, 스위스 정부는 직업과 수입이 있든 없든 조건 없이 자국의 성인 국민에게 월 3백 만 원 가량의 최저생계비를 지급한다고 기약했던 스위스판 기본소득제 안을 국민투표로 부쳤다가 국민 75%가 반대해 무산됐었다. 과학자 故 스티븐 호킹과 미국 민주당 정치인 버니 샌더스도 기본소득제 옹호자다. 실리콘 밸리 테크계 기본소득제 복음자들 중에서, 예컨대 머스크는 인공지능, 오토메이션, 무인화로 인해서 수많은 일자리와 가처분 소득이 사라질 미래의 노동시장 대비책은 기본소득제 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제 실험은 핀란드에서 멈추지 않는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7년부터 일부 도시에서 월 970 유로 상당의 현금을 기초생활비로 지급하는 노 왓 웍스(Know What Works)라는 사회보장 프로젝트를 계층별로 분류해 실험중이다. 이탈리아 리보르노 시에서는 극빈가정 100가구에 한 달에 500 유로를 지급하는 정책을 실험중이고, 캐나다와 스코틀랜드 일부 도시에서는 수혜지원자 확보를 마감하고 올내년 안에 기본소득제 파일럿에 돌입할 채비중이다. 산업자동화로 실업자가 급증하는 중국에서는 작년부터 국영기업의 이익으로 실직자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안이 거론된 적 있고, 인도에서도 빈민자 지원 차원에서 소액의 기초소득 분배가 쟁점화되고 있다.

일은 생계를 위해 해야하는 고역일 수도 있지만 생에 목적의식을 부여하고 직업공동체 내 동료들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사회적 윤활제다. 전세계에서 너도나도 실시되는 기본소득제 실험은 단순히 생계와 생존의 문제를 떠나 일이 지니는 인간적・철학적 의미에 해결의 단서를 던져 줄 수라도 있다면 무용의 프로젝트만으로 끝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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