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리더스] 이찬우 농협금융 회장, 은행·증권 묶어 탄소금융 키운다…전환금융 석 달 새 18배
은행 대출·증권 배출권 위탁매매 결합 '기후패키지 금융'...기업 전환비용 경감 전환금융 9월 말 2210억원...6월 말 122억원서 시멘트 등으로 확대 ESG금융 76조1000억원...2030년 목표 120조원의 63.4% 비상장사지만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 대상 수준'으로 자발 추진 은행 농업지원사업비 4387억원...금융 수익을 농촌으로 환원 산업안전 우수기업 우대대출 출시...최대 2.10%p 금리혜택
재계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ESG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제 ESG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ESG는 환경적 건전성(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바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경영 전략이다. ESG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에 <녹색경제신문>은 ESG를 이끄는 사람들을 연중 기획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註)>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이찬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농업·농촌 상생을 기반으로 한 ESG 경영을 기업의 저탄소 전환과 탄소금융으로 넓히고 있다.
전환금융 지원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약정액 기준 2210억원으로, 6월 말 122억원에서 석 달 만에 18배로 불었다. 농업인 탄소배출권은 3년간 1만4918톤을 사들였다. 농협은행의 여신과 NH투자증권의 배출권 거래를 묶어 기업의 전환투자를 돕고, 농가의 감축 실적은 추가 소득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회장 체제의 특징은 ESG를 사회공헌이나 공시 대응에 한정하지 않고 금융업의 사업화 과제로 다룬다는 점이다. 기업의 저탄소 설비투자에는 대출과 금리우대를 붙였다. 배출권 관리에는 거래서비스를, 농가의 저탄소 영농에는 인증비 지원과 감축 실적 매입을 붙였다. 최근에는 산업안전 우수기업 전용 대출까지 내놓으며 환경·사회적 가치를 금융지원 조건에 반영하고 있다.
회장이 방향 제시하고 계열사가 실행…'NH-THE GX'로 전환금융 체계화
농협금융은 지난 6월 17일 이 회장 주재로 '2026년 제1차 농협금융 ESG전략협의회'를 열었다. 지주와 계열사 ESG 담당 임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의 녹색 대전환(K-GX)과 기후금융 활성화,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응한 그룹 전략을 점검했다.
이 회장은 당시 "정부 정책의 속도에 맞춰 NH농협금융이 기후금융과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금융회사의 성장 기회로 보겠다는 얘기다.
농협금융은 본지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이 회장이 협의회를 통해 ESG를 대외 선언이나 규제 대응이 아닌, 금융의 체질을 바꾸는 생존전략이자 성장기회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후행적 대응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실행하라는 주문이 실무진에 내려갔다는 것이다.
실행은 계열사 협업에 맞춰져 있다. 지주 ESG상생금융부를 중심으로 녹색·전환금융협의회와 지주·계열사 공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한다. 은행과 보험사가 일반여신으로 검토하던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협의체 논의를 거쳐 녹색금융으로 공급한 사례도 나왔다.
전환금융 전략 프레임워크 'NH-THE GX'도 마련했다. 상생·시너지·농업·지역·전환기술의 5대 전략 아래 10개 사업모델을 뒀다. 공급망 금융, 정책자금 연계, 농가 컨설팅, 산업단지 공정 전환 등이다. 지난해에는 여신을 취급하는 전 계열사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기반의 공통 녹색여신 심사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공시도 제도보다 한발 앞서 준비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비상장사여서 의무공시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의무공시 기업과 같은 수준의 공시를 자발적으로 하기로 하고 전사 차원의 준비에 들어갔다. 금융사 간 ESG 정보의 비교가능성과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자금 공급 규모도 커지고 있다. 녹색·사회적금융 잔액은 2022년 말 60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76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녹색금융 18조3000억원, 사회적금융 57조8000억원이다. 2030년 목표(120조원, 녹색 30조원·사회적 90조원) 대비 달성률은 같은 기간 50.7%에서 63.4%로 올랐다. 녹색금융은 2024년 말(18조7000억원)보다 소폭 줄었는데, 한국전력공사 대출 1조6000억원의 업종코드가 발전업에서 판매업으로 바뀌어 실적에서 빠진 영향이다. 이를 감안하면 녹색금융도 실질적으로는 늘어난 셈이다.
은행 대출에 증권 배출권 거래 결합…전환금융 9월 말 2210억원
대표 상품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기후패키지 금융'이다. NH투자증권과 탄소배출권 위탁매매 계약을 맺은 기업이 농협은행에서 전환금융 성격의 시설자금 대출을 받으면 금리우대 등 맞춤형 지원을 받는다. NH투자증권은 같은 달 국내 증권사 최초로 배출권 위탁매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은행은 설비투자 자금을, 증권사는 배출권 거래를 맡아 기업의 전환비용을 덜어주는 구조다. 기업 보유 배출권을 양도담보로 운전자금을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현장 적용은 파일럿에서 시작됐다. 농협은행은 50개 이상의 후보 사업을 검토해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5건에 228억원의 전환여신을 공급했다. 양돈업체의 저탄소 스마트팜 구축에 50억원이 들어갔다. 축산물 도축·유통기업의 오염수 정화설비에는 11억원, 철강 제조기업의 온실가스 저감설비에는 6억원이 들어갔다. 반도체 장비업체의 공장 매입에 61억원, 친환경차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운전자금에 100억원도 지원했다. 기업의 중장기 전환전략 검토와 신청서 작성도 함께 도왔다.
이후 지원 규모는 빠르게 불어났다. 농협금융이 9월 말까지 지원한 전환금융은 2210억원(약정액 기준)으로, 6월 말 122억원보다 2088억원 늘었다. 지원 대상도 농업·철강·반도체에서 시멘트 등 고탄소 업종으로 넓어졌다. 농협금융은 국내 전환금융 가이드라인 시행 이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전환금융 운영 프로세스를 갖추고 파일럿을 가동해, 경쟁사보다 먼저 실무 경험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커질수록 '무늬만 전환'이라는 그린워싱 우려도 따라붙는다. 농협금융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등 기후목표와의 과학적 정합성, 전환계획의 구체성과 실행가능성, 관련 정보의 신뢰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고 밝혔다. 감축 목표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설비 전환·공정 개선·기술 도입으로 이어지는지, 자금 용도가 기업의 전환전략과 맞물리는지가 핵심 심사 기준이다.
자체 전환도 병행한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4MW에 이어 올해 한화솔루션과 4MW급 추가 협약을 맺었다. 이로써 총 8MW급 재생에너지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으로 확보했다. 발표 당시 기준으로 국내 은행권 PPA 확보 규모 중 최대다.
농가 배출권 매입부터 산업안전 우대대출까지…상생 영역 확장
농협금융의 차별점은 농업·농촌이 사회적금융의 고객이면서 동시에 탄소감축의 현장이라는 데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 7월 전국 20개 농가에서 농업인 탄소배출권 5254톤을 매입했다. 2024년 1419톤, 2025년 8245톤에 이은 세 번째 매입으로, 누적 1만4918톤이다. 농가가 저탄소 농업기술로 줄인 온실가스를 정부가 배출권으로 인증한 것이다. 은행은 이를 자체 배출량 상쇄에 쓴다.
이 사업은 2023년 9월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맺은 협약을 바탕으로 한다. 인증 비용 지원과 직접 매입을 함께 운영해 농가의 참여 부담을 낮췄다. NH투자증권도 바이오차를 활용한 탄소크레디트 발행·중개 모델을 추진하며 농업 기반 자발적 탄소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농업 지원의 뼈대는 금융 수익의 환원이다.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지분 100%를 가진 금융그룹으로, 농업·농촌 지원 재원을 만드는 '수익센터'와 농업 특화 금융이라는 두 역할을 함께 맡는다. 금융사업에서 낸 수익은 농업지원사업비 형태로 중앙회에 환원돼 각종 농업·농촌 지원사업에 쓰인다. 약 30조원 규모의 농식품기업 특화여신을 운영하고, 지난해에만 농업·농식품 분야 컨설팅 378건을 제공했다.
농업지원사업비 규모도 커졌다. 농협은행은 2025년 4387억원으로 전년(3702억원)보다 685억원 늘었다. 농협생명은 2023년 792억원에서 2024년 1522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농업지원사업비는 계열사별 최근 3개년 영업수익 평균에 중앙회와 협의한 구간별 부과율을 곱해 정한다. 농협은행은 부과율(2.50%)이 그대로였지만, 2023년 이자수익자산 평균잔액이 전년보다 7조1000억원 늘면서 영업수익 평균이 14조8000억원에서 17조5000억원으로 커졌다. 농협생명은 2022년 연금보험 해약이 늘면서 장래 지급할 연금(부채)이 수익으로 잡혀 영업수익이 증가한 데다, 부과율도 0.83%에서 1.51%로 올랐다.
상생과 수익성이 부딪칠 때의 판단 기준을 묻자 이 회장은 서면 답변에서 "지속가능한 수익력을 높여 농업·농촌 등에 대한 지원 역량을 확충하고, 금융사업의 성장과 농업·농촌의 발전이 함께 이어지는 선순환을 강화하는 것이 농협금융의 핵심 목표"라고 답했다. 농업지원사업비 부담에 대해서도 농협금융은 제도 취지에 공감하며, 금융사업의 지속가능성과 건전성을 고려해 계속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ESG 금융의 외연은 산업안전으로도 넓어졌다. 농협금융은 지난 7월 30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중소·중견기업 산업안전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공단이 안전경영 우수기업을 발굴·추천하면, 농협금융이 전용 여신 우대상품을 제공하는 역할 분담이다. 농협은행은 후속 조치로 지난 1일 'NH기업성장론(안전경영우수기업)'을 출시했다. 공단이 추천한 기업에 기본 0.30%포인트(p)의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거래조건에 따라 최대 2.10%p까지 금리 혜택을 준다. 출시 직후라 실행 실적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안전 기술과 설비에 투자하는 기업의 금융비용을 낮춰 현장의 안전경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협약 당시 "산업안전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탄소금융에서 다진 협업 구조를 근로자 안전이라는 사회(S) 영역으로 옮겨온 셈이다.
기후패키지 금융, 농가 배출권 매입, 안전경영 우대대출은 출발점이 같다. 전략협의회에서 방향을 정하고, 계열사 협의체를 거쳐 상품으로 내려보내는 구조다. 이 회장이 내세운 ESG의 '사업화'가 개별 상품의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과제는 이제 '규모'에서 '검증'으로 넘어간다. 금융감독원은 전환금융 실무 모범규준 초안을 마련했고, 이달 말 최종안을 내놓는다. 석 달 새 18배로 불어난 전환금융이 새 기준 아래서 실제 감축 성과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농협금융은 기업에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산업 특성을 고려한 단계적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파일럿부터 쌓아온 심사 경험이 새 기준에 대응하는 강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해 기후패키지 금융을 내놓으며 "기업·은행·증권의 다층적 협력체계를 공고히 해 산업계의 전환금융 부담을 경감하고 생산적 금융의 지평을 한층 더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논밭의 배출권에서 공장의 감축설비까지 이어진 이 협력체계가 금융권 전환금융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