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소비문화 이슈] 현대인들의 ‚패스트테크‘ 중독, 신중히 구매하고 분리수거・재활용하자
-WEEE 포럼 2026년 테마—‚패스트테크‘ 버리지 말고 분리수거하세요!’ -패스트테크 용품 상당수, 소비자 가정 한구석에 잠자고 있어
[녹색경제신문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지난 10월 14일은 해마다 기념하는 ‚세계 E-폐기물의 날(International E-Waste Day)이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한 해 배출된 전자 폐기물(E-waste)은 약 620억 kg에 이른다. 폐기물이 환경 오염에 끼치는 악영향에 경종을 울리고, 다 쓰고 필요 없어진 전자제품을 재활용해 자원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로 2018년 WEEE 포럼(WEEE Forum)이 제정한 후 올해로 9회째 기념 행사를 가졌다.
올해 2026년 판 ‚세계 E-폐기물의 날’의 주제는 ‚패스트 테크(Fast Tech)‘다. 빨리 변하는 유행에 맞춰 빨리 사서 쓰고 빨리 버리는 저렴한 ‚패스트 패션’처럼, 패스트 테크란 가격이 저렴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전자제품을 뜻한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의 전원을 유지해 주는 충전기, USB 어댑터, LED 조명등에서 이어폰, 전자담배, 손선풍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현대인들이 없이 살기 어려운 생활 필수 전자 용품과 기기가 패스트 테크로 분류된다.
패스트 패션 의류와 마찬가지로, 패스트 테크 용품은 비교적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크기가 작아 구매하기 쉽고, 잊혀지거나 분실돼도 다시 사기 부담없는, 어찌보면 준(準) 일회용 전자제품이다. 무심코 반복 구매된 뒤 방치되거나 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덩치가 크고 단가가 비싸 책임감 있게 이용하고 고장나면 수리해 쓰는 구매-폐기 생명 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대형 가전제품과 대조적이다.
WEEE 포럼은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 행사와 성탄절 같은 대규모 쇼핑 시즌이 다가오면서, 온라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한 패스트 테크 구매가 또 한 번 급증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럼에도 패스트 테크 쓰레기 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은 낮은 편이다. WEEE 포럼이 의뢰하고 벨가르드 과학컨설팅(Bellegarde Scientific Consulting)이 수행한 유럽 성인 소비자(12개 국가 1만 245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7%는 패스트 테크 용품을 최소 한 점 이상 소유하고 있으며, 최소 44%는 5점 넘게 소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78%는 지난 1년 이내에 구매했다고 응답해, 구매 주기가 비교적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스트 테크는 일상 속 필수품이 됐다. 연령별로는 19~29세 젊은층의 93%가 지난 1년 사이 패스트 테크 용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고, 구매장 가운데 80% 가까이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패스트 테크 용품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에 착안해 패스트 테크 업계는 가격이 싸고 수명이 짧다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기대어 반복 재구매를 유도한다. 설문 응답자의 55%는 구매 이유로 부담없는 가격을 가장 많이 꼽았다.
문제는 패스트 테크의 저렴한 가격이 E-폐기물 급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58%는 6개월 이하로 쓰고 그만둔 제품이 있다고 했고, 39%는 구매 후 한 번도 쓰지 않았거나 한 번 쓰고 1개월 이내에 버린 제품도 있다고 답했다. 59%는 제품이 고장나면 비슷한 저가 제품을 다시 구매하겠다고 응답했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매력은 비교적 짧은 제품 수명 즉, 계획된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손쉽게 상쇄시키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내구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구매 결정에서는 부담 없는 가격과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패스트 테크가 환경적에 해롭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21%에 불과했고, 16%는 환경에 더 해롭다고 응답했다.
폐기 방식도 문제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23%는 일반 쓰레기통에, 21%는 플라스틱 재활용 분리통에 버린다고 응답했다. 가장 흔한 대응은 집에 두는 것으로, 29%는 쓰지 않거나 못 쓰게 된 제품을 버리지 않고 집 한구석에 보관한다고 해둔다고 답했는데, 그 중 21%는 환경 보호를 위해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형 패스트 테크 용품을 어떻게 버리고 재활용해야 하는지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방증이다.
WEEE 포럼은 여기에 더해, EU 국가별 생산자책임제도에 등록하지 않는 업체가 온라인 통로를 싼 전자제품을 파는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EU의 포괄적생산자책임제도(EPR)에 따라 유럽 내 정식 유통업자는 판매한 제품이 생명 주기를 다하면 폐전자제품을 회수할 의무를 진다. 이 규정을 어기면 사업 금지 조치 및 심각한 영업 제한에 처한다. 특정 국가에서 전자제품을 팔아 수익을 얻은 기업은 해당 국가의 E-폐기물 처리・관리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소형 패스트 테크 제품 속에 크든 작든 전자 부품과 장비가 장착돼 있다는 것을 안다. 통상 패스트 테크 제품에는 전자 회로기판과 플라스틱・금속 부품이 내장돼있으며 폐기 후 E-폐기물로 분류・처리되면 재활용이 가능하다.
E-폐기물 재활용률 극대화하려면 소비자가 판매업자마다 회수・재활용 정책을 검색하게 하기 보다, 포괄적생산자책임제를 성실히 준수하는 판매업자만이 패스트 테크 유통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편이 낫다고 WEEE는 본다. 판매만 하고 폐전자제품 수거・재활용 책임을 회피하는 소매업자는 애초에 미리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9회 국제 E-폐기물의 날을 맞아 WEEE는 소비자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다. 1) 패스트 테크 용품을 사기 전에 꼭 필요한 물건인지 심사숙고 할 것, 2) 신제품 대신 중고품 구매를 고려할 것, 그리고 3) 수명을 다 한 제품의 기부나 재활용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둘 것 등이다.
WEEE 포럼(WEEE(Waste Electrical and Electronic Equipment) Forum)은 2002년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유럽 6개 생산자책임조직(PRO)이 모여 결성됐다. 전자제품 쓰레기 수집, 재사용 및 재활용 등에 관한 협력 방안을 추진하는 비영리 국제 협회로, 포괄적생산자책임제도(EPR), 순환경제 실무, E-폐기물 관련 법안 제정과 관련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 E-폐기물의 날’은 2018년 제정됐으며, WEEE 포럼은 오늘날 전 세계 50여 생산자책임조직이 활동하는 국제 협회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