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금융’ 실무 모범규준 이달 말 나온다…농협 2210억 약정, 은행권 확산 주목
금감원, 심사·사후관리 실무기준 최종안 마련…파일럿 상품 출시 지원 농협금융 9월 말 약정 2210억원…6월 말 122억원서 확대 KB·신한도 정부 가이드라인 맞춰 심사체계 정비 5개 탄소 다배출 업종 로드맵 연계…2027년 이자·보증 재정지원 추진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전환금융의 실무 모범규준 최종안이 이달 말 마련된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금융회사의 여신 심사와 사후관리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세부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NH농협금융지주(농협금융)가 실제 여신 실행에 나선 데 이어 KB·신한 등 주요 금융그룹도 정부 기준에 맞춰 심사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정부가 업종별 탄소감축 로드맵 연계와 2027년 이자·보증 지원까지 예고하면서,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던 전환금융이 실제 자금 공급 확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1일 녹색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위원회는 기후금융 활성화 태스크포스(TF) 발표 자료를 통해 금융감독원이 금융권 의견을 수렴해 이달 말까지 전환금융 실무 모범규준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 3월부터 금융권과 실무 TF를 운영해 왔으며, 8월 말에는 정부 가이드라인의 조항별 세부 실무기준을 보강한 초안을 제시했다.
전환금융은 이미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된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는 녹색금융과 구별된다. 철강·화학·시멘트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에서 설비 효율화와 연료 전환, 생산공정 개선 등을 통해 배출량을 줄이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지난 2월 발표된 한국형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기반한 전환금융과 업종별 탄소감축 이행 로드맵에 기반한 전환금융을 함께 다룬다. 실무 모범규준은 이 원칙을 실제 금융 업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심사 기준과 절차, 사후관리 방법 등을 구체화한다.
농협금융 약정 2210억원…KB·신한도 심사체계 정비
농협금융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전환금융 약정액은 2210억원이다. 6월 말 122억원에서 약 18배 늘었다.
농협금융은 지난 6월 초기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후보 기업 30곳 이상을 발굴·검토하고, 농업·농식품·첨단산업 분야 기업 3곳에 총 122억원의 전환여신을 실행했다. 기업의 전환전략이 적정하고 실행 가능한지, 실제 환경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등을 심사에 반영했다. 전환금융 판단 기준부터 심사 절차와 사후관리 방안까지 실제 여신 업무에 적용한 것이다.
KB금융은 전환금융 판단 프로세스와 대출·투자 운영기준을 마련했다. 먼저 KB국민은행 기업금융 부문에 시범 적용한 뒤 그룹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5월 국내 금융사 가운데 처음으로 그룹 차원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신한은행은 정부 가이드라인과 모범규준에 맞춰 세부 기준과 절차를 손보고 있으며, 기업별 탄소감축 목표와 전환계획, 자금 수요도 파악하고 있다. 모범규준 최종안이 나오면 금융회사별 심사 기준과 지원 대상도 한층 구체화될 전망이다.
철강 등 5개 업종 로드맵 연계…2027년 이자·보증 지원
금융당국은 실무 모범규준을 토대로 금융회사의 전환금융 파일럿 상품 출시를 지원할 방침이다. 산업통상부가 마련 중인 업종별 탄소감축 로드맵을 기업 심사에 활용하는 방안도 연말까지 검토·협의한다. 로드맵 대상은 철강 등 탄소 다배출 업종 5개다.
재정 지원도 추진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9월 TF 회의에서 K-택소노미와 기업의 전환전략에 부합하는 녹색·전환투자를 대상으로 채권·대출 이자 비용과 보증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2027년 사업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대규모 녹색 프로젝트의 채권 이차보전을 확대하고,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 따라 녹색·전환대출의 우대금리를 차등 지원하는 내용이다.
기업의 전환계획 수립과 금융회사의 심사를 뒷받침할 정보 인프라도 마련됐다. 한국신용정보원은 지난 5월 시범운영을 거쳐 8월 기후금융 웹포털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포털은 지원 대상 기업 발굴부터 적합성 판단, 사후관리까지 기후금융 취급 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790조원 기후금융 공급계획…배출권 비용도 변수
전환금융은 녹색금융과 함께 정부 기후금융 확대 정책의 두 축이다. 금융위는 지난 2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5개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2035년까지 10년간 790조원의 기후금융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7월까지 42조원이 공급돼 연간 목표액 56조7000억원의 74.1%를 채웠다.
자금을 받아갈 기업 쪽의 전환투자 압박도 커지고 있다. 올해 시작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기업이 떠안을 배출권 구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이 기간 기업의 배출권 구매 비용을 약 26조9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발전 부문을 제외하면 철강이 1조3756억원으로 가장 많고 반도체·정유가 각 9147억원, 석유화학 4352억원, 시멘트 2156억원 순이다.
배출권 구매 부담을 줄이려면 결국 설비 전환에 돈을 써야 하는 만큼, 정책금융의 역할이 다시 거론된다. 한경협도 다배출 업종의 전환투자를 위해 정책금융 중심의 민관협력을 확대하고, 정부가 업종별 로드맵을 마련해 기업의 전환계획 수립을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환금융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의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기업의 전환계획과 실제 감축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금융회사도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