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과 오뚜기를 7년간 괴롭혀온 ‘가격 담합’의 오해... 그 시작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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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과 오뚜기를 7년간 괴롭혀온 ‘가격 담합’의 오해... 그 시작점은?
  • 양현석 기자
  • 승인 2019.04.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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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잘못된 결정이 식품업체에 강력한 ‘낙인효과’ 일으켜... 글로벌 소송까지 여파
농심과 오뚜기 등 라면 업체들이 23일 미국에서 가격 담합 관련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판단에서 시작된 7년간의 법정 싸움 동안 라면 기업들은 ‘상처뿐인 승리’만 가져가게 됐다. 사진은 2012년 라면 4사에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공정위 보도자료.

미국 연방법원이 농심과 오뚜기의 가격 담합 혐의와 관련해 “담합은 없었다”고 판결한 사항이 원고측의 항소 포기로, 23일 피고측 승소로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농심과 오뚜기 등 라면 선도업체들은 서로 담합해 가격을 올리는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미국 소비자들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또 미국 주류 소비자층을 공략 중인 국내 라면업체들의 마케팅에서 큰 위험 요소가 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소송의 빌미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비롯됐다.

2012년 공정위는 농심과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삼양라면 등 4개 메이저 라면 제조업체들이 약 10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각사 제품 가격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고 판단해 13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공정위 팀은 그 해 이달의 ‘공정인’으로 선정되는 등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당연히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라면 가격을 가지고 기업들이 장난을 쳤다며 일부에서는 불매운동까지 있었다. 서민의 허기를 달래줬던 라면 기업들이 “서민의 한 끼를 이용해 제 배를 불리는 악덕기업”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5년 대법원은 가격 담합 사실이 없다고 최종적으로 판결했다. 공정위도 이를 받아들여 과징금 등의 제재 명령을 철회했다. 그러나 3년의 세월 동안 라면업체들은 공정위로부터 비롯된 악덕기업이라는 누명 속에서 시름해야 했다.

공정위의 라면 가격 담합 판단은 지구 반대편 미국으로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인이 많이 거주해 국내 라면업체들이 진출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 대형마트는 소비자들과 함께 2013년 7월, 농심과 오뚜기 본사와 미국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행위금지명령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액은 1500억원에 달했고, 농심과 오뚜기가 패소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돼 이 3배인 4500억원을 배상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졌다. 이때부터 미국 특유의 지난한 법정 싸움이 올해까지 지속됐다.

올해 1월 미 연방법원은 담합이 없었다며, 농심과 오뚜기의 손을 들어줬고, 3월에는 담당 판사의 소송종결서 서명에 이어, 4월 23일 원고가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소송이 종결됐다.

이 소송은 미국 현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에서 메인스트림 소비자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는 농심의 경우 이번 소송의 결과에 대해 해외사업의 걸림돌 하나가 해결됐다는 의미와 한인 사회에서의 신뢰 회복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류의 인기는 국내 식품업체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제품들은 국내 뿐 아니라 북미 및 중남미에서도 히트를 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다른 영역의 인기가 국내 기업에도 순기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번 소송의 경우처럼 공정위 등 우리 정부 부처의 잘못된 판단은 그 기업을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라면 업체들의 가격 담합만 기억을 하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신뢰도와 행정력을 가진 공권력의 판단은 크고 오래가는 ‘낙인효과’를 가져 온다. 공정위의 판단에서 비롯된 라면업계의 7년간의 싸움은 결국 라면업체들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그 동안 이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정부는 보상해 주지 않았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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