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C 규제에 막힌 K로봇…美 수출 제동에 현지생산까지 검토

7월 이후 FCC 규제 영향 본격화…AMR·휴머노이드 등 북미 사업 차질 레인보우·티로보틱스 美 생산거점 검토…적자 로봇기업엔 투자 부담↑

2026-09-18     김지윤 기자
레인보우로보틱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규제 강화가 국내 로봇업계의 새로운 북미 시장 진입 장벽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로봇기업들이 기존 협동로봇에서 자율이동로봇(AMR), 휴머노이드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며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시점과 맞물리면서다.

특히 로봇업계는 통상 하반기에 매출과 수주가 집중되는 특성이 있는 만큼 지난 7월을 기점으로 미국향 신규 제품 판매에 제동이 걸리면서 올해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기업은 미국 현지 생산시설 구축까지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적자가 지속되는 국내 로봇업계의 재무구조를 고려하면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18일 로봇업계에 따르면 최근 FCC 규제 변화로 다수의 국내 로봇기업이 북미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제조·물류 자동화 투자가 활발한 세계 최대 로봇 시장 중 하나로 국내 기업들도 북미를 핵심 성장 시장으로 설정해왔다.

문제는 올해 7월 이후 FCC 규제가 국내 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FCC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무선통신·전자기기를 대상으로 인증 및 승인을 요구하는데, 최근 규제 적용 범위와 심사가 강화되면서 해외에서 생산된 로봇 가운데 무선통신 기능 등이 포함된 제품의 미국 판매가 까다로워졌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그동안 국내 로봇업체들은 FCC 규제를 핵심 수출 장벽으로 인식하지 않아 사전에 관련 인증을 확보한 기업도 많지 않다. 그러나 7월 이후 규제 영향이 갑작스럽게 확대되면서 신규 제품을 중심으로 미국 수출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중견 로봇업체 고위 관계자는 "미국 내 공장 및 물류 자동화 수요가 커지면서 올해 하반기나 내년부터 미국향 물량 확대를 예상했는데 업계 입장에서는 사실 큰 악재"라며 "각 기업 대표들이 산업부에 공동 대응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방침이 없어 협회나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인보우·티로보틱스, 美 생산거점까지 검토

규제 장벽을 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검토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티로보틱스다. 양사는 미국 내 생산설비 구축을 목표로 복수의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연구용 모바일 휴머노이드 'RB-Y1'을 중심으로 미국 시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향후 북미 사업 확대를 위해 현지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이다.

티로보틱스 역시 미국 사업 확대를 앞두고 있다. 회사는 올해 미국 포드에너지로부터 AMR 수주를 확대하고 있어 국내 생산 장비의 현지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미국 법인에 더해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양사 모두 아직 안정적인 흑자구조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담이다. 국내 생산시설도 가동률이 낮은 상황에서 미국에 추가 생산능력(CAPA)을 구축할 경우 설비투자와 고정비 부담이 동시에 늘어날 수 있다. 

그나마 레인보우로보틱스나 티로보틱스처럼 미국에서 구체적인 고객과 수요를 확보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는 평가다. 당장 발생할 매출을 기반으로 현지 투자의 경제성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제 막 북미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로봇기업에는 FCC 규제가 훨씬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로봇업체 상당수가 연구개발(R&D)과 인력 확충으로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만큼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수십억원 규모의 현지 설비투자를 선제적으로 집행하기는 쉽지 않아서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북미에서 확정적인 물량이 있는 기업은 현지 투자를 검토할 명분이라도 있지만 이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기업이 규제 대응을 위해 먼저 생산시설부터 구축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그렇다고 가장 큰 미국 시장 공략을 손놓고 있을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AMR·휴머노이드만 문제 아니다…액추에이터까지 '규제 불확실성'

업계의 또 다른 고민은 FCC 규제의 정확한 적용 범위다. AMR이나 휴머노이드처럼 무선통신 기능을 활용해 자율적으로 이동하는 완제품 로봇뿐만 아니라 협동로봇이나 액추에이터 등도 제품 구성에 따라 FCC 규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단순 기계 부품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와이파이(Wi-Fi), 블루투스 등 무선통신 모듈을 탑재하거나 스마트 제어 기능을 갖춘 제품이라면 별도의 인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보티즈가 일찌감치 일부 액추에이터 제품에 FCC 인증을 확보해 미국 수출에 대응해온 것도 이 같은 규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한 사례로 꼽힌다.

최근 액추에이터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한 제조기업 관계자는 "FCC 규제 대상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전담 대응팀을 꾸려 미국 측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며 "미국 승인 역시 일률적인 기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FCC 당국의 판단이 중요한 부분이 있어 어떤 부분을 충족해야 하는지, 당국을 상대로 어떤 설명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FCC 규제 적용 대상과 인증 절차를 명확히 파악하고 국내 기업과 미국 당국 간 소통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별로 법무법인이나 협회를 통해 규제를 해석할 경우 대응 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동일한 규제를 놓고 기업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로봇업계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공동 대응책 마련을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FCC 규제 대응 및 국내 로봇업계 지원책과 관련해 산업부의 입장을 듣기 위해 관련 부서에 문의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