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아서 결제했으니 못 준다"는 카드사…사기범들이 계좌이체 대신 카드를 택한 이유

계좌이체는 지급정지 등 법적 장치라도 있는데, 카드결제는 그런 장치 자체가 없어 6300만원 날린 20대 사례로 본 구조적 허점, 금감원 뒤늦게 손질

2026-09-21     박금재 기자
신용카드.[사진=픽사베이]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보이스피싱 수법이 계좌이체에서 카드결제로 옮겨가고 있다. 계좌이체는 사고 발생 시 지급정지를 신청하거나 은행의 이상거래 대응 의무를 물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도 마련돼 있는 반면, 카드결제는 이런 장치 자체가 사실상 없는 규제 사각지대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카드결제 피해 예방 및 구제 강화 방안'은 이런 흐름 변화에 대한 뒤늦은 대응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이 피해자에게 직접 송금을 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품권 등 고환금성 물품을 카드로 결제하도록 유도한 뒤 이를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수법을 바꾸고 있다. 20대 여성 A씨는 구직사이트에서 물품을 대신 결제하면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준다는 부업 제안을 받았다. 초기에는 약속한 돈을 실제로 받았지만, 이후 결제액이 커지고 대출까지 받게 되면서 결국 6300만원의 피해를 봤다. 그런데 A씨는 본인이 직접 결제하고 대출까지 실행했다는 이유로 카드사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계좌이체와 카드결제의 결정적 차이는 사고 후 대응 체계에 있다. 계좌이체 방식의 보이스피싱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피해금이 인출되기 전 지급정지를 신청할 수 있고, 은행에는 피해의심계좌에 대한 임시조치 의무까지 부과돼 있다. 다만 이 장치가 완벽한 보호막인 것은 아니다. 올해 초 피해자가 스스로 송금한 계좌이체 사기에서 법원이 은행의 임시조치 의무 위반 책임을 일부 인정한 판례가 나왔는데, 이는 1심에서는 은행 책임이 부정됐다가 항소심에서야 뒤집힌 사안으로,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이 아닌 다툼이 진행 중인 사례다. 그럼에도 계좌이체 쪽은 최소한 이런 법적 틀 자체는 갖추고 있는 반면, 카드결제는 피해자가 본인 확인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쳐 스스로 결제를 완료하면 카드사 입장에서 이를 '정상 거래'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카드사가 지난 2024년 11월 마련한 공동 이상거래탐지룰 역시 해킹 등 제3자에 의한 부정결제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본인이 직접 결제하는 유형의 사기는 애초에 탐지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계좌이체 쪽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사기범들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카드결제 채널로 옮겨갈 유인이 커지는 구조였던 셈이다.

비슷한 사각지대는 고령층 피해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이 "불법 카드매출을 취소해야 한다"며 70대 피해자에게 323만원을 결제하도록 유도한 사례에서는, 다행히 가맹점의 허위매출이 확인돼 결제가 취소될 수 있었다. 반면 A씨의 사례처럼 가맹점 자체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물품도 실제 거래된 경우라면, 피해자가 속았다는 사실이 명백해도 구제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에 금감원은 카드사의 이상거래탐지 대상 자체를 넓히기로 했다. 신규 단말기에서 갑자기 발생한 상품권 결제나, 사기 피해 신고가 접수된 가맹점에서 이뤄진 결제 등을 새로운 탐지 기준으로 추가한다. 특히 70세 이상 고령자가 상품권 등 환금성 높은 물품을 결제하다 이런 이상거래로 탐지되면, 카드사가 본인 의사에 따른 거래인지 심층상담을 진행하고 숙려 기회를 준 뒤에야 결제를 승인하도록 절차를 바꾼다. 경찰청에 따르면 70세 이상 고령자의 보이스피싱 피해는 2023년 777건에서 2024년 1047건, 지난해 1493건으로 계속 늘고 있는데, 이런 증가세가 이번 조치의 배경이 됐다.

다만 이번 개편이 모든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은 새로운 탐지 기준을 도입한 뒤 효과를 지켜보며 대상 연령과 고환금성 상품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계좌이체 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사기 수법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채널을 찾아 이동해온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카드결제 채널 규제가 강화된 이후에는 또 다른 결제 수단이나 우회로로 수법이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카드정보를 제공했거나 의심스러운 결제를 했다면 즉시 카드사에 연락해 사용정지·재발급·주문 취소 등을 요청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확실한 자구책으로 남아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본인이 직접 결제하는 사기까지 기존의 부정사용 탐지 체계로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고환금성 상품이나 고령층의 이상 결제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사기 가능성이 높은 거래를 조기에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제 과정에서 이상 징후가 확인될 경우 카드사와 가맹점, 수사기관 간 정보 공유를 신속하게 하는 등 사후 구제뿐 아니라 피해가 발생하기 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지속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