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기업시민 시대'로의 진입... 강원 산불 현장서 '빛난' 기업들의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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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기업시민 시대'로의 진입... 강원 산불 현장서 '빛난' 기업들의 시민의식
  • 양도웅 기자
  • 승인 2019.05.09 0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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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강원 산불 구호 현장서 정부와 공적 역할 나눠 가져.... 정부 손길 안 닿는 곳엔 기업의 손길이
전체 모인 구호 성금 가운데 68%가 기업 성금... 성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지원 

녹색경제신문이 5월로 창간 9주년을 맞았습니다. '지속가능 경제를 위한' 녹색경제신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5월 한 달간 창간 기획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지난달 4일, 강원 동해안 지역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평소보다 한층 더 바빠진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기업이었다. 

기업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려, 발 빠르게 정부의 진화·복구 작업을 지원 사격했다. 

정부가 산불 진화와 인명구조, 국가 시설 점검 등에 집중하고 기업은 대민지원에 총력을 다했다. 

삼성은 산불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인 5일, 성금 20억원과 구호키트 등을 보내고 임직원 봉사단과 의료진을 파견했다. 전자제품 무상 점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재민 대피소에 전자제품도 제공했다.  

LG도 같은 날, 성금 10억원을 보내고 계열사별로 맞춤형 지원에 나섰다. LG생활건강은 생필품을 보내고, LG전자는 이동서비스센터를, LG유플러스는 이동기지국을 설치해 이재민의 불편함을 해소시켰다. 

SK도 같은 날 성금 10억원을 보내고 계열사별로 맞춤형 지원에 동참했다. SK텔레콤은 인력 300여명을 투입해 피해 복구를 돕고 복구현장용 LTE무전기를 지원했다. 이재민들이 머무는 대피소에 전력케이블 등을 지원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피해를 낸 4월 강원 산불 피해 복구 현장서 기업들의 지원이 빛났다. 위 사진은 작년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쪽방을 찾아 거주하는 어르신들에게 전달할 생필품 세트를 나르는 모습. <출처=삼성 뉴스룸 홈페이지>

최근 그룹 노조가 1000만원의 성금을 보낸 롯데도 같은 날 성금 10억원을 보내고, 대피소용 칸막이 텐트와 구호키트 등을 함께 보냈다. 

현대자동차는 4월7일 10억원의 성금과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현장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도시형 세탁차량' 3대를 투입해 현장의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GS는 4월8일 성금 5억원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산불이 발발하자마자 행정안전부와 희망브리지(전국재해구호협회)에 생필품 1000인분을 긴급 지원했다. 

포스코는 4월9일 "기업시민 역할 하겠다"며 성금 10억원을 보냈고, 한화는 4월10일 성금 5억원을 보내고 600명 규모의 임직원 봉사단을 파견했다. 이재민에게 필요한 활동복과 운동화 등도 보냈다. 

현대자동차가 이번 강원 산불 이재민들에게 지원한 세탁차. <출처=희망브리지 홈페이지>

CJ는 4월10일 성금 5억원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산불 발발 이후 가장 빨리 간편식과 간식류 등의 구호물품을 보낸 기업 중 하나였다.

정부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곳엔 기업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기업의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 전체 성금액 가운데 기업 성금 비중 68%... 산불 발발 후 정부와 함께 긴급 구호 지원 나서기도

강원 산불 구호 성금이 가장 많이 모인 희망브리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4월5일부터 30일까지 1000만원 이상 성금은 총 570건 이뤄졌다. 이 가운데 기업 성금 247건으로 전체서 43%를 차지했다. 

전체 성금액 266억4700여만원 가운데 기업 성금은 182억566여만원으로, 전체서 68%를 차지했다. 

희망브리지 관계자는 "이번 강원 산불 구호 과정서 기업들의 성금과 지원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강원 산불 구호 성금 1000만원 이상 기탁 건수 및 금액. 전체 기탁 건수 570건 가운데 기업이 247건, 전체 금액 266억여원 가운데 기업이 182억여원을 차지했다. <제공=희망브리지(전국재해구호협회)>

또한, 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4월18일 오후 3시 기준으로 총 92억여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 가운데 59억1000만원이 기업 성금이었다. 전체서 64%를 차지했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그 이후, 현재 125억여원가량이 강원 산불 구호 성금으로 모였다"며 "정확하게 통계를 내지는 못했지만 기업 성금이 적어도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제공=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

◆ '기업시민' 시대로의 이행...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엔 기업 손길이 닿아

일각에서는 이처럼 적극적인 기업의 산불 구호 행동이 그간 정부의 역할로만 여겨진 '공적 역할'을 기업이 기꺼이 나눠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가리켜 '기업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키도 한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가 사회 문제를 전부 책임질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국가의 공적 역할을 의미 있게 분담할 수 있는 곳이 기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기업이 경제적 역할에만 골몰하는 것은 자본주의 부작용이 심각한 현 사회에 맞지 않는다"며 "기업이 시민으로서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게 기업시민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가 이번 강원 산불 이재민들에게 제공한 칸막이 텐트. <출처=희망브리지 홈페이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연구하는 코스리(KOSRI)의 한지희 선임연구원도 "기업시민은 기업이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최대화하는 것을 뜻한다"며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국민(소비자)과 지역사회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도 CSR·기업시민 관점의 활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서 매년 한 번씩 열리는 기업시민 콘퍼런스에서도 기업의 재난재해 대응을 중요한 기업시민 활동으로 강조한다"며 "이번 강원 산불서 국내 기업들도 기업시민으로서의 활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CSR'과 '기업시민' 등, 기업 본연의 역할인 경제적 가치 추구 외에 다른 공적 가치를 추구하라는 담론에 꼭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강원 산불 구호 성금의 68%가 기업발 성금이었다. 하지만 개인 성금이 눈에 띄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달 11일 희망브리지엔 용돈과 세뱃돈을 가득 담은 초록색 돼지저금통(사진)과 손편지가 전달되기도 했다. <출처=희망브리지 홈페이지>

몇몇 시민단체들과 재계관계자는 각자 다른 입장에서 기업의 공적 행위를 다른 목적에 입각한 행동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당부키도 한다. 

이에 대해 한지희 선임연구원은 "이번 강원 화재 복구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 CSR 담당자들도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안다"며 "CSR을 단순 이미지 제고 차원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상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재해·재난 대응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임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시민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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