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국내 방위산업의 굴레, 죄수의 딜레마...최기일 교수
상태바
[전문가 칼럼] 국내 방위산업의 굴레, 죄수의 딜레마...최기일 교수
  • 김의철 기자
  • 승인 2021.01.19 1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학과장

1970년 1월 19일은 우리나라 방위산업에 대한 구상이 최초로 공식화된 날이다. 국내 방위산업은 50년전 이날 불모지와 같았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중화학공업 발전과 병행해 정부의 강력한 육성 의지와 정책이 뒷받침되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올 수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반세기 만에 세계 군사력 순위 6위(GFP기준)에 이름을 올리면서 기적과 같은 발전을 이룩해냈다. 하지만, 전세계 무기거래 시장에서 K-방산이 명품무기로 명성을 쌓아온 반면, 최근까지도 국내에서는 이른바 방위산업 대참사로도 불리는 ‘방산비리’로 인해 흑역사로 기록될 정도의 홍역을 앓았다.

방위산업(Defense industry)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방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다. 국내 방산업계를 보호, 육성, 발전시켜야 자주국방이 가능하며,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방은 국가 방위산업의 최종 목표가 해외에서 도입되는 무기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국산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방위사업(Defense Acquisition)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수반되어 국방에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를 획득·조달하는 방법이나 절차를 뜻하고, 이는 고도의 전문성과 복잡한 사업절차로 이루어진다. 또한,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며, 기술 진부화의 진전 속도에 따라 장기간 노력과 자원의 투자가 요구된다.

▲ 방위산업 고유의 특수성과 구조적 취약점에서 비리 발생

방위사업 비리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거거래 시장의 특성상 관련 정보가 극도로 폐쇄적이고, 또한 오랜 기간 여러 단계에 걸쳐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이 특정 소수에 의해 이뤄지는 구조에 기인한다. 

게다가, 방위산업 생태계 자체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자율과 경쟁 기반이 타 산업에 비해 성숙되지 않아 자생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기형적인 시장 왜곡현상을 유발하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국내 방위산업이 규모의 경제 또는 범위의 경제 측면에서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진지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해 11월, 방위사업청은 약 38억원 규모의 ‘다목적 무인차량 도입 사업’을 추진하면서 신속시범획득 사업방식으로 적용된 입찰에서 최종 사업자를 ‘가위바위보’로 결정한 뒤 세간의 논란을 샀다. 당시에 한화디펜스와 현대로템이 ‘0원’으로 입찰서를 제출해 동가입찰이 발생함에 따라 빚어진 일이다. 이에 대해 현행 법령과 제도상 문제가 없다는 방위사업청 해명은 겉으론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국가계약법상 정부입찰에서 0원 입찰의 경우도 유효한 입찰로 보며, 동가입찰 시에는 전산 추첨방식의 가위바위보로 낙찰자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에서도 일반적 상식이라 할 정도로 동가입찰 시에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일반 민수산업과 군 시설공사에 있어서도 간혹 0원 동가입찰이 발생할 경우에는 가위바위보로 사업자를 선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과 군 시설공사의 사례에서는 대부분 시장질서 교란 및 불공정거래행위인 부당 입찰담합 등의 문제로 불거졌다.

해외에서도 0원 동가입찰의 경우에는 유독 각국의 무기체계 도입 사업에서만큼은 유례가 없으며, 우리나라 방위사업청에서도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는 사업에 있어서 0원 동가입찰은 그 전례가 없다.

그리고 해당사업은 방위사업청에서 민간의 새로운 기술을 무기체계에 신속하게 접목하기 위해 도입된 기존에는 없었던 신속시범획득 사업방식에서 발생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수천억원 규모의 무인화 지상무기체계 전력화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 단순히 우연의 일치나 드문 사례로만 치부해버릴 사안이 결코 아니다.

▲죄수의 딜레마 탈피해 방위산업의 낡은 굴레 혁신해야

국내 방위산업은 수요와 공급의 쌍방독과점적 형태의 시장구조를 보인다. 즉, 쌍방독과점은 공급독과점 및 수요독과점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시장 최적수준인 완전경쟁에 비해 적은 생산량이 거래되므로 산업적·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에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이러한 쌍방독과점 특성은 방위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를 경제학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설명할 수 있는데, 두 주체가 협력하면 모두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서로 협력하지 않아 결국에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게임이론이다.

방위산업에 죄수의 딜레마 이론을 대입해보면, 두국가 간 또는 방위산업을 영위하는 기업 간에 상호 비협조적인 과도한 군비경쟁 또는 수주 과당경쟁을 하게 되면, 그 결과로 과잉 생산설비를 갖게 되어 모두가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방산업체들이 정부의 새로운 무기체계 도입 사업에서 0원 입찰의 사례처럼 종국에는 국내 방위산업이 죄수의 딜레마라는 굴레에 갇혀 정부도 기업도 손해를 볼 수 밖에 없게 될 우려가 있다.

이번 가위바위보 입찰 사례는 새로운 사업방식으로 도입된 제도를 무시한 채 기존 계약·입찰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다보니 초래된 비상식적인 사건이다. 마치 19세기에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마부들이 실직하니 자동차는 말보다 느리게 다니도록 시행한 일명 ‘붉은 깃발법’ 사례처럼 ‘한국판 적기조례(赤旗條例)’라고 불릴 정도로 사뭇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방위산업은 정부 규제환경에 따른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분류되는데, 이러한 규제산업에서 비리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경제학에서는 이를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의 실패’로 정의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존 고정관념과 낡은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혁신은 누구나 하고 싶지만, 스스로 불합리한 관행과 체제에 과감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실행이 요구된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기준이나 표준을 뜻하는 뉴노멀(New Normal)로서 안보와 경제, 기술이 융합된 뉴디펜스(New Defense) 시대에 걸맞은 방위산업 혁신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학과장.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학과장. 

글쓴이 최기일(40) 상지대 교수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영입인재 11호'로 잘 알려졌다. 여당의 국방안보 싱크탱크인 국방안보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대한민국 방위사업학 박사 1호다. 국방대, 건국대, 미드웨스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상지대 군사학과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국방부장관 표창 수상을 비롯해 다수의 수상실적이 있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50회가 넘는 헌혈로 대한적십자사로 부터 헌혈유공자 금장과 총재표창을 수상했다. 

김의철 기자  real@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