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을 사람이 없다"…기업은행, 후계자 없는 中企 M&A 중매 나선 이유
기업은행 중개로 팔린 中企 80%가 '후계자 부재'…2023년 이후 696곳 M&A 지원 자녀가 거부한 27년 골판지 회사 2곳, 9개월 만에 170억원에 새 주인 2006년 시작한 무료 가업승계 컨설팅 올해 1~8월 409건…작년 연간의 95% 가업상속공제 개편·제3자 승계 세제지원 예고…"선제 대응하며 컨설팅 확대"
[녹색경제신문 = 최정윤 기자]
27년간 골판지 상자를 만들어 온 중소기업 A사와 B사는 회사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었다. 대표들은 고령인데 자녀는 승계를 거부했다. IBK기업은행이 같은 업계 상위 기업을 인수자로 찾아 연결했고, 거래는 9개월 만에 170억원 규모로 마무리됐다.
중소기업 경영자 고령화로 '승계 절벽'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기업은행은 후계자가 없는 기업에는 인수합병(M&A) 중개·주선을, 자녀 등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기업에는 무료 가업승계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개편과 함께 제3자 승계 세제 지원을 추진하면서 승계 환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국책은행의 승계 지원을 짚어봤다.
■ 기업은행 "M&A 수요 느는데 中企 M&A는 제도권 시장서 소외"
29일 <녹색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기업은행의 M&A 중개·주선으로 매각이 성사된 중소기업 가운데 80%는 후계자 부재가 매각 사유였다. 매도 신청 기업 기준으로는 30%가 후계자 부재를 이유로 들었다.
기업은행은 <녹색경제신문>에 "CEO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로 중소기업 M&A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M&A는 제도권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은 2022년 9월 M&A 희망 기업 발굴부터 최종 거래 성사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M&A 중개·주선' 사업을 본격화했다. 후계자 부재나 성장 한계 등으로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서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IBK컨설팅센터가 2023년부터 올해 8월까지 M&A 컨설팅·중개·주선을 지원한 기업은 696곳이다.
■ 27년 골판지 회사 2곳, 9개월 만에 170억원 거래
기업은행이 소개한 골판지 사례를 보면, 특수관계인인 A사와 B사 대표는 두 회사를 한꺼번에 매각하기를 원했다. 기업은행은 사업 시너지와 인수 여력을 따져 잠재 투자자를 물색했고, 동종업계 상위 기업 C사의 매수 의사를 포착했다. 이후 구체적인 거래 조건 협상과 자문을 지원했다.
거래는 주식 양수도 방식으로 이뤄졌다. 거래금액은 170억원, 걸린 기간은 9개월이다.
기업은행은 "매도기업 대표는 명예로운 퇴진을 통해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고, 매수기업은 매도기업의 공장과 생산설비를 활용해 업계 내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3자가 회사를 인수할 때 필요한 자금도 연결한다. 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은 지난 7월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하는 경우에만 투자하는 IBK금융그룹 기업승계펀드에 18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주선하기로 했다.
■ 가족 승계엔 무료 컨설팅…"창업 1세대 고령화로 승계 수요 급증"
자녀 등 가족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기업에는 가업승계 컨설팅을 제공한다. 기업은행은 2006년 가업승계 컨설팅을 시작했고, 현재 회계사·세무사 등 전문인력 16명이 무료로 컨설팅한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특화 국책은행으로서 세무·회계·법률·금융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가업승계 컨설팅을 통해 창업 1세대의 고령화로 급증하고 있는 중소기업 가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경영 애로를 해소하고 지속 성장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컨설팅은 상속·증여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소유권 이전 로드맵을 짜는 데 초점을 둔다. 세법상 재산 평가 방법을 안내하고 이익 증가분을 고려해 미래 주가를 추정한다. 가업상속공제와 증여세 과세특례의 사전·사후 요건을 점검하고, 법인의 합병·분할이나 개인사업자의 법인 전환을 통한 승계 방안도 검토한다. IBK투자증권에 승계 상담이 들어오면 두 회사가 협업해 컨설팅한다.
올해 1~8월 가업승계 컨설팅은 409건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432건)의 95% 수준이다.
■ 세제 개편 앞두고…"선제 대응하며 컨설팅 확대"
재정경제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6년 세법개정안은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최대 1000억원으로 늘리는 대신 경영기간 요건을 원칙적으로 10년에서 30년으로, 사후관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20년 이상 회사를 경영한 60세 이상 최대주주가 친족이 아닌 제3자에게 회사를 넘기면 양도소득세의 20%를 감면하는 제도도 새로 넣었다. 2028년 양도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며, 개편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국세청은 요건이 크게 바뀌는 과도기에 현행 법령 기준으로 컨설팅하면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직전 3년 평균 수입금액 120억원 이하 중소기업 대상 가업승계 세무컨설팅을 올해 한시 중단했다. 12월 말 이후 재개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개편안에 따른 가업상속공제 적용 가능 여부 검토와 기존 컨설팅 기업 사후관리 등 기업별 상황에 따른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60년 이상 축적해 온 중소기업 지원 경험과 20년 이상 누적된 가업승계 컨설팅 사례를 바탕으로 기업별 상황에 최적화된 가업승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은행은 제도 개편 논의와 대표자 고령화로 가업승계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기준 중소기업실태조사에서 소상공인을 제외한 중소기업 경영자의 33.3%가 60세 이상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년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7.5%가 승계 계획이 없거나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을 경우 매각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21.1%, 폐업은 9.1%였다.
기업은행은 세제 개편과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가업승계 컨설팅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컨설팅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에는 1대1 맞춤형 상담과 집합교육을 제공해 지방 중소기업의 균형 성장과 지속 경영을 돕는다는 방침이다.
제3자 승계에 세제 혜택이 붙으면 중소기업 M&A 수요도 커질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금융 시장점유율 24.6%의 국책은행이 후계자 없는 중소기업의 '중매자' 역할을 어디까지 넓힐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