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 30분 일방 단축…시간대별 방문 데이터 쥐고도 소비자 편의 '외면'
금융노사, 2027년 4월부터 오전 9시30분 개점 잠정합의…창구 이용시간 30분↓ 노동시간 단축 고려했지만 지역·고객별 수요와 대면금융 불편에 대한 보완책은 미흡 5대 은행 원화예수금 비중 75% 수준…영업시간 경쟁 유인도 낮아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은행 영업점 개점 시각이 오전 9시에서 9시30분으로 늦춰지면서 소비자의 창구 이용시간이 30분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노사는 비대면 거래 확산과 영업 전 업무 준비 시간, 노동시간 단축 등을 고려해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정작 오전 시간대 창구를 이용하는 고객의 수요와 불편을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모바일에서는 인공지능(AI)과 거래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별 서비스를 세분화하면서 대면 창구 운영은 지역과 고객 특성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은행 창구 30분 줄어드는데…소비자 대책은
30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 28일 산별중앙교섭에서 은행 점포 개점 시각을 오전 9시에서 9시30분으로 늦추는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폐점 시각은 오후 4시로 유지된다. 최종 합의와 은행별 세부 시행 방식은 남은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이번 합의가 시행되면 창구 이용시간은 기존 하루 7시간에서 6시간30분으로 30분 줄어든다. 노사는 비대면 거래 확산에 따른 내점 고객 감소와 영업 전 업무 준비 시간, 노동시간 단축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소비자 측면에서는 오전 9시부터 9시30분까지 창구를 이용하던 고객의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의 이용 불편을 어떻게 보완할지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출근 전 은행을 찾는 직장인이나 오전 시간대 방문이 많은 고령층·소상공인처럼 대면 창구 의존도가 높은 고객에게는 이용시간 단축이 곧 서비스 이용 기회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앱은 고객별로, 창구는 지역 구분 없이
은행들은 모바일 앱에서 고객의 거래·소비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과 계열 카드사가 축적한 지역별·시간대별 거래 데이터는 영업점 운영에도 활용할 수 있다. 점포별 내점객 수와 대기시간, 예금·대출·상속·외환 등 업무 유형, 고령층·소상공인 고객 비중 등을 분석하면 지역별 대면금융 수요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시간 역시 이런 수요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영역이다. 오피스 상권은 출근 전후 창구 이용이 집중될 수 있고, 고령층이나 소상공인이 많은 지역은 오전 시간대 대면금융 수요가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반대로 비대면 거래 비중이 높은 지역은 개점 시각을 늦추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을 높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번 잠정합의안은 이런 지역별·고객별 차이를 반영하기보다 원칙적으로 모든 영업점의 개점 시각을 30분 늦추는 방식이다. 은행이 모바일 채널에서는 고객별 데이터를 활용하면서 대면 채널에서는 일괄적인 시간표를 적용하는 셈이다.
금융노사와 은행권은 오전 9시부터 9시30분 사이 내점객 규모와 고객 특성, 업무 유형별 처리 건수 등 구체적인 수요 자료도 공개하지 않았다. 실제 수요가 적은 시간대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시간을 일괄적으로 조정할 경우 소비자 불편이 특정 계층이나 지역에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5대 은행에 고객 집중…영업시간 경쟁도 제한적
영업시간을 통한 소비자 선택권이 충분히 작동하기 어려운 배경에는 5대 시중은행 중심의 시장 구조도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2026년 3월 말 원화예수금은 1765조823억원이다. 같은 시점 은행연합회 통계월보상 일반은행·특수은행·외은지점의 은행계정 원화예수금은 2358조4492억원으로, 5대 은행의 비중은 단순 비교 기준 약 74.8% 수준이다.
고객 기반이 대형은행에 집중된 환경에서는 한 은행이 특정 상권에서 일찍 문을 열거나 늦게까지 창구를 운영하더라도 고객이 주거래은행을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급여이체와 대출, 카드, 자동이체 등 여러 금융거래가 하나의 은행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유통·외식업계에서는 한 매장이 영업시간을 줄이면 경쟁 매장이 더 일찍 또는 더 늦게까지 영업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영업시간 차별화만으로 고객을 확보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작다. 은행들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향으로 영업시간을 줄이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창구 이용시간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행의 공공성은 소비자가 원할 때 서비스를 받도록 보장하는 것인데 대면 거래가 필요한 고령층과 소상공인에게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며 "모바일뱅킹을 대면 창구의 일률적인 대안으로 제시해서는 안 되며, 시행 전 소비자 의견 수렴과 대기시간·민원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은행 직원들의 워라밸보다 고객 서비스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시점"이라며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에게 개점시간 단축은 서비스 축소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합의에는 하루 최대 30분까지 출근을 늦출 수 있는 '일·생활 균형 자율출근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근무시간은 유연하게 조정하되 창구 운영시간은 유지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탄력점포 있어도 대체 창구 역할에는 한계
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대안으로 탄력점포를 활용할 수 있지만, 현재 운영되는 탄력점포만으로 모든 대면 수요를 흡수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25년 4월 말 기준 탄력점포는 1047곳이다. 관공서 소재 점포가 443곳으로 가장 많고, 상가·오피스 인근 점포 126곳, 외국인근로자 특화점포 35곳 순이다.
일반 창구 업무를 저녁까지 보는 점포로는 KB국민은행 '9To6 뱅크', 하나은행 '9시 라운지' 등이 있다. 그러나 탄력점포 상당수는 관공서 점포, 환전센터, 외국인 특화점포,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ATM) 등으로 유형별 취급 업무와 운영시간이 제각각이다. 탄력점포 숫자만으로 일반 영업점의 운영시간 단축을 얼마나 보완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점 줄고 출장소 늘어…점포 수보다 기능 봐야
은행의 대면금융 접근성을 점포 숫자만으로 판단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금융권 영업점포 현황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국내 점포는 2025년 말 5528곳에서 2026년 3월 말 5549곳으로 21곳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지점은 4569곳에서 4520곳으로 49곳 줄었고, 출장소는 959곳에서 1029곳으로 70곳 늘었다. 전체 점포 중 출장소 비중은 17.4%에서 18.5%로 높아졌다.
시중은행만 보면 변화가 더 뚜렷하다. 국내 점포는 3048곳에서 3067곳으로 19곳 늘었지만 지점은 2538곳에서 2483곳으로 55곳 줄었다. 출장소는 510곳에서 584곳으로 74곳 증가했다.
지점과 출장소는 인력 규모와 취급 업무가 다르다. 따라서 점포 수가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대면금융 접근성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출 상담, 상속·증여, 금융사기 피해 신고, 고액 현금 거래 등 복잡한 업무는 여전히 대면 창구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동인구와 거래 데이터를 활용해 점포별 영업시간을 차등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오피스·역세권 거점점포는 저녁까지 연장하고, 고령층·소상공인 밀집 지역은 오전 개점을 유지하는 식으로 지역별 수요에 맞춰 운영하자는 취지다.
서 교수는 "조기 출근에 대한 보상이나 교대근무, 시차출근 등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며 "영업시간을 조정하더라도 고령층과 소상공인의 이용 수요, 지역 특성을 반영해 오전 9시 개점 점포나 탄력점포를 확보하는 등 소비자 보호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