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원재료 15조원 담합…과징금 1.8조원, 소비자 부담은 어디로
올해 적발된 식품업체 담합 5건 관련 매출액 14조9866억원 설탕·밀가루·전분당에만 14조9374억원…전체의 99.7% 집중 원재료 가격 경쟁 제한되면 가공식품·외식업계 원가에도 영향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설탕과 밀가루, 전분당 등 식품업계의 핵심 원재료 시장에서 올해 적발된 담합 관련 매출액이 15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은 1조8178억원으로 관련 매출액의 12.1% 수준이다. 특히 담합이 발생한 시장이 소비자와 직접 맞닿은 완제품이 아니라 과자·빵·음료 등 다양한 식품의 원가를 구성하는 기초 소재라는 점에서, 가격 경쟁 제한이 밥상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준병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적발된 식품업체 담합 5건의 관련 매출액은 총 14조98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업체에 부과된 과징금은 1조8178억원으로 관련 매출액 대비 12.1%였다.
눈에 띄는 것은 담합이 특정 원재료 시장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전분·전분당, 밀가루, 설탕 등 3개 품목의 관련 매출액만 합쳐도 14조9374억원으로 전체의 약 99.7%에 달한다. 올해 식품업체 담합 관련 매출액 대부분이 사실상 밥상에 들어가는 기초 원재료 시장에서 발생한 셈이다.
규모가 가장 컸던 분야는 전분·전분당이다. 대상·사조CPK·삼양사·CJ제일제당 등 4개사의 관련 매출액은 6조524억원으로 집계됐으며, 공정위는 이들에게 7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업체들은 지난 2018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7년 6개월간 전분당 판매가격을 담합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국내 전분당 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이들 4개사의 점유율은 약 90%로 조사됐다.
밀가루 시장에서도 7개사가 담합에 연루됐다. 관련 매출액은 5조6899억원, 과징금은 6710억원이었다. 설탕 시장에서는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3개사의 관련 매출액이 3조1951억원, 과징금은 3960억원으로 집계됐다.
세 품목의 공통점은 소비자가 원재료 자체를 구매하는 것보다 다른 식품에 들어가는 형태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밀가루는 빵과 과자 등에, 설탕은 음료와 각종 가공식품 등에, 전분당 역시 다양한 식품 생산 과정에 사용된다. 따라서 원재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제한될 경우 그 영향이 해당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식품 제조업체의 비용 구조를 거쳐 다른 상품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관련 매출액 전체가 담합으로 발생한 부당이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가 담합 사건과 관련해 산정한 매출 규모인 만큼, 이를 그대로 ‘담합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원재료 가격 상승분이 최종 소비자 가격에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도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원당과 소맥, 옥수수 등 주요 수입 원재료에 할당관세를 적용해온 상황에서 담합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원재료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히 과징금 규모의 많고 적음을 넘어 식품 가격이 결정되는 공급망의 앞단을 들여다볼 필요성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마트에서 접하는 가공식품 가격은 제조·유통 단계에서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그 출발점 중 하나가 밀가루·설탕·전분당 같은 기초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원재료 시장의 경쟁이 제한될 경우 최종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추적해야 담합의 물가 파급효과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에 “식품 원재료는 여러 가공식품과 외식 메뉴의 원가에 연결돼 있어 가격 결정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며 “담합에 대한 제재와 함께 원재료 시장의 경쟁 환경을 점검하고, 원가 변화가 실제 제품 가격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