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1억달러 디지털본드 발행… 국내 첫 'T+0 당일결제' 구현
유로클리어 블록체인 인프라 'D-FMI' 활용, 국내 최초 사례 통상 3~5영업일 결제주기를 당일로 단축, 기존 유로클리어망과도 완전 연동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하나은행이 국제예탁결제기관 유로클리어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1억달러 규모의 디지털 채권을 발행하며, 국내 외화채 시장에서 처음으로 당일결제(T+0)를 구현했다.
하나은행은 21일 유로클리어의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D-FMI(Digital Financial Market Infrastructure)'를 통해 5년 만기 1억달러 규모의 외화 디지털 채권을 지난 18일 발행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채권은 발행부터 등록, 결제까지 전 과정을 분산원장기술(DLT) 네트워크에서 직접 처리하는 순수 디지털 형태의 채권이다. 이번 발행은 글로벌 국제예탁결제기관(ICSD)인 유로클리어의 자체 블록체인 인프라를 은행이 직접 활용한 국내 첫 디지털 채권 발행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발행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당일결제(T+0)'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채권의 배정과 대금 이동이 분산원장 위에서 즉각적으로 처리되면서, 통상 3~5영업일이 소요되던 기존 채권 결제 주기가 당일로 대폭 단축됐다. 결제 주기가 며칠씩 걸리던 기존 방식에서는 그 기간 동안 발행사와 투자자 모두 결제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구간 자체를 사실상 없앤 셈이다. 하나은행 측은 이를 통해 자금 조달의 안정성을 높이고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번 디지털 채권은 유로클리어의 기존 전통적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와 완전한 연동을 지원하며, 기존 외화채권 발행 시 사용하는 글로벌 중기채(GMTN) 프로그램 서류를 그대로 활용했다. 이 덕분에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별도의 복잡한 추가 절차 없이도, 기존에 쓰던 유로클리어 계좌와 매매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해 디지털 채권을 안전하고 손쉽게 거래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익숙한 인프라를 그대로 쓸 수 있게 설계한 셈이다. 이번 채권 발행에는 스탠다드차타드가 단독 주간사로 참여해 구조화부터 발행,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담당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 1억달러 규모의 디지털본드 발행과 T+0 결제 구현은 자금 조달 수단의 다변화를 넘어, 블록체인 기술을 자본시장에 적극 접목한 의미 있는 시도라며, 앞으로도 선진 인프라를 발 빠르게 도입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자금 조달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디지털 본드 발행은 하나금융그룹이 최근 꾸준히 추진해온 디지털자산 금융사업 확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하나금융은 앞서 두나무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해외송금, 자산관리, 토큰증권(STO), 실물연계자산(RWA)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해왔고, 글로벌 대형 가상자산 수탁 기업 비트고와 합작해 '비트고코리아'를 설립하며 커스터디 시장에도 진출한 바 있다. 실명계좌 사업에서는 다른 시중은행보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온 하나은행이, 정작 채권 발행이나 자산 수탁 같은 인프라·기관 영역에서는 오히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온 흐름과도 이번 사례는 궤를 같이한다.
결국 이번 디지털 본드는 단순한 자금 조달 실험을 넘어, 하나금융그룹이 블록체인 인프라를 자본시장 실무에 실제로 적용해본 첫 사례라는 의미가 크다. 통상 이런 신기술 도입은 파일럿 단계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실제 1억달러 규모의 실거래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앞으로 이 방식이 하나은행의 다른 외화채권 발행에도 확장 적용될지, 나아가 국내 다른 은행들의 유사한 시도로 이어질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